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게 살기 위해 욕망을 버리려 애쓰지 마라.
오히려 자신의 욕망을 깊이 들여다본 사람만이, 타인의 행복도 지켜줄 수 있는 법이니.
오늘은 한 낮에도 영하를 유지한 날이다.
창 밖의 외투를 동여맨 사람들과 과한 중앙 난방 때문에 반팔을 입고 있는 내 모습이 대비되어 이채롭다.
어느 새 창밖으로 붉은 노을이 내려앉는다. 하루 중 빛과 어둠이 가장 치열하게 뒤엉키는 시간이다.
나는 믹스 커피 알갱이 몇개를 넣은 잔에 끓는 물을 붓는다.
커피를 보리차처럼 만들어 마시는 나만의 습관으로 뿌듯하게 티스푼을 젓는다 .
달그락.
몇개 안되는 알갱이를 녹여 없애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저녁이다.
방금 읽었던 글귀 하나가 녹아드는 커피 알갱이처럼 내 마음속에 번져나간다.
원래 세상은 하나에서 비롯되었다. 빛과 어둠이 그러하듯,
욕망과 도덕심도 그 뿌리는 같다.
사람들은 흔히 욕망을 '짐승의 것'이라 하고, 도덕을 '사람의 것'이라 구분 짓곤 한다.
욕망은 나를 채우려는 이기심이고, 도덕은 남을 위해 참는 인내심이라 가르치니까.
하지만 커피 한모금과 함께 좀전의 글귀를 음미하며 생각해보니,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욕망이란 결국 '내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도덕이란 '내 행복이 당신을 다치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둘의 종착지는 결국 하나다.
'인간의 행복'.
나도 사람이고 너도 사람이니, 내가 웃고 싶은 만큼 너도 웃고 싶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도덕의 시작 아니겠는가.
그러니 욕망과 도덕은 서로 싸우는 적이 아니다.
마치 한 나무에서 뻗어 나온 두 개의 가지와 같다.
햇볕을 쬐려 위로 뻗는 가지가 욕망이라면, 뿌리를 단단히 내려 그 가지를 지탱하는 것이 도덕일 테지.
탁.
빈 커피잔을 찻상에 내려놓는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괴로운 건, 욕망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 욕망을 '나쁜 것'이라 억누르거나, 반대로 '나만'을 위해 휘둘렀기 때문일 게다.
엄지손가락 아래 놓인 '전송' 버튼을 생각해보라.
그 버튼은 그 자체로 소통도 단절도 아니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응원하기 위해 누르면 ‘마음의 반창고’가 되고,
익명 뒤에 숨어 누군가를 깎아내리기 위해 누르면 ‘보이지 않는 흉기’가 된다.
우리의 마음도 그렇다.
욕망이라 해서 무조건 악이 아니고, 도덕이라 해서 무조건 선이 아니다.
당신의 욕망이 누군가의 웃음을 뺏지 않고 당신을 일으켜 세운다면, 그것은 가장 뜨거운 선(善)이 된다.
반대로, 당신의 도덕이 타인을 숨 막히게 하고 비난을 위한 도구가 된다면, 그것은 차가운 악(惡)이 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중요한 건 '무엇'이냐가 아니라, '어디'로 향하느냐다.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 아니면 불행하게 하는가.
그 단순한 이치 하나면 족하다.
그러니 오늘 밤, 무언가를 간절히 원했다 해서 스스로를 탓하지 말기를.
그 뜨거운 마음이 있었기에 당신은 오늘 하루를 버텨냈을 테니까.
다만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나의 행복을 바라는 그 간절함으로, 타인의 행복도 아주 조금만 배려해 주는 것.
빛이 있어야 그림자가 생기고, 그림자가 있어야 빛이 돋보이는 것처럼.
당신의 욕망과 도덕이 서로를 껴안을 때, 당신이라는 사람은 비로소 온전해질 테니.
오늘 당신의 욕망은 안녕하신가.
그 마음이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오늘 충분히 훌륭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