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fashion story

리더에 따라 유행 패션도 달라졌던 시대 스토리

빅토리아 시대에서 에드 워드 시대

by 무체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재위한 64년간을 의미하며 1837년에서 1901년까지 해당한다. 이후 에드워드 시대(Edwardian Era)는 에드워드 7세의 재위 기간으로 빅토리아 여왕 서거 후 약 9년간, 그러니까 1910년까지였다.


시대 교체 시기임에도 빅토리아 시대와 에드워드 시대 패션 차이는 현저했고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만나는 교차점을 보여주었다.


억압된 아름다움의 빅토리아 시대


빅토리아 시대를 일컬어 억압된 혹은 고통스러운 아름다움이라고들 한다. 여성이 여왕이었음에도 여성들을 옥죈 시대이기도 했다.


여성들은 숨 쉬기 힘들 정도로 꽉 조인 코르셋을 의무적으로 착용하고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허리둘레 23인치를 목표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짐작이 간다.


가는 허리에 이어 스커트는 참으로 풍성하고 거대했다. 크리놀린이라고 불린 속치마는 직경이 180센티미터까지 갈 정도로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속옷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행했다.


크리놀린 이후 엉덩이 뒷부분만 부풀린 버슬이 등장해서 비교적 거동이 편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일상생활을 의복이 제약하고 있었다.


이런 불편한 속옷을 입고 코르셋으로 허리는 잔뜩 조이고 의상 색상은 검정이나 진한 갈색 혹은 짙은 남색이 주를 이루었다. 밝은 색상은 경박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레이스나 리본 그리고 촘촘히 달린 비즈 장식은 럭셔리하게 간주하였고 이것의 무게는 5킬로그램이나 나갔다. 크리놀린의 평균 무게 2킬로그램에 의상 무게는 5킬로, 그에 이것저것 장식까지 포함하면 옷에 몸이 눌리는 형국이었다.


산업혁명의 역설


산업혁명은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할 무렵에 1차 산업혁명이 완성되었고 재위 기간 내내 기술은 발달했고 기계는 잘 돌아갔다.

산업혁명을 간과할 수 없다. 먼저 염색 기술의 발전으로 이전보다 다양한 색상이 가능해졌고 인공 섬유 개발로 가볍고 실용적인 옷감이 등장했다. 재봉틀의 보급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져 가격도 저렴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는 이전보다 더 불편한 의상이 유행했다. 그 이유는 바로 산업혁명이 더 복잡한 의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기술의 발전은 과시의 수단이었다. 이는 대량생산의 역설과도 같았다. 기계로 레이스나 리본, 구슬 등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자 의상에 더 많은 장식을 달 수 있게 되었고 크리놀린도 산업혁명 덕분에 더 많이 저렴하게 생산이 가능했다.


그러다 보니 공장주나 철도왕 등 신흥 부유층이 등장하였고 이들은 기존 귀족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의상으로 부를 과시하려 들었다.


게다가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상류층 여성들은 절대 일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존재를 과시하려 들었다. 그렇기에 잔뜩 부풀린 크리놀린은 일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는 표식 같은 것이었다.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한 옷은 고급스러운 옷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불편할수록 우아하다는 가치관이 성립했다.


또한 산업혁명으로 인해 남성들이 공장에서 일하게 되자 여성들을 더욱 가정에 묶어두려는 가부장적인 문화가 팽배해졌다. 그래서 어찌 보면 움직이기 힘든 옷은 집안에만 있으라는 어떤 족쇄 같은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코르셋으로 몸을 조이고 크리놀린을 입혀 활동을 제한받으며 경제적 독립을 막는 일종의 사회적 장치가 된 셈이다.


빅토리아 여왕의 개인사가 만든 시대정신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이 이렇게 여성을 억압하는 장치가 빅토리아 여왕 치하에 성행했다는 점이다.


빅토리아 여왕은 63년간이나 대영제국을 통치한 절대권력자였다. 그녀는 9명의 자녀를 낳고도 계속 국정을 운영했으며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며 의지가 강한 여성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그녀는 40년간 미망인으로 지냈기에 이 점은 그 시대 전체 분위기를 좌우하는 데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여왕은 1861년 이후 평생 검은색 옷만 입었고 공식 행사에도 예외 없이 딱 한 번 빼고는 검은 옷만 입었다. 궁정에서도 검은 옷만 입으니 일반인들도 검은색을 즐겨 입게 되고 이때부터 여왕이 입는 검은 옷은 고급스럽고 점잖은 색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빅토리아 시대 패션이 어둡고 무거운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다.


미망인 여왕이 가져온 사회적 파장 및 도덕관은 생각보다 영향이 컸다. 보수적 도덕관의 강화로 영원한 사랑을 상징하며 당시 재혼은 배신이라는 가치관이 확산되었고 미망인은 평생 애도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수반되었다.


