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에서 중세 중반까지의 서양 패션 역사는 전반적으로 복식 변화의 리듬이 완만했다. 하지만 중세 말기부터 지중해 지역의 활발한 무역활동이 전개되면서 새로운 직물의 생산과 수입, 체형에 맞도록 천을 재단하고 봉제하는 기술의 진보, 궁정 사교문화의 발생으로 유행이 가속화되었다.
부르주아 사회가 되는 18세기말까지는 귀족과 상류 계층이 유행을 이끌어나가며, 이들이 만드는 궁정사회의 변화는 주기적으로 나타나 반영되었다. 반면 농민과 시민들은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착용하기는 하지만 지배 계급과는 많은 차이를 보여줬다.
동로마 제국인 비잔틴 제국은 전통적인 고대 로마의 문명을 계승, 보존하면서 동양적인 색채가 짙은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 종교적 영향이 매우 컸다고 볼 수 있다.
비잔틴 제국은 약 1000년 이상을 존속했다. 그중에서 6~11세기 약 500년이 핵심적인 주요 기간에 해당한다.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종교적인 색채와 신과 인간과의 신비로운 관계를 찬양하기 위해서 성경에 나오는 장면들이 문양으로 사용되었고, 원모양, 양, 비둘기, 라틴십자, 성서의 장면 등의 종교적인 문양이 의복 전면이나 선 장식(braid), 타블리온(tablion), 세그멘테(segmentae) 장식 등에 많이 이용되었다.
또한, 육체를 부정하는 그리스도교의 영향이 의복에도 나타나면서 신체가 밖으로 노출되지 않도록 매우 보수적이며 엄숙한 스타일로 의상을 입었다.
로마네스크 시대의 복식은 로마의 스타일에 게르만 민족의 요소, 로마 가톨릭의 영향, 비잔틴의 동양적 요소가 융합되어 독특한 스타일을 형성하였다. 또한, 신분제도를 확립시킨 봉건제도에 의해 보석이나 의복이 당시의 신분을 나타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1~12세기는 남녀의 옷길이가 긴 언더튜닉인 쉥즈(chainse) 위에 소매부리로 갈수록, 그리고 스커트 밑단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형태의 튜닉인 블리오(bliaud)를 입고, 허리에는 거들(girdle)을 착용하였다.
13세기에는 블리오를 대신하여 단순한 형태의 꼬뜨(cotte)를 착용하였다. 십자군 전쟁의 영향으로 군인들이 갑옷 위에 입었던 쉬르코(surcot)가 일반인들에게 널리 유행하였다.
종교적인 영향으로 여자들의 헤드 드레스가 발달하면서 직사각형의 천으로 얼굴, 머리, 목을 감싸는 웽플(wimple), 샤프(chape), 고젯(gorget), 모자형의 필박스(pillbox) 등이 나타났다. 남자들은 후드와 케이프가 붙어있는 모자를 모든 계층에서 애용하였다.
신발은 구두와 부츠 형태로 앞부리가 뾰족한 스타일을 추구했다. 이것은 크랙코우(crackow)라고 불렀다. 주로 가죽이나 실크로 만든 크랙코우를 보호하기 위해 나막신 패튼(patten)도 함께 덧신었다.
십자군 원정으로 주머리를 허리 벨트에 매달고 다니는 풍습이 유행하였다. 버클 달린 벨트, 목걸이, 귀걸이, 반지, 머리핀 등의 장신구를 하였다.
고딕 시대의 복식은 고딕 스타일 수직성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지상에서의 안정감보다는 하늘에 대한 숭배심을 강조하기 위해서 건축의 외관을 첨탑으로 높이 세워 수직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천장이나 창문을 첨두아치의 형태로 수직 상승감을 강조하였다.
14세기 복식은 각 가문의 문장을 수놓아 만든 문장복과 부분적으로 색이 다른 파티 컬러드 코스튬(parti-colored costume)으로 특징이 표현되는데 남녀 모두 몸에 꼭 끼는 형태의 코트아르디(cotehardie)를 착용하였다.
허리에 벨트를 매면 굵은 주름이 잡힐 정도로 품이 넓은 호플란드(houppland)는 주로 상류층에서 입었다. 십자군 군인들의 갑옷 속에 입던 푸르푸앵(pourpoint)은 남성복의 겉옷이 되었고 쉬르코는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15세기부터 복식이 화려해지기 시작하는데 여성들은 각 나라마다의 다양한 스타일의 로브(robe)를 입었다. 종교적인 영향에서 벗어나 목과 가슴을 드러내는 변화를 보였다.
특히 여성들은 고딕 스타일의 영향을 받은 높고 끝이 뾰족한 고깔 모양 모자 헤닌(hennin)과 터번형, 뿔모양, 하트 형태의 새로운 헤드 드레스가 유행했다.
