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이기는 기품 염정아 스타일

by 무체

1991년 미스코리아 선으로 선발된 후 국제 대회 수상까지 거머쥐며 화려하게 데뷔한 염정아는 데뷔 초반 화제성에 비해 작품운이 따르지 않는 시기를 보냈다.


1991년 미스코리아 선, 1992년 미스 인터내셔널 3위라는 화려한 타이틀은 데뷔 초 염정아에게 양날의 검이었다.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으로 데뷔한 직후에는 화려하고 도회적인 외모 탓에 주로 주인공을 괴롭히는 질투심 많은 악역이나 부잣집 딸 역할에 머무르는 듯했다. 하지만 2003년 김지운 감독의 영화 '장화, 홍련'에서 신경질적이고 기괴한 새엄마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연기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어 최동훈 감독의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에서 농염한 팜므파탈 서인경 역을 맡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미스코리아 출신이라는 꼬리표 대신 온전한 연기파 배우로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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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염정아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가장 큰 무기는 정확한 발음과 발성이다. 감정이 격해지는 씬이나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씬을 막론하고 대사가 귀에 정확하게 꽂히는 전달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러한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그녀는 스릴러, 코미디, 액션, 휴먼 드라마 등 모든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 'SKY 캐슬'의 한서진처럼 끝없는 욕망을 쫓는 입체적인 인물부터, 영화 '카트'에서 부당 해고에 맞서는 평범한 마트 계산원 선희, 영화 '밀수'의 억척스러운 해녀 엄진숙까지 극과 극의 캐릭터를 위화감 없이 소화해 낸다. 화려한 외모를 지우고 삶의 애환이 묻어나는 소시민의 얼굴까지 그려내는 스펙트럼이야말로 그녀의 독보적인 역량이다.


염정아의 패션 스타일은 그녀의 성격처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절도 있다. 공식 석상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룩은 화려한 원색이나 과한 장식보다는 블랙, 화이트, 그레이 등 무채색 계통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사주상 경신(庚申)일주의 차갑고 정갈한 기운과도 맞닿아 있는데, 요란하게 멋을 내지 않아도 특유의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풍긴다. 특히 올블랙이나 올화이트 등 단색 위주의 코디를 즐기되, 촌스러운 '깔맞춤'이 아닌 세련된 톤온톤 매치로 우아함을 극대화한다. 드레스 선택에 있어서도 화려한 반짝임보다는 라인의 세련미와 담백한 디테일을 우선시하며, 가벼워 보이거나 어려 보이려 애쓰는 스타일보다는 본연의 품격을 지키는 클래식한 멋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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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에 접어든 현재까지도 염정아는 데뷔 초와 다름없는 슬림한 체형을 유지하고 있다. 172cm의 큰 키에 두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관리된 몸매는 그녀가 입는 모든 옷에 완벽한 핏을 선사한다. 선천적인 체질도 있겠지만, 오랜 시간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지독할 정도의 자기 절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완벽한 비율은 그녀가 캐주얼한 스타일보다는 격식 있는 수트나 드레스에서 독보적인 아우라를 뿜어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유행을 좇기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꾸준히 애용하는 그녀의 뚝심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이를 더해간다.


염정아의 매력은 단순히 젊음을 유지하는 데 있지 않다. 그녀는 억지로 젊어 보이려 하기보다 자신의 나이대에 맞는 우아함을 가장 멋지게 구현할 줄 아는 배우다. 수수하면서도 기품 있는 그녀의 스타일은 60대, 70대가 되어도 가수 패티김처럼 명품 같은 아우라를 풍기며 고급스럽게 나이 들어갈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화려한 연예계에서 자신만의 속도와 철학으로 커리어와 스타일을 구축해온 염정아. 그녀의 행보는 외형적인 아름다움을 넘어 내면의 단단함이 어떻게 패션과 연기로 승화되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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