여왕 자신이 40년간 독신으로 지내니 성적 금욕주의가 생기고 의무와 절제를 강조하면서 청교도적 분위기의 실질적 원인 제공자가 되었다.


게다가 여왕 본인이 어찌나 보수적이었던지 여성이면서도 여성 참정권 운동을 극렬히 반대했다. 여성들이 정치에 나서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 어긋난다고 말하며 자신의 경우는 신이 선택한 특별한 경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일반 여성들은 전통적 규범을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처럼 개인적 상실이 새로운 시대정신을 만들었고 빅토리아 여왕의 미망인 생활은 단순한 개인사를 넘어 한 시대의 문화를 결정짓는 요소로 자리 잡았다.


에드워드 시대의 극적 변화


영원할 것 같던 보수주의가 1901년 1월 22일 빅토리아 여왕 서거 후 그녀와 함께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아들 에드워드 7세와 함께 완전히 다른 세상이 열렸다. 정치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과 패션에도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에드워드 7세는 어머니와는 전혀 다른 성향의 성격이었다. 그는 사교적이며 예술을 좋아하고 후원했으며 쉽게 말해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의 자유롭게 즐기는 방식은 곧바로 패션에 반영됐다.


왕의 취향에 맞게 여성들의 실루엣이 극적으로 변했다. 지금도 완벽한 보디라인이라고 불리는 S라인 실루엣이 이 무렵에 등장했다.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엉덩이를 뒤로 빼는 자세는 코르셋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는 혁신적인 방법이었다.


패션의 색상도 완전히 바뀌었다. 어두운 색을 벗어나 파스텔 핑크, 라벤더, 크림색이 유행하였고 의복의 천은 빅토리아 시대보다 훨씬 가벼워졌다. 장식 또한 간소해졌다.


그러다 보니 활동하기에 편하고 활동성을 더 강조하게 되었다. 날아갈 것 같은 여성들은 보다 가벼워진 차림으로 자전거도 타고 테니스며 골프 같은 스포츠를 추구하며 물 만난 고기처럼 놀았다. 당연히 이에 맞는 의상은 박차를 가하며 개발되었다.


남성 패션 스타일 또한 혁명이 일어났다. 긴 연미복 대신 짧은 재킷이 등장했고, 다양한 색상과 패턴의 넥타이가 유행했다. 이 시기에 캐주얼웨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했다. 그리고 TPO 개념이 등장하며 스포츠 웨어와 작업복, 주간과 야간의 의복 등을 구분 짓는 시대이기도 했다.


이러한 극적인 변화에는 기술적 발전 그리고 사회적 변화의 무브먼트가 작동한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여왕이 힘을 잃어가고 더욱 은둔 모드로 지내고 있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1880년에서 1900년대 비록 참정권은 생기지 않았지만 여성 교육도 확산되면서 사회 진출이 증가하였고 합리적 복장 개혁 운동이 등장하였다. 그렇게 스멀스멀 조짐이 보이다가 에드워드 7세가 재임하면서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 금욕주의를 살던 영국인들은 에드워드 시대를 맞이하며 급격하게 향락주의로 변했다. 어머니 시대에 보여주기용 작위적인 우아함에서 진짜 살기 위한 실용적인 편리함으로 패션의 목적이 변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도 기술의 발전이 실용을 억누르는 것이 아닌 순기능을 하기 시작하였다. 대량생산과 합리적인 가격대의 의상을 귀족만의 전유물이 아닌 패션의 대중화가 되면서 과시보다는 실용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두 시대의 대비


빅토리아 시대는 과학과 이성을 중시하면서도 신흥 부유층의 과도한 허세로 기술의 효율성보다는 과시를 추구하며 보낸 시기다. 문학적으로 황금기였고 청교도적 도덕관념과 금욕주의가 팽배했다. 보수적인 미망인 여왕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아들 에드워드 시대는 레저와 스포츠 문화가 발달하고 예술에서 모더니즘 경향이 등장하였다. 억압된 분위기에서 갑작스럽게 자유를 얻으니 사치와 향락을 추구하게 되고 그렇게 벨에포크, 아름다운 시절로 불리게 되었다.


도덕적 엄숙함과 작위적 우아함의 빅토리아 시대는 안정지향적이었다면 에드워드 시대는 화려한 가운데 변화에 대한 불안으로 인한 쾌락이 만연했음도 특징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빅토리아 시대에서 에드워드 시대로의 패션 변화는 단순한 스타일 변화 이상의 사회 전체의 가치관 변화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산업혁명으로 인해 초기에는 기술의 과시로 인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의 무게를 옷이라고 걸치고 다녔고 일정 과도기를 거쳐서야 기술 발전이 가져온 실용의 미학을 제대로 즐기게 되었다는 점이다.



빅토리아 시대와 에드워드 시대 스타일 차이에 관한 원문 보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밀리너리 멋지게 쓸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