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주는 호구 파트너를 원한다

'자발적 호구 ' the beginning _

by Tugboat

"대학 졸업 후 만난 세상은

내게 호구가 되길 압박해 왔다.

치열했던 나의 저항들이 결국 실패했을 때

뜻밖에도 나에게는 평화가 찾아왔고,

성과들이 생겨났다."



광고판, 상상과 현실 사이에서 길을 잃다


내 사회생활의 첫 시작은 '광고쟁이'였다. 그 이름도 멋져 보이는 광고기획자. 하지만 힘들게 준비해 들어간 광고대행사는 꿈꾸던 곳과는 거리가 멀었다. 밖에서 상상하던 화려함이나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대행사’는 말 그대로 ‘남의 일을 대신해 수행하는 곳’이다. 광고대행사는 단순히 광고 제작을 대신해주는 회사일 뿐이었다. '이들이 아니면 안 되는' 존재가 아니라, '이들이 없으면 귀찮아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입사 전부터 품었던 '광고인'이라는 직업적 자긍심은 이내 빛을 잃었다.


광고기획자는 전문가로 인정받기 쉽지 않았다. 우리 업무는 광고를 의뢰받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남들보다 먼저 깊이 이해하고, 제대로 전달할 콘셉트와 방향을 찾는 일까지였다. 메시지는 카피라이터가 쓰고, 그림은 아트디렉터가 그리며, 영상은 PD와 감독들이 만든다. 이런 구조 속에서 과연 우리가 광고주들 눈에 전문가로 보일 수 있을까?




모두를 이해시키는 쉬운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같다


광고주들보다 그들의 상품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고민 끝에 탄생시킨 기발한 광고 콘셉트가 역설적으로 좋으면 좋을수록 ‘별것 아닌 아이디어’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모두를 이해시킬 수 있을 만큼 쉬운 말은, 마치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라도 당장 낼 수 있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현장 업무 구조는 우리가 속한 광고대행사의 가치를 퇴색시켰다. 광고의 꽃이라 불리는 TV 광고물조차 외부 프로덕션에 외주를 주고 관리하는 형태라니. 이제 와 돌이켜보면, 당시 일부 광고주들이 대행사를 '인력 파견업체'나 '심부름센터'처럼 대했던 것도 어쩌면 이해가 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대학 때 팀 과제로 조악한 광고물을 만들던 내가 오히려 더 광고인답고 전문가 같았다.




광고는 광고주가 만들고, 실패는 대행사가 책임진다


그럼 차라리 자존심 내려놓고 시키는 일이나 열심히 하고 돈이나 받을까? 하지만 그런 편한 길은 허락되지 않았다. 광고대행사의 기획 담당자는 해당 광고 캠페인을 이끌어가는 리더여야만 했다.

리더십은커녕 파트너십조차 제대로 형성하기 힘든 상황에서 말이다.


광고계에는 “광고는 광고주가 만드는 것”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있다. 아무리 잘난 척해봐야 결국 광고주가 원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상품도 광고주 것이고, 비용도 광고주가 내는데, 기껏 해야 일을 돕는 역할이니. 아, 물론 광고는 광고주가 만들고, 그 실패의 책임은 대행사가 진다. 계약 해지라는 방식으로.


결국 광고기획자에게 광고 기획력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영업력'이었다. 뭐라도 내 뜻대로 해보려면 최우선으로 갖춰야 할 능력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기획'이라 부르는 AE(Account Executive)라는 직군을 일본에서는 ‘영업’이라 칭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영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사실 업무적 관점에서 광고주의 주관은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대 고객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서 우리의 기획안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만, 해당 상품만 평생 바라봐 온 광고주가 볼 수 있는 면도 분명히 있을 테니까. 설령 그들의 생각이 틀렸고 위험한 전략이라 해도, 끈질기게 설득하거나 적절히 반영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는 있다. 비즈니스 계약으로 맺어진 '갑'과 '을'의 관계에서, 돈을 내는 '갑'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을'에게 억지를 부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억지가 통하는 순간, 이상한 사람들이 나타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이상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대충 말해도 괜찮은 결과가 나오고, 억지를 부려도 어떻게든 반영되며, '개떡 같은 소리'를 해도 '찰떡 같은 결과물'이 나오는 상황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다. 영업 마인드로 광고주를 최대한 지원하다 보니, 누군가는 이 계약을 마치 '노예'를 사들인 것처럼 느껴지나 보다.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며 억지를 부리거나 짜증을 내도, 당연히 웃으면서 받아주길 기대했다. 우리 잘못이 아닌 천재지변이나 불가항력의 상황조차 쩔쩔매며 사과하길 원하기도 했다.


