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살면서 5번도 안 사봤지만,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볼 때가 있다. 당첨되면 어따 쓰지? 아직 오지 않은 행운을 가정하고 이런저런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뜬구름 같은 이런 생각은 투자를 할 때도, 글을 쓸 때도, 아무튼 무슨 일을 벌이기 전 시작 단계에서 반드시 머릿속에 꼭 한 번은 울려퍼지는 메아리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일단 첫 발을 떼면 얘기가 많이 다르다. 그 길이 얼마나 힘들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결실에 이르게 되는지, 대박은 커녕 계속하는 걸 고민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잘 모르는 분야일수록 더 그런 것 같다. 복권은 푼돈 내고 사면 그만이지, 노력이 드는 일은 시작되고 나면 사정이 많이 달라진다.
투자를 예로 들어볼까. 내 첫 투자는 다들 그렇듯 FOMO로 시작됐다. A가 테슬라로 얼마 벌었대, B가 비트코인으로 대박 쳐서 퇴사했대, 뜬소문에 나도 대박을 꿈꾸며 첫 주식을 샀다. 대박 나면 뭐하지? 하면서. 하지만 역시나 현실은 아주 많이 다르더라. 최근 증시 폭락으로 근 1년 동안의 평가차익을 대부분 반납했다. 애꿎게 읽은 주식책이 50권이 넘어간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당연히 잘 된 소식밖에 들릴 리 없다. 아니면 아예 정반대 경우거나. 근데 보통은 망한 경우에는 귀를 닫는 게 사람이다. 나는 다를 거야 하면서. 근데 나는 다를 거야, 라는 생각은 대박 친 쪽과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쪽박 찬 이와 내가 다르듯 대박 친 이와 나도 다르다. 중요한 건 대박이든 쪽박이든 결과에 관심을 기울일 게 아니라, 어떻게 그 결과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요모조모 뜯어보는 편이 훨씬 더 도움이 될 거란 사실이다.
대박 친 쪽은 찾아보기 쉽다. 미디어에 노출되니까. 인터뷰나 책들이 널렸다. 복권 당첨을 제외해도 운이 제일 결정적이다. 그밖에는 사후 편향이 많이 낄 수밖에 없다. 이러쿵저러쿵 해서 지금처럼 잘 되었다라기 보다는, 지금 잘 된 게 이런 거 저런 거 덕분인 거 같다, 라는 뉘앙스가 많이 읽히더라. 많은 대박러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잘 되게 해 준 이런 저런 요소들이 귀납적 해석으로 엮여 '자기계발'이라는 시장으로 형성된 모양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그 자기계발적 요소들을 꾸준하게 챙긴다고 한들 대박에 이를 거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되레 그 열심히 사는 모습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도 같다. 이렇게 내가 열심히 하는데 어? 내가 잘 안 되고 배겨? 라는, 노력이 특정 결과를 담보할 거란 착각이다. 대박러들의 과정을 그대로 카피한들 서로 성격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고 여태껏 살아온 이력이 다 다른데 같은 결과를 낼 수 있을까?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으니까 일단 뭐라도 하고 보는 셈이다. 당첨일지 꽝일지, 결과는 모르니까. 긁지 않은 복권이다.
그렇다고 뭘 해도 다 소용없어, 어차피 안돼, 허무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릴 일도 아니다. 복권도 일단 사야 당첨이든 꽝이든 결과를 받는 거 아니겠나. 사지도 않은 복권과 긁지 않은 복권은 또 다르지 않나. 시작이라도 해야 잘되든 망하든 결과가 있지 않겠나. 사지 않은 복권과 긁지 않은 복권, 아주 미세한 간극일지라도 그 약간의 차이가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