붓을 들어 이 노란 꽃을 그렸다. 결과물은 거칠다. 하지만 변명할 생각은 없다. 원래 생존을 위해 가장 먼저 흙을 뚫고 나오는 것들은 우아하기보다 필사적이니까.
산간 지방의 척박한 땅이나 서울숲 같은 인공적인 조경 구역 어딘가, 눈과 얼음 사이에서 이 꽃은 피어난다. 사람들은 국화 같다고들 하지만, 내 눈에는 그저 화려한 위장술을 펼치는 생존 기계로 보일 뿐이다.
이 꽃은 기이할 정도로 많은 별칭을 가졌다. 황금색 잔 모양이라 하여 측금잔화, 새해 첫날 핀다고 원일화, 혹은 삭일초. 눈 속에 핀 연꽃 같다는 설연화, 눈을 녹이며 뚫고 나온다 하여 눈색이꽃, 얼음새꽃. 게다가 빙리화, 정빙화, 조춘화, 복풀... 인간들은 이 작은 식물 하나를 정의하지 못해 수십 개의 이름표를 덕지덕지 붙여놓았다. 그 강박적인 명명(命名) 행위가 도리어 이 꽃의 정체를 모호하게 만든다.
학명은 Adonis amurensis. 아무르강 유역의 아도니스라. 그리스 신화 속 미소년 사냥꾼 아도니스가 멧돼지에게 받혀 흘린 붉은 피에서 태어난 꽃. 서양인들은 이 노란 꽃에서 죽음과 피를 읽어냈고 꽃말조차 '슬픈 추억'이라 명명했다. 반면 동양에서는 복(福)과 장수(壽)를 기원한다며 '복수초(福壽草)'라 부르고 '영원한 행복'이라는 꽃말을 붙였다.
그러나 실상은 블랙 코미디에 가깝다.
이 식물은 맹독을 품고 있다. 뿌리부터 줄기까지, 잘못 씹어 삼키면 심장이 멎을 정도의 독성을 지녔다.
'복과 장수'를 비는 이름 뒤에 '목숨을 끊는 독'을 숨기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복수(Revenge)를 위한 꽃이라는 오독(誤讀)이 오히려 이 꽃의 본질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생존 방식 또한 철저히 계산적이다. 복수초는 햇볕이 없으면 가차 없이 꽃잎을 닫는다. 해가 뜨면 꽃잎을 오목렌즈처럼 펼쳐 열을 모은다. 이른바 파라볼라 안테나 전법이다. 그렇게 모은 열로 제 몸을 데우고, 그 온기에 홀린 벌레들을 유인한다. 꽃잎 안의 온도는 바깥보다 6도나 높다고 한다. 낭만? 아니다. 이것은 고효율의 열역학적 짝짓기 전략이다.
일본 홋카이도 아이누족의 설화는 이 꽃의 비극성을 완성한다.
지상의 땅을 독점한 재력가 두더지가 절세미녀 공주를 탐했다. 외모지상주의자였던 공주는 못생긴 두더지를 혐오하여 도망쳤고, 결국 아버지의 저주를 받아 한 송이 꽃, 복수초가 되었다. 꽃이 된 공주의 곁을 스토커처럼 맴돌며 눈을 치우는 두더지의 발자국. 인간들은 이것을 '눈새기꽃'의 유래라며 낭만적으로 포장하지만, 실상은 '돈에 팔려갈 뻔한 여자의 파멸'과 '가지를 수 없는 것을 탐하는 추한 자의 집착'이 빚어낸 잔혹동화일 뿐이다.
눈 속에 핀 노란 꽃. 그것은 희망의 상징이 아니라, 독과 열기, 그리고 엇갈린 욕망이 뒤엉킨 채 얼음장을 뚫고 나온 차가운 파편이다. 내가 그린 그림이 거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마도 그 서늘한 이면을 보았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