신발은 앞이 뾰족하고 긴 크랙코우와 패튼, 그리고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든 부츠를 즐겨 신었다. 여성 신발은 남성의 신발보다 앞부리 뾰족한 부분의 길이가 짧은 것으로 구분되었다.
르네상스 시대는 인간 중심주의의 문화를 추구하고, 인간 자연의 체형을 추구하는 복식 문화로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남성은 근육 등의 남성미를 강화하고 여성은 가는 허리와 풍만한 가슴, 엉덩이에 시선을 집중시키고자 기교적이면서 과장된 장식을 인위적으로 하여 인체미를 강조하는 스타일을 양산했다.
르네상스 모드 초기에는 이탈리아의 영향을, 중기에는 독일의 영향을, 말기에는 스페인의 영향을 받아 그 스타일이 각각 다르게 특징지어진다. 전반적으로 이러한 특징적인 모드에 영향을 준 디자인 요소는 슬래시(slash), 러프(ruff), 패드(pad) 등이 해당한다.
자연스러운 실루엣과 플랫칼라(flat collar)가 특색인 서민풍의 네덜란드 모드는 실용적, 합리적인 것을 지향하는 도시 부르주아의 생활윤리를 배경으로 남성복의 근대화를 추진하였으며, 여성복에 있어서도 간소하고 자연스러운 스타일이 완성되었다.
남성은 허리선 위로 더블릿의 길이가 짧아지면서 셔트가 밖으로 보이게 장식하였다. 바지는 직선형으로 길이가 길어지는 변화가 보이며, 벨트 대신에 발드릭(baldric)을 하였다.
바로크 시대의 특징을 잘 표현한 페티코트 브리치즈(petticoat breeches)는 치마바지와 같은 형태로 허리둘레와 양 옆부분에 화려한 색의 리본다발 장식을 한 의복이다.
1660년 이후에는 더블릿 대신에 코트와 조끼가 새롭게 등장하였다. 직선형 스타일의 코트에는 단추장식, 포켓(pocket) 뚜껑이 달린 포켓, 넓은 소매 커프스(cuffs)가 특징적인 디테일이다. 조끼는 코트와 같은 형태이나 옷길이만 약간 짧은 형태였다. 목에는 레이스나 천으로 된 크라밧트(cravat)를 감아 매었고, 맨틀과 품이 넉넉한 스타일의 외투를 덧입었다.
여성의 가운은 초기에는 자연스러운 실루엣이었다. 중기부터 다시 스커트가 넓게 부풀려졌으며, 후기에는 긴 스커트 자락을 엉덩이 쪽으로 끌어올려 강조한 버슬(bustle) 스타일로 나타났다. 가운 안에는 슈미즈, 코르셋, 페티코트를 입어 실루엣이 잘 표현되도록 하였다.
중기부터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 남성은 1660년대 이후부터 가발을 착용하였다. 챙이 넓은 모자와 크라운(crown)이 높은 슈가 로프 해트(sugar loaf hat), 트라이콘 해트(tricorn hat)를 즐겨 썼다.
여성은 컬을 만들어 머리를 부풀리거나 어깨로 늘어뜨리는 헤어스타일을 추구하였다. 1690년대에는 머리를 리본으로 장식하는 퐁탕주(fontange) 헤어 스타일이 유행하였다.
입구가 넓게 퍼지는 형태의 부츠가 남자들에게 유행하였다. 여자들은 굽이 높은 쇼핀느를 신었고, 남녀 모두 장갑, 머프(muff), 부채, 마스크와 함께 얼굴에 여러 모양의 헝겊조각을 붙이는 패치장식이 유행되었다.
로코코란 '로카일(rocaille)이라고 불리는 조개껍질의 세공'에서 유래되었다. 즉, 조개껍질의 유연한 곡선 구성에서 연유되었으며, 밝고 화려하며 세련된 귀족 취미의 문화를 지칭한다.
꽃, 리본, 루프, 보석, 조화 등을 이용한 장식, 환상적인 대형 헤어스타일, 가느다란 허리의 강조와 부풀린 스커트 등에 의해서 우아한 로코코 스타일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의 정치와 모드를 리드하였던 퐁파두르(Pompadour) 귀부인과 마리 앙트와네트(Marie Antoinette) 왕비의 취향대로 프랑스 궁정 및 전 유럽이 유행의 영향을 받았다. 마리 앙트와네트는 황실의 디자이너로 로즈 베르댕(Rose Bertin)을 기용하여 다양한 스타일의 의복을 유행시켰다.
프랑스혁명의 격동기를 지나 시민 사회가 성숙되면서 영국 모드의 영향을 받은 남성복이 근대적인 시민복으로 완성되어, 코트, 조끼, 바지의 기본 의복으로 현대 남성복의 슈트(suit)가 정립된 시기이다.
