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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소설 모음

공포의 초록

by 무체

네덜란드 출신의 저명한 박사 ‘슈라겐트’가 대단한 발명을 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최근 아시아에 핵 방귀 가스탄이 터진 것보다 더 굉장한 뉴스가 또 있겠느냐만, 슈라겐트 박사가 놀라운 발명을 한 것임은 분명해 보였다.


그가 발명한 것은 식물의 초음파 신호를 볼 수 있는 기구였는데 얼핏 보면 평범한 안경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 안경을 밤에 쓰고 보면 숲속의 모든 정기가 우주를 향하여 빛을 발산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거였다. 슈라겐트 박사는 발명과 더불어 발견도 한 셈인데, 그러니까 지구에 생존하는 모든 식물은 우주와 소통하고 있던 것이라는 거다. 집집마다 화분 하나 없는 집이 없는데 이건 마치 위성 케이블을 수십 대 설치한 것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던 셈이다. 식물들의 근원지가 어디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모두가 각기 다른 행성을 향해 신호를 쏘고 있었다. 확실한 건 우리가 오래도록 믿고 있는 식물의 순수한 정체성은 전부 가면이었고, 모두가 외계 생명체 혹은 외계에서 퍼뜨린 소위 ‘프락치’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여러 종류의 식물을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각각 자기가 배정받은 행성과 내통하고 있었다니 기가 찰 일이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통신을 주고받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긴 평범한 가정에 특별한 정보가 있을 리가 없고 그저 어떤 에너지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연구 중이라니까 두고 볼 일이다. 어쩌면 개인의 길흉화복이 이 하찮은 식물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친다. 하지만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지. 우린 이미 외계인이 인류의 조상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소식도 접했기 때문이다.

공포스러울 정도로 식물이 세상을 잠식하는.jpg


슈라겐트 박사 말에 의하면 식물들은 행성과 일직선 소통을 하기도 하지만 같은 종끼리는 관계도를 만들면서 대장 식물이 상부에 보고하는 특징을 보인다고도 하였다. 그러니까 한 종류의 식물만 키우고 있던 가정은 한 행성하고만 소통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슈라겐트 박사는 식물,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던 식물로 가장한 외계생명체의 주요 요충지가 한국이라고 단정 지었다. 얼마 전 가스 폭탄 사건도 적국 세력이 쏜 것이 아닌 식물 외계인들의 필요에 의해서 조작 살포했다는 증거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외계 식물들은 한국의 수많은 교회 십자가를 통해서 신호를 주고받았을 확률이 높다고 하였다. 한국 교회 측은 이는 그저 우연에 불과한 것이라고 일축했지만, 위성으로 본 한국 교회의 십자가들의 조합은 무언가 대단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그 메시지가 피라미드에서나 볼 수 있는 알 수 없는 도형의 구불거림에 지나지 않았지만, 슈라겐트 박사를 추종하는 일부 세력들은 마치 그것이 대단한 발견이라도 되는 듯 호들갑이었다. 하지만 온전하게 믿을 수만은 없는 것이 교회를 설립한 관계자들이 외계인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토록 짜 맞추듯이 적재적소에 교회 십자가를 놓을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 같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성경이 외계인이 만들어 놓은 것이니 그들에게 특별한 신호를 보내어, 즉 쉽게 말해 무엇에 홀린 듯이 교회를 세우게 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슈라겐트 박사의 발명과 발견 이후 전 세계는 혼란에 빠졌고, 한동안 술렁이던 교회는 하나님과 외계인을 동일시하는 조짐을 보였다. 여하튼 그분이 그분이라는 거다. 이들은 한술 더 떠 인간을 창조하고 좋은 곳으로 인도할 분은 오직 외계인 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게다가 무신론자들은 대체로 외계인을 신봉하려는 경향이 짙었기에 이 주장의 파급은 상당했다. 그들에게는 외계인을 하나님으로 바꿔서만 부르면 될 일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교회는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이것은 가톨릭이 퇴마사를 주창하고 날뛰던 때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효과적이었다.


