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한가인과 이나영이 한 행사에서 나란히 선 모습을 보고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다름 아닌 둘의 얼굴 크기 차이 때문이었다. 한가인도 작지 않은 얼굴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나영과 비교했을 때 한가인이 일반인처럼 커 보였기 때문이다.
어찌 된 일인지 요즘 사람들은 작은 얼굴을 최고로 치는 경향이 있다. 보다 폭넓게는 비율을 보는 것인데 21세기에 확연히 달라진 현상이다. 그러니까 과거에는 눈이 예쁘다, 코가 예쁘다 등으로 미시적으로 미적 기준을 매긴 시대가 있었다면, 현대는 얼굴이 작다고 하면 그걸로 게임 끝이다.
1990년대 초반 신인 배우 최진실과 엄정화를 관리하던 당대 최고 매니저로 불리던 배병수가 인터뷰 중에 한 말이 떠오른다.
소속사 대표가 그렇게 신인들을 데리고 직접 인터뷰하는 것도 특이한 일이었다. 그때 배병수는 둘 사이에 자신이 앉아 거리감을 둔 것은 둘의 얼굴 차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엄정화가 얼굴이 크다, 뭐 이런 식의 말을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때도 참 별일이다 싶었다. 아무도 얼굴 크기 가지고 뭐라 하는 사람이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X세대들 사이에서는, 이들이 학창 시절에 머리가 현저하게 큰 사람을 대갈장군, 큰 바위 얼굴 이런 식으로 놀린 적은 있지만 반드시 조롱의 대상은 아니었다. 조금 멋진 사람이 있는데 얼굴이 큰 게 흠 정도로 여길 뿐이었다.
이 무렵에는 롱다리 숏다리도 미의 기준에 포함하여, 특히 롱다리로 히트 친 이휘재가 개그맨임에도 여성들에게 상당한 인기가 있었다. 어쨌든 세상은 점차 남성이 머리가 너무 크거나 다리가 너무 짧은 것이 M자 이마나 배가 나온 남성보다 더 거슬리게 여겼다. 왜냐하면 당시 중년 남성들은 모두가 대머리에 배가 나왔고 그런 류를 이성적 호기심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배가 나오거나 대머리 아재는 남성에서 배제되니 거론할 필요성을 못 느낀 거다.
그렇게 트렌드가 변하는 가운데 여성들의 작은 머리도 관심의 대상이 되어 가고 있었다. 옛날 어르신들은 자녀가 머리가 너무 작거나 마르고 왜소하면 못 먹고 자란 티가 나거나 어딘가 미숙하고 부실해 보인다고 생각해서 머리가 커 보이는 걸 선호했다. 아무래도 머리가 크면 눈에 잘 띄니 큰 인물이 될 거라 보았나 보다.
그래서 현대에 작은 얼굴이 미의 기준에 포함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물론 동안처럼 보이는 것도 이해 불가한 미의 관점이었을 것이다.
여하튼, 그러고 보니 배병수의 말이 맞았다. 엄정화의 머리는 연예인 치고 큰 편이다. 참고로 90년대 이전에는 엄정화처럼 얼굴은 예쁘고 머리가 크며 몸매가 별로인 여성들이 많았다. 몸매가 각별히 예쁜 미인들은 에로 배우로 별도로 분류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나도 어렸으니 서술이 난감하다.
다시 얼굴 크기로 돌아가, 90년대 초반 머리 크기를 직접 언급해서 화제가 된 스타도 있었다. 미스코리아 선이 된 후 스타가 된 고현정이다. 고현정도 어떤 인터뷰 중에 자신의 단점을 두고 머리가 좀 크다고 하였다. 당연히 그때도 고현정이 자신의 단점을 얘기한 것을 대중은 단점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개의치도 않은 것 같다. 고현정도 실토한 만큼 그녀 얼굴이 신체가 워낙 마른 체형인 것을 감안해도 다른 연예인과 견주어도 작다고 볼 수 없는 얼굴이다.
그리고 비슷한 무렵 혜성처럼 등장한 배우 박소현이 등장한 이후 작은 얼굴은 대중의 관심을 급격하게 모으기 시작했다. 박소현은 청순미로 승부를 걸긴 했지만 유달리 작은 얼굴로 화제가 된 스타다.
사람들이 그녀 얼굴을 CD 크기에 비유하며 작은 얼굴 미인으로 각광을 받은 최초의 배우가 아닌가 한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아직 얼굴 작은 것이 미인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상태였다.
물론 여자 연예인들은 기본적으로 얼굴이 상당히 작은 편이다. 그런데 일반인에 비해 워낙 체형이 왜소해서 얼굴 크기가 작은 것이지 자신의 체형에 비해서 작다고 볼 수 있는 사람은 드문 편이었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부터는 키도 크고 비율도 좋고 얼굴도 작은 완벽한 미인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다. 그래서 오히려 얼굴이 크고 예쁜 게 이상해 보일 정도였다. 대표적으로 이나영이 그렇다. 사슴같이 맑은 생김새에 마르고 훤칠하고 얼굴이 너무 작았다. 그래서 더 근사해 보였다.
170센티도 안 되는 작은 키로 슈퍼모델 대회에 나가 수상한 한예슬도 작은 얼굴로 화제를 모았다. 인형처럼 완벽한 얼굴에 몸매 그리고 얼굴 크기까지 완벽하게 작았다. 그렇게 계보를 이어 고아라까지 왔다. 고아라도 얼굴 작은 것으로 치면 탑을 찍을 정도이다. 인형같이 완벽한 이목구비에 얼굴이 작아도 너무 작다. 비슷한 연령대의 다른 연예인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작다.
2020년대는 데뷔한 연예인 대부분 평균적으로 얼굴이 작다. 세대 유전자 변형이라도 생긴 것인지, 어쩜 이렇게 팔다리도 길고 크고 얼굴은 작게 태어났는지 가히 놀라울 정도이다.
작은 얼굴 트렌드는 당분간 아니 앞으로 영원히 지속될 것 같다. 얼굴이 크면 머리가 좋다느니 공부를 잘한다느니 하는 소리는 1980년대 소멸된 지 오래다.
공룡이 덩치에 비해 얼굴이 작아서 소멸한 거라고도 하지만 아무리 인간 얼굴이 작더라도 거대한 공룡에 견줄 일은 아니기에 얼굴은 작게 유지해야 한다. 타고난 이목구비야 성형과 화장으로 얼마든지 커버가 가능하지만 큰 머리는 정말로 대책 없다.
물론 두상의 모양을 변형시키거나 양악 수술 등을 하여 얼굴을 작게 만드는 데 일조를 하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얼굴을 작게 만들기는 어렵다.
따라서 얼굴이 상대적으로 큰 사람들은 자신의 덩치에 어울리게 작은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얼굴이 몸에 비해서 과도하게 커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헤어스타일은 물론 어깨도 키도 커 보이게 해서 비율 조절에 신경 쓴다면 충분히 작아 보일 수 있다. 작은 얼굴 크기까지 신경 써야 하는 시대이지만, 나이가 들면 얼굴도 커지는 현상은 감안해야 한다. 살이 찌지 않거나 얼굴이 늘어지지 않게라도 유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