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곁에 있으면 괜찮은 사람이 된다

by 엘리스


그녀 곁에 있으면 괜찮은 사람이 된다

— 1000일 글쓰기 2일차

관계는 깨지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내가 사라진다.

그녀는 나보다 열두 살 어린
띠동갑 친구였다.
키가 크고
눈이 크고
잘 웃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어디에 있어도
그녀는 중심이 되는 사람이었다.

나는 늘
그녀 옆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십여 년 전
회사 행사에서 처음 만났다.
그날 하루를 함께 보냈고
그 이후 가끔 만나
운동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녀가 가고 싶은 곳에 갔다.
그녀가 정한 시간에 만났다.
그녀가 말하면 들었다.

그 순간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사람들 속에서
나는 어딘가 부족한 사람 같았지만
그녀 옆에 있으면
나는 자연스럽게
그 세계에 속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말하지 않았고
내가 원하는 시간을 정하지 않았다.

맞추는 것이
편안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한 장면을 보았다.

내가 힘들던 시기,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장면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우리 관계의 위치를 보았다.

그녀에게 나는
많은 사람 중 하나였고
나에게 그녀는
거의 전부에 가까웠다.

그녀는 나와의 관계를
더 깊게 만들려 하지 않았고
나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인 적도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을
오랫동안 보지 않으려 했다.

결혼 후 별거를 했고
그 사실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혼자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녀 곁에 있으면
나는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좋아한 것이 아니라
그녀 옆에 있는 나를
좋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나는 알았다.

이 관계를 계속하는 것이
나를 더 아프게 할 것 같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불안했다.
관계가 끝날까 두려웠다.

하지만 놀랍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녀는 애초에
관계를 더 깊이 만들려 하지 않았고
나에게 더 가까이 오려 하지도 않았다.

내가 노력해서
관계를 붙들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관계에서 나를 지우고
누군가의 세계에 들어가 있으면
나는 잠시 괜찮아 보일 수는 있지만
결코 편안해질 수는 없다는 것을.

나는 그녀를 떠난 것이 아니라
그녀 안에 있던 나를
내 자리로 데려온 것이었다.

평등하지 않은 관계는
우정이 아니다.

누군가와 함께 있기 위해
나를 지우지 말자.
괜찮아 보이기 위해
나를 맞추지 말자.

관계 속에서
사라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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