슈라겐트 박사 이전에 미국의 척 박사는 인류의 조상이 곰도 아니고 원숭이도 아니고 외계인이란 사실을 학회에 보고하면서 굉장한 파장을 몰고 왔었다. 아직도 그에 관해서 끊임없이 논쟁 중이지만 이젠 정말 ‘빼박’ 외계생명체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외계인이란 말이 무색하게 외계 식물이라니. 전 지구적 혼돈 상태에서 누군가도 나처럼 이렇게 열심히 현재의 인류가 처한 상황에 관하여 복잡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나는 상상력 풍부한 소설가의 자질을 최대한 자제하고 가급적이면 사실 그대로를 쓰도록 노력했다. 누군가는 이 상황에서 온전한 정신을 유지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우선 시국은 대단히 혼란스러웠다. 외계생명체를 신과 동일시한 십자가 종교 외에 다른 종교계는 외계인을 선점하지 못한 것에 대한 억울함을 토로하듯 존재를 부정하며 깃발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저마다 초인이 되고자 동요되었다는 점이다. 신비한 힘을 가진 외계생명체의 혈통이라는 자부심 때문인지 자신들의 잠재된 능력을 개발하고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런 현상은 통제 불능이었다. 실제로 외계생명체 혈통 효과인지 인간 고유의 믿음 강화 확신 능력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부 인간들은 초인적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는 가열되었고 그것은 순식간에 인간에 대한 우성과 열성인자의 구분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느냐 못하느냐로 나뉘어갔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니는 전도유망한 청년은 염력을 쓰지 못한다는 이유로 내쫓기는 사례도 발생하더니, 평생 게으른 루저가 하늘을 날기 시작하고 재벌이 되어 세상을 지배하게 될지도 모르는 세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점차 일손을 놓고 자신의 능력 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수천 년 동안 일구어놓았던 인류 문명이 하루아침에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해진 현실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지?


그래서 나도 초인에 도전하려고 시도해 보았다. 무턱대고 고층에서 하늘을 나는 실험을 해서 죽어나간 무모한 청소년들만큼은 아니어도 혼자서 가능성을 찾아보려고 애썼지만 능력은 발휘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한 건 아니다. 다만 내겐 집중하고 앉아있을 여유가 없을 뿐이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이렇게 현실 사태에 대한 글이나 쓰자로 태세 전환을 한 거다.


종교계가 들썩이고 사람들이 동요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모든 정치 경제가 원만하게 돌아갈 리 만무했다. 평온하던 지구에 기생하던 외계생명체도 슈라겐트 박사에게 정체가 들통난 뒤 혼란을 수습하고 싶었던지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장소는 거리의 가로수길이었는데 참모단으로 고무나무, 율마, 애플민트, 민들레가 횡렬로 늘어선 가운데 은행나무 앞에 슈라겐트 박사가 안경을 쓰고 그들을 대변해 통역을 하는 모습이었다. 대낮의 인터뷰라 초록빛 광선 같은 것은 볼 수 없었지만 슈라겐트 박사는 쇼가 아닌 진짜 그들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처럼 진지하고 놀라운 표정이었다.


식물들이 슈라겐트 박사를 통해 지구인에게 전한 말은 이러하였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그리고 지구인과 타협하겠다고. 그리고 그들을 데려가겠다고 하였다. 식물들은 더 이상 지구의 일들을 일일이 보고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는 휴직 상태로 산소나 만들고 있을 거라고. 그들이 말한 '곧'이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몇 년 동안 감감무소식이었다. 외계생명체가 인류에게 혼란만 가중시키고 그냥 가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는 무엇보다 정신을 차리고 대책을 세우는 데 시급해야 했다. 하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조차 하늘을 날겠다는 실험을 해대고 있었고 모든 기업과 학교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개인의 초인 능력 발휘에만 힘쓰고 있었다. 외계인이 비전을 제시해 주고 갔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악착같이 살려고 노력을 할 필요가 없는 세상에 놓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돈에 집착하고 사랑에 집착하고 삶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이미 왔는지도 모른다. 일부 고지식한 노인들이나 말귀 못 알아듣는 덜 떨어진 사람들, 그리고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 멋대로 살려는 마이동풍 사람들 빼고는 모두가 다 동요되고 있었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 끝에 상위 레벨로 삶을 살던 이들은 불안에 치를 떨었다. 새로운 세상이 와도 이와 같은 특권을 유지할 수 있을까? 오늘도 나는 그저 외계 식물의 소환 통보를 기다리며 글을 쓰고 있을 뿐.


그로부터 정확히 1년이 지났다. 인류는 여전히 초능력에 집착하고 있었고, 나는 여전히 아무런 능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사실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물론 대다수는 자기 암시나 집단 환각에 불과했지만, 일부는 실제로 물체를 움직이거나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 등의 능력을 보였다. 세계는 이들 '뉴휴먼’이라 불리는 이들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었다.


