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폐미(Decadent Aesthetics)는 전통적 도덕이나 질서에서 벗어나 소위 퇴폐적인 것에서 오는 매력을 의미한다. 쇠락, 허무, 타락, 죽음, 향락을 비롯하여 염세적 감성 등을 포함한다. 퇴폐미는 19세기말 데카당스 운동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죽음과 아름다움이 결합할 때 발생하는 특유의 감각적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음과 결부되었다고 죽음을 미화한다거나 변질적인 미학에 국한해서는 안된다. 단적으로 시들어 가는 꽃, 생명력을 잃어갔음에도 운치 있는 고목, 마른 나뭇가지나 나뭇잎, 폐허가 된 정원이나 황폐한 거리, 빛바랜 사진이나 버려진 인형 등이 연상된다. 어딘가 고독하고 처연한 그러면서 감성을 자극하는 이미지가 그려진다. 단순히 어둡거나 비극적 혹은 부정적인 것이 아닌 전통적인 질서를 거부하고 새로운 미를 탐색하는 과정으로 첫 등장을 하였다. 아름다움을 진부하게 평면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불안정하고 소멸하며 파괴적인 것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처럼 감각과 철학이 결합된 독특한 퇴폐미인은 귀하고 강렬하다.
헝클어진 머리에 스모키 메이크업을 하고 담배를 피우는 에바그린은 퇴폐미의 정석을 보여준다. 창백한 피부에 깊고 강렬한 눈빛, 무엇보다 섬세하고 아름답지만 어딘가 병약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자극하는 아름답고 위험해 보이는 미인이다. 그런 분위기를 잘 알아서인지 그녀가 맡은 배역도 대체로 신비롭고 퇴폐적인 캐릭터 일색이다. 그래서인지 퇴폐미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봐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국내에선 청순한 베이스 위에 위험하고 나른한 이미지로 퇴폐미의 절정 매력을 보여주는 전종서와 손예진이 있다. 전종서는 현재 진행형으로 퇴폐미의 절정을 달리는 배우다. 무심하고 나른하면서 반항적이고 위험한 이미지와 캐릭터로 승부하는 것만 같다. 그녀의 차갑고 섬뜩한 퇴폐미는 영화 버닝에서 절정을 보여주었다. 날것에 미묘함에 공허함으로 건조한 퇴폐미로 사랑을 받았다면 그보다 먼저 손예진이 있었다. 손예진은 청순미로 세상을 달군 배우이다. 그녀는 청순하지만 청승이 없고 가녀리지만 유약함은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쓸쓸하고 비극적인 사랑에 최적화된 배우이다. 이런 깊이 있는 이중적인 매력으로 인해 위험하고 아찔한 섹시함에 찬사를 보내는 이유이다. 물론 이제는 과거형이다. 마흔 넘은 아이 엄마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녀에게 이젠 퇴폐미와 섹시함은 거리가 멀어 보인다.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 홍콩 영화계에서 청순한 이미지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왕조현은 순수와 타락의 경계에 있는 퇴폐미로 아시아를 평정했다. 영화 속에서는 현실 너머의 신비하고 순수한 매력으로 줄곧 사랑을 받아왔지만 그녀가 퇴폐미로 주목을 받은 것은 일상에서 공개된 흡연 사진 때문이었다. 천년만년 청순할 것 같던 그녀가 산전수전 다 겪은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기존 신비로운 이미지와 절묘하게 맞물리며 치명적인 이질감을 관심을 받았다. 사랑을 받았는지는 모르겠고 퇴폐미는 확실하게 인정받은 것 같다.
1995년에 국내에 개봉한 영화 리빙라스베이거스는 퇴폐미를 가장 극적으로 잘 구현한 영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삶의 끝자락에선 인물들의 위태롭고 위험한 사랑을 다룬 영화인데 이 영화 이미지와 딱 어울리는 이미지의 배우가 바로 한고은이다. 전성기를 지난 여배우이지만 그녀의 리즈 시절을 회상하면 언제나 위태로운 알코올홀릭 이미지가 연상된다. 어눌한 발음에 늘 어딘가 정처 없이 헤매고 다니는 것만 같은 공허한 눈빛이 퇴폐미를 가중시켰다. 그녀의 이국적이고 내성이 잔뜩 쌓인 깊은 고독을 캐릭터로 잘 구현하지 못한 점이 아쉽게 남는 부분이기도 하다.
퇴폐미로 사랑을 받은 배우 못지않게 퇴폐적인 매력을 최고치로 발산한 영화 하나 더 추천해야겠다. <리빙라스베이거스>에 이어 <베티 블루 37.2>는 본능적이고 감각적이며 위험한 사랑을 다룬 이야기이다. 여기서 여배우 베티는 생긴 것보다 캐릭터가 퇴폐미의 절정을 보여준다. 전종서가 베티 캐릭터를 모방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섬뜩하게 닮은 모션이 인상적이다.
마지막으로 퇴폐미를 논할 때 절대 빠지지 않은 영화 <벨 데 주르>가 있다. 퇴폐적인 분위기를 넘어 퇴폐미의 깊이를 연구한 대표적인 영화이다. 우아하고 품위 있는 주인공 사브린느가 억눌린 욕망을 표현하면서 그야말로 퇴폐업을 하게 되는데 그녀의 일탈은 순수와 타락의 공존을 보면서 미묘한 퇴폐미를 훔쳐보는 재미가 있다. 추함보다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퇴폐미는 여배우 카트린느 드뇌브가 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