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그릿 May 23. 2022

일단 유명해져라. 그리고 똥을 싸라.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당신이 똥을 싸도 사람들은 박수를 칠 것이다.

Be famous, and they will give you tremendous applause even when you are actually pooping.



팝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의 것으로 알려져 있는 명언 "일단 유명해져라", 실제로는 인터넷에 떠도는 유명인 사진 + 아무 말 짜깁기로 탄생한 가짜 명언이다. 이 말 자체로 증명되지 않았나. 아무 말에 유명인의 권위를 얹으면 '명언'으로 재탄생한다는 것을.



책시장도 전통적으로 유명세라는 진입 장벽이 매우 높은 곳이다. 유명 기업인의 파란만장한 성공 신화와 비결이 담긴 전기, 유명 연예인들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에세이, 해외 유명 작가의 차기작, 무슨무슨 문예상을 받은 돌풍 같은 신인 등등, 유명세는 돈이 된다. 



소셜미디어가 발달한 요즘은 더더욱 그렇다. '인플루언서'라는 타이틀이 붙은 개인의 '아무 말'은 그 자체로 콘텐츠가 된다. 인스타그램에서 #글그램 #글스타그램 해시태그를 검색해보시라. 많은 이들이 좋아할 만한 글귀를 이어 붙여 만든 카드 뉴스를 발행하는 계정들을 여럿 만나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고 공감을 사서 다수의 팔로워를 모집하는 방식이다.



수만, 수십만 팔로워를 모은 뒤 이 글귀들을 엮어 나온 책들도 꽤 된다. 이런 출간 프로세스가 나름 노하우화되어서 온라인 강의 플랫폼 같은 곳에 '출간 작가 되기' 같은 클래스로 론칭되어 있기도 하다. 힐링 글 쓰는 인플루언서들이 인간관계나 인생의 조언을 전하는 멘토 역할을 자처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산다는 건 사람 마음을 좀 들여다볼 줄 안다는 거니까 일견 이해가 가긴 한다.



투자로 떼돈 번 유명 유튜버들의 책이 요즘에는 아무래도 제일 핫한 분야가 아닐까 싶다. 30대 초반에 주식, 코인 투자로 경제적 자유를 얻은 FIRE족들의 이야기가, 유튜브 제일 많이 보는 동 나이대 소비자들의 마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겠나. 부러운 마음, 동질감, 희망, 열망, 유명세는 공감을, 공감은 돈으로 치환된다. 이런 자본주의.



출판사도 회사니까 어느 정도 판매가 담보된 유명인들의 책을 내주는 게 이치에 맞겠지.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글이 좋다고 덥석 덥석 신인에게 배팅을 하기에는 출판 시장 자체도 많이 쪼그라들어 있는 상황이고. 요즘 소셜미디어에 익숙한 MZ 세대 위주로 판이 다시 짜이는 터에 출간 작가들의 평균 연령이 갈수록 낮아진다고, 지인 작가분께 들었다. 시장 논리에는 부합하지만 나이 먹어가는 입장에선 왠지 좀 씁쓸하달까.






근데 또 역으로 생각해보면 누구나 유명해질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앞서 예시를 들었을 땐 괜히 좀 아니꼬운 좁은 마음으로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았지만, 인플루언서라는 게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개인이라는 뜻이다. 그 말은 전통적인 유명인, 기업인이나 연예인 같은 뭔가 선택받은 소수가 아니더라도 유명해질 새로운 길이 열렸다고 볼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소위 힐링 팔이라고 불리는 인스타 #글그램 계정들, 출간 작가가 된 유명 유튜버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뚜렷한 공통점이 보인다. 일단 엄청나게 성실하다는 거. 그 손 많이 가는 영상도 무조건 하루에 하나씩 꼬박꼬박 올리는 유튜버들이 많다. 그것도 꽤 고퀄로. 글그램 같은 경우엔 '1일 3피드'가 국룰인 듯하고, 애초에 유명해질래도 성실함은 기본으로 깔고 가야 한다는 거다.



일단 많이 노출되어야 다른 사람들 눈에 띌 기회도 얻을 수 있다. 투자로 대박이 났거나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사람이라면 추가로 유명세를 얻기 더 용이하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유명해질 길은 언제든 열려 있다. 뭐 허울좋은 네이밍이긴 하지만 일단은 나도 도서 인플루언서 아니겠나. 매일 꾸준히. 농업적 근면성. 노오오오력. 뭔가 항상 진리는 내 바로 앞에 있는 느낌.



위 앤디 워홀이 했다는 가짜 명언 말고, 진짜는 따로 있다. 워홀 본인이 아니고 그를 찍은 사진사가 했던 말이라곤 한다. 역시 가짜보다 더 와닿는 게 진짜.



미래에는 누구든지 15분 정도는 유명해질 수 있을 것이다.

In the future, everyone will be world-famous for 15 minutes.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는 어렵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