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용인 양지의 한 펜션에 다녀왔다.
지인들과 바비큐를 먹고, 게임을 하고, 삼삼오오 흩어져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는 길에는 남편과 함께 차를 탔다.
판교에서 한 청년을 태웠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직장어린이집 교사였다.
청년은 첫 월급 이야기를 했다.
무엇을 사고 싶은지가 아니라,
가족에게 어떻게 보탤 수 있을지를 먼저 말하고 있었다.
작은 집에서 여섯 식구가 살았고,
이제 방 다섯 개가 있는 집으로 옮긴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생긴 빚을 형제들이 함께 갚기로 했다고 했다.
매달 백만 원씩.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젊음보다 먼저 책임을 말하는 얼굴이었다.
가족이란
함께 꿈을 갚아가는 사이인지도 모른다.
⸻
펜션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누군가는 불을 피우고,
누군가는 고기를 굽고,
누군가는 식탁을 차리고 있었다.
우리는 늦게 도착해
차려진 상 앞에 앉았다.
불빛 아래 고기가 익고,
사람들의 웃음이 번지고,
밤은 천천히 내려앉았다.
식사를 마친 뒤, 나는 내 자리를 치웠다.
그때 누군가 먹은 자리를 그대로 두고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이상하게 그 사람보다
내가 먼저 보였다.
아,
나도 저랬구나.
먼저 온 사람의 수고를 배경처럼 지나쳤던 날들.
차려진 식탁을 당연하게 받았던 시간들.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아침 7시부터 붙들고 있던 보고서들이 떠올랐다.
직장에서도 우리는 늘 함께 밥상을 차린다.
누군가는 초안을 쓰고,
누군가는 숫자를 맞추고,
누군가는 문장을 다시 놓는다.
잘 써진 보고서는 사람을 웃게 하지만,
어떤 문서는 마음을 먼저 지치게 한다.
계산은 맞지 않고,
문장은 비틀려 있고,
맥락은 다른 길로 새어 있다.
몸이 괜찮은 날에는 고칠 수 있다.
그러나 피로가 먼저 출근한 날에는
문서보다 사람이 미워진다.
왜 이렇게 썼을까.
왜 한 번 더 보지 않았을까.
그러다 문득 멈춘다.
나도 엉성한 문서를 냈고,
마감에 쫓겨 넘겼고,
누군가의 밤을 빌려 여기까지 왔다.
⸻
한병철의 『피로사회』가 떠올랐다.
그는 현대인이 더 이상 누군가의 명령에만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사람은 스스로를 몰아세운다.
더 잘해야 한다고,
더 견뎌야 한다고,
더 증명해야 한다고.
그렇게 우리는 성과를 내는 사람이 되지만,
때로는 사람을 잃는다.
보고서 뒤의 사람을 보지 못하고,
식탁 뒤의 손을 보지 못하고,
가족 뒤의 마음을 보지 못한다.
가축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끌려가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를 쓸모로만 계산하게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
오늘 밤, 나는 여러 개의 식탁을 보았다.
차 안에서 청년이 펼쳐 보인 가족의 식탁.
펜션 마당에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차려낸 저녁 식탁.
직장에서 우리가 매일 함께 차리는 보고서라는 식탁.
그 모든 식탁 앞에
한때의 내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오늘 내가 다녀온 곳은 용인이었지만,
어쩌면 아주 오래 전의 어느 자리였는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밤의 불빛들이 천천히 뒤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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