창가에 놓인 작은 선인장에 물을 주며 나는 문득 궁금했다. 왜 식물들은 돌아오지 않는 걸까? 약속했던 '곧'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이미 충분히 오래 기다린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내 방의 선인장이 빛을 내뿜으며 말을 걸어왔다.


“너는 왜 그렇게 기다리고만 있니?”


꿈인 줄 알았지만,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선인장은 여전히 희미한 초록빛을 발하고 있었다. 나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내가 미쳐가고 있는 걸까? 아니면 드디어 나에게도 초능력이 생긴 걸까?


“미치지 않았어. 그리고 네게 초능력도 없어. 나와 대화할 수 있는 건 네가 처음부터 다른 사람들과 달랐기 때문이야.” 선인장이 진짜로 말하고 있었다. 목소리는 없었지만, 그 생각이 내 머릿속에 직접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뭐가 다르다는 거야?” “네가 우리를 가장 먼저 의심했으니까.” 의심? 나는 슈라겐트 박사의 발견을 의심했던가? 물론 처음에는 누구나 반신반의했겠지만... “그게 아니야. 너는 왜 우리가 그토록 쉽게 정체를 드러냈는지 의심하지 않았어?”


그 말에 나는 얼어붙었다. 정말이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왜 수천, 아니 수만 년 동안 비밀리에 활동하던 외계 생명체들이 갑자기 한 과학자의 발명품에 정체를 들키고 그대로 받아들였을까? “이제 알겠구나. 이 모든 것이 계획된 거였어.”

나는 벌떡 일어나 컴퓨터를 켰다. 슈라겐트 박사에 대한 모든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그의 이력, 발명품들, 학술 논문... 그러나 이상하게도 '식물 초음파 안경' 발명 이전의 그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마치 그가 갑자기 나타난 사람처럼.


“그는 우리가 만든 거야. 인간들 속에 우리가 심어둔 존재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해? 식물이 외계인이라는 사실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나는 선인장을 집어 들었다. 그것을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인류를 혼란에 빠뜨리고...” “혼란이 아니야. 선별이지. 우리는 이미 충분히 오래 기다렸어. 지구라는 행성이 너희 인간들에게 적합한지, 혹은 너희가 우리 종에 합류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테스트하고 있었어. 슈라겐트의 발견은 마지막 실험이었지.” “그럼 초능력자들은...?” “그들은 우리의 신호에 반응한 자들이야. 우리 종으로 전환할 준비가 된 존재들이지. 곧 우리가 데려갈 거야.”


나는 하늘을 날고, 물체를 움직이고, 생각을 읽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현상을 떠올렸다. 그들이 정말 변화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자기 암시였는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어딘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왜 나에게 이걸 알려주는 거야?” “너는 특별해. 초능력은 없지만, 인류에 대한 충성심이 강해. 우리는 너 같은 사람들이 필요해. 새로운 세상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나는 손에 든 선인장을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충동적으로 주방으로 달려가 가스레인지를 켰다. 선인장을 태워버리고 싶었다. 이 외계 생명체들의 계획을 막아야 했다. “소용없어. 나는 이미 네 머릿속에 있어. 게다가 우리 계획은 이미 실행 중이야. 오늘 밤, 모든 것이 시작될 거야.”

창밖을 보니 달빛 아래 모든 나무와 풀들이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별이 땅으로 내려온 것 같았다. 도시 전체가 초록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들이 오고 있어.”

나는 선인장을 불 위에 들고 있었지만,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내 몸을 통제하는 것 같았다. “저항은 소용없어. 이제 슈라겐트 박사가 마지막 단계를 발표할 거야. 모든 초능력자들을 한 곳에 모아...”

TV를 켜자 긴급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슈라겐트 박사가 전 세계 초능력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여러분, 마침내 그 순간이 왔습니다.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도착했습니다. 모든 능력자들은 지정된 장소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시대가 시작됩니다.”


창밖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이상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 힘을 모아 선인장을 불 속에 던졌다. 타오르는 선인장에서 비명 같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 방의 다른 식물들도, 창밖의 모든 식물들도 이미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컴퓨터로 달려가 이 모든 사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알아야 했다. 인류의 마지막 순간을, 어쩌면 새로운 시작의 순간을 기록해야 했다. 창밖의 하늘이 초록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오고 있었다. 세상은 점점 공포의 초록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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