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는 왜 늘 늦게 오는가

by 엘리스

「후회는 왜 늘 늦게 오는가」



— 1000일 글쓰기 3일차



후회는


언제나 사건이 끝난 뒤에 온다.



그 순간에는


옳다고 믿었다.


최선이라 생각했다.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조용히 돌아온다.



그때 왜 그랬을까.


조금만 더 참을 걸.


한마디만 더 친절할 걸.



후회는


이미 지나간 시간을


다시 펼쳐 보게 만든다.





아버지가 이 땅을 떠난 뒤


나는 오래도록


한 장면에 붙잡혀 있었다.



조금 더 안아드릴 수 있었는데.


조금 더 존중할 수 있었는데.


조금 더 이해하려 노력할 수 있었는데.



그때는


상처받은 나만 보였다.



지금은


상처 주었던 나도 보인다.



그래서 더 아프다.





아버지도


그의 아버지에게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바이올린을 켜시던


한량이었다고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버지는 돈에 집착하셨다.



친구도 거의 없었고


두 가지 일을 하며


내 나이 열 살 되던 해


1979년, 2층 집을 지으셨다.



그리고는


하던 일을 그만두셨다.



그 이후


우리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삼 형제는 늘 돈이 부족했다.


용돈도 없었고


친구 집 방문도 자유롭지 않았고


학원도, 외식도, 여행도 없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무시했다.



전쟁 같던 집을


벗어날 생각만 했다.



그 집을 떠나


시집을 갔지만


그곳은 또 다른


펄펄 끓는 지옥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미워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파킨슨병과 치매로


힘들어하실 때



나는 곁을 충분히 지켜드리지 못했다.



길거리를 배회하시고


온몸에 멍이 들어 돌아오시던 날들.



동네 사람들과


파출소 직원들이


집으로 모셔다 드리곤 했다.



결국


요양원으로 모셨다.



병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화해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내가 사고뭉치지… 미안하다.”



그 말이


내 마음을 무너뜨렸다.





왜 후회는 늘 늦게 올까.



그때 우리는


감정 안에 있기 때문이다.



억울함 안에,


분노 안에,


자존심 안에.



감정은


시야를 좁힌다.



지금의 상처가


전부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감정은 가라앉고


비로소 전체가 보인다.



그때 우리는


조금 더 큰 시야로


그날을 다시 바라본다.



그것이


후회다.





후회는


쓸모없는 감정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후회는


나를 멈추게 한다.



다음에는 다르게 하라고


속삭인다.



이미 지나간 사람에게는


닿지 않지만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는


닿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후회를


늦은 배움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요즘 나는


조금 느리게 말하려 한다.



바로 판단하지 않고


한 번 더 생각하려 한다.



내 감정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려 한다.



후회는


시간을 되돌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다음 시간을 바꿀 수는 있다.





오늘 만나는 사람에게


나중에 후회할 말을 남기지 말자.



지금의 순간을


함부로 넘기지 말자.



후회는


늦게 오지만


배움은


지금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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