1797년 나폴레옹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제1제 정기(1804-12년)에 걸쳐서는 고대적 취미가 모드의 중심이 되는데, 크게 네오클라시즘(Neo-Classicism)과 엠파이어 스타일(Empire style)로 분류된다.
이 시기 패션 특징은 백색 머슬린으로 만든 하이 웨이스트 라인의 슈미즈 드레스가 대표적이다. 고대풍으로 팔을 드러내고, 신체의 선이 드러날 정도로 아주 얇은 직물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스핀서라는 짧은 길이의 재킷, 펠리스, 르뎅고트를 외투로 착용하였다.
남성은 짧은 머리형태에 비버해트나 바이콘(bicorn)을 썼으며, 여성은 그리스의 헤어 스타일을 재현하면서 조화 장식이 있는 밀짚모자를 애용하였다. 또한 남성은 다양한 형태의 부츠와 구두를 신었고, 여성은 슬리퍼를 즐겨 신었다. 남성은 늘어뜨려진 시계줄장식과 지팡이를, 여성은 파라솔, 머프, 작은 핸드백을 애용하였고, 남녀 모두에게 장갑은 중요한 장신구였다.
1820년경, 신고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로코코에 대한 관심이 로맨틱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X자형의 스타일로 등장한다. 이 시기 복식 특징으로 남성은 부풀려진 소매와 목수건으로 어깨가 넓어 보이도록 하여 X자형 실루엣을 표현하였으며, 여성은 소매의 위쪽을 크게 부풀린 양다리형의 소매와 가는 허리, 그리고 페티코트를 여러 겹으로 겹쳐 입어 부풀려진 스커트로 실루엣을 표현하였고 러플, 레이스, 터커장식을 많이 사용하였다.
남성은 크라운이 높은 실크해트를 즐겨 썼고, 여성은 아폴로 노트 헤어 스타일과 소시지 컬이 유행하였다. 앞 부리가 네모난 구두와 부츠는 남자들의 신발 형태이며, 여성은 굽이 없는 슬리퍼 형태의 신발과 부츠를 애용하였다. 남성들이 애용한 장신구는 지팡이, 장갑이며, 여성들은 파라솔과 머프, 레이스 장식이 있는 손수건과 함께 스톨을 즐겨 사용하였다.
1850년경에 크리놀린(crinoline)이라는 스커트 버팀 도구가 등장하면서, 스커트가 역사상 가장 넓은 스타일을 형성하게 된다. 당시 패션계의 여왕은 나폴레옹 3세의 부인 유제니(Eugenie)로 영국의 디자이너인 찰스 워스를 초청하면서 파리에 오트 쿠튀르가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여성 모드를 지배하게 되었다. 또한 재봉틀의 발명과 함께 의복의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면서 기성복 산업이 추진되었다.
1870년대부터 유행한 버슬스타일은 크리놀린을 대신하여 엉덩이 부분에 버슬이라는 버팀 도구로 부풀리고, 로브의 뒷자락을 끌어올려 장식함으로써 표현된 여성의복의 스타일이다. 기성복이 널리 보급된 남성복은 코트가 정장용, 평상복으로 구분되면서 다양한 스타일이 나타났으며, 컬러 슈트와 턱시도 재킷이 보편적이었다.
여성복은 몸에 잘 맞는 보디스에 말안장과 같은 형태의 버슬을 엉덩이에 둘러 스커트의 실루엣을 표현하였고, 로브가 땅에 끌리도록 길게 착용하였다.
남성은 짧은 길이의 머리에 정장에는 실크해트, 평상시에는 중절모, 스포츠용으로는 밀짚모자와 캡을 착용하였다. 여성은 작은 크기의 펠트나 밀짚으로 만든 모자에 리본, 조화, 깃털, 레이스 등으로 장식하였다. 발목길이의 부츠와 구두는 주로 남성들이, 중간 높이의 굽이 달린 구두와 슬리퍼는 여성들이 신었다. 남성은 여전히 시계줄과 지팡이를, 여성은 파라솔, 부채, 스카프 등을 애용하였고, 남녀 모두에게 있어서 장갑은 중요한 장신구였다.
1890년대에 유럽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친 아르누보(Art Nouveau)의 미술양식이 모드계에도 영향을 주어, 새로운 코르셋에 의해서 옆에서 보았을 때 가슴은 새가슴처럼 나오고 허리는 가늘고 엉덩이는 불룩 나온 S자형의 스타일을 이루었다.
여성들의 기성복인 깁슨 걸 스타일은 양다리형의 소매와 종형의 스커트로 아워글라스 실루엣을 나타내었다. 또한 유럽과 미국에서는 싸이클링, 테니스, 수영 등 여자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일부에서 높아지면서 스포츠 웨어의 유행이 확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