이들에게 사적 요구는 일상이었다. 새벽이건 이동 방향이 반대이건 집이나 회사 앞 픽업/드롭 서비스는 당연한 일이었고, 야근 중에 전화받고 찾아가 회식비를 대신 결제한 일도 부지기수다. 때로는 술에 취한 광고주가 지저분한 앞접시에 따라주는 소주 반 병을 마셔야 했던 순간도 있었다.


이런 마인드가 다시 업무로 이어지면 그야말로 지옥문이 열린다. 이런 사람이 대행사 기획담당자의 말을 들을 리 만무하다. "어디 말을 보태려 드는가, 허드렛일 하는 하인 주제에"라는 태도로 일관한다. 그저 해달라는 대로 하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광고 캠페인의 실패, 계약 해지, 그리고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평판 하락이라는 슬픈 결과를 예감하면서 말이다.




현실과 타협하니, 운전대가 넘어왔다


"사람 차이 아니냐"고? 맞다, 사람 차이다. 하지만 더한 사람, 덜한 사람은 있어도 아예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없더라. 한순간 모든 것을 정리할 수 있는 '힘'의 유혹은 결코 이기기 힘들다. 어떤 상황에서든 이 힘이 발휘되면 '을'은 입을 닫아야 한다.


"나같이 무식한 놈 보라고 만든 게 광고 아니오? 하라는 대로 하면 되지, 뭘 어려운 말만 자꾸 늘어놓습니까?"


이런 식이다. 일은 당연히 잘해야 하지만, 내 말에는 토 달지 말고 시키는 대로 결과물을 내오라는 것. 이게 내가 겪었던 수십 명 광고주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일상에서든 업무상에서든 저런 사람이 내 옆에 있으면 정말 좋지 않겠는가? 그렇다. 누구나 자신을 따르는 능력 있는 '호구'가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광고주들 역시 큰돈을 지불했으니, 그만큼 똑똑하고 말 잘 듣는 호구를 원했던 것이고.


노련한 선배들을 따라 광고주들이 원하는 '을' 역할을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니, 머지않아 프로젝트의 운전대가 나에게 넘어왔다. 의외로 쉬운 일이었다. 나를 조금만 내려놓으니 신뢰가 쌓였고, 실적도 올랐다. 나와 회사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상황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시시때때로 직업적 자긍심과 인간적인 자존감이 위협받았다. 끓어오르는 패기와 오기까지 더해져 '확 다 그만둬 버릴까' 하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다. (실제로 공채 동기 10명 중 3명이 이 같은 이유로 2년 안에 업계를 떠났다.)




역설적이게도 이제는 말할 수 있었다, 내가 만든 광고라고


결국 현실과 타협한 결과는 꽤 괜찮았다. 덕분에 이제야 이 캠페인의 성패를 책임져도 억울하지 않게 된 것이다. 물론 광고주를 통제한다는 건 여전히 어불성설이었다. 광고는 변함없이 광고주가 만들고 있었고, 그들의 뜻을 거스른 우리의 기획안은 시사회 후 누더기가 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스스로 떳떳하게 "광고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어디서 우리 광고가 나오면 "저거 내가 만든 거라고" 허세를 부릴 수도 있었다.


현실과 타협한 익숙함에 완전히 빠져 있을 무렵, 나에게 전혀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더 이상 '호구' 노릇을 하지 않아도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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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