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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텀블벅 영퍼센트 Aug 27. 2021

한 편의 영화에 투영되는
여러 갈래의 시선

PROJECT PEOPLE ①: 〈프리즘오브〉 유진선

PROJECT PEOPLE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직접 기획하고 실현한 사람에게는 특유의 아우라가 있습니다. 〈프로젝트 피플〉은 시작하는 용기와 지속하는 끈기에 귀를 기울이는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관객이 한 편의 영화, 한 명의 주인공을 사랑하는 방식은 모두 제각각이다. 그건 동경일 수도, 동질감일 수도, 연민일 수도 있다. 한 호에 한 영화를 다루는 잡지 〈프리즘오브〉는 사랑받는 영화 한 편을 통과하는 그런 수많은 시선을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엮는다.


지난 6년간 총 18호를 발행하며 독립잡지 분야에서 독보적인 브랜드로 자리잡은 〈프리즘오브〉는 놀랍게도 현재 단 한 사람의 기획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 발행인 겸 편집장 유진선님을 연희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왜 하필 영화 잡지였을까


이름난 영화 잡지들이 줄지어 폐간되던 시기에 1호를 냈다. 왜 영화 잡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나?

대학교 시절 단순히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특히 배급사 쪽에서 영화 수입을 하는 데에 관심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소개하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좋은 해외 영화를 한국에 가져오는 일을 하고 싶었다. 배급사나 수입사에 취직을 하고 싶은데 관련한 경험이 부족했다. 그래서 이력서에 넣을 수 있는 성취를 만들기로 했다. 학교 밖에서, 대학생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준으로 만들어보자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독립 단편영화 상영회를 열었고 1년 정도 진행했다. 그런데 끝나고 나면 휘발되는 점이 아쉬웠다. 3개월 준비해서 상영회를 여는 것인데 행사는 3시간 만에 다 끝나버리니까 이걸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 종이 매체로 오게 됐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프리즘오브〉다.


나는 '잡지 키즈'는 아니다. 영화잡지를 보며 자라거나 로망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영화 잡지라는 어떤 계보를 잇는다거나 하는 생각을 갖지는 않았던 것인가?

〈프리즘오브〉 외에도 〈캐스트〉, 〈아노〉 등 2010년대에 창간된 영화 잡지들이 있는데 다들 구체적으로 어떤 마음으로 잡지를 만드는지 직접 들어본 적은 없다. 하지만 다들 특별히 영화 잡지의 계보 같은 것을 생각하면서 만들지는 않을 것 같고, 그게 공통된 특징일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활동을 계속하다 보면 나중에는 계보에 묶일 수도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감독들도 마찬가지다. 여성영화, 액션영화, 할리우드 서부영화의 계보를 잇는다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그게 그 감독이 그 전통에 대한 확실한 계승과 전복의 의도를 갖고 하는 건 아닐 수 있다. 라벨링은 붙여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영화든 잡지든, 계보라고 부르면 부를 수 있고 아니면 아닌, 그런 자유로운 콘텐츠의 시대인 것 같다.


책을 만들면서 어떤 교집합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다. 영화 관객과 책을 읽는 독자들 사이의 교집합. 그건 영화 관객이 독자로 넘어온다기보다는 독자들 중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방향으로 확장되는 느낌이다. 우리 책을 읽는 분이 다른 소설도 읽고, 음악에 대한 글도 읽는 등 예술을 글의 형태로 풀어낸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기존의 영화 잡지들을 아끼던 사람들보다는 책을 두루 읽는 분들이 영화와 관련된 책을 읽고 싶을 때, 특히 무거운 단행본이나 얇은 소식지 사이의 중간 것을 향유하고 싶을 때 선택지가 될 수 있었으면 할 뿐이다.



소위 '씨네필'들도 〈프리즘오브〉를 좋아할 수 있고, 캐주얼하게 극장에 가는 사람, 책을 좋아하는 사람, 특정 작품의 팬 등 다양한 사람들이 〈프리즘오브〉의 독자로 만나게 된다. 반응하는 온도도 제각각일 것 같다.

가장 중요한 타깃은 그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매 호마다 타깃이 다르다고도 할 수 있다. 처음에 잡지를 사업으로 진지하게 생각할 때에는 '20대가 타깃인가?' 처럼 인류통계학적인 무언가가 필요한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만들다 보니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더라. 매 호 처음 만드는 느낌으로 만들되, 그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재미있어야 한다는 기준으로 접근한다.


내가 아무리 3개월 동안 한 영화를 열심히 공부해서 책을 만들어도 세상 어딘가에는 나보다 이 영화를 더 보고,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분들에게 절반 정도는 공감되는 얘기, 절반 정도는 생각해 보지 못했던 시선을 전달한다는 생각으로 만든다. 그 영화의 오랜 팬들이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읽어 보는 장면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프리즘오브〉를 시작할 때 목표로 잡았던 게 하나 있었는데, '프리즘오브가 다뤘다고 해서 그 영화 봤어요'라는 말을 듣는 것이었다. 초창기에는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영화라서 책을 샀다'는 반응이 더 많았다. 3년 정도 하고 나서 처음으로 어느 북페어에서 '올해 프리즘오브 라인업에 있길래 영화를 미리 봤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때 비로소 다음 단계를 상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즘오브〉가 좋아서 영화를 보는 것. 영화가 좋아서 〈프리즘오브〉를 보는 것. 이 둘이 이제야 한데 얽혀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영화는 보통 감독, 주연 배우와 같은 셀러브리티의 세계로 여겨진다. 하지만 〈프리즘오브〉에는 그 대신 주로 관객이나 수용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담긴다. 〈프리즘오브〉가 성장하고 알려지면서 앞으로 이 점이 변하게 될까?

초창기의 역량 문제도 당연히 있었겠지만, 욕심이 난 적이 없었다. 언젠가는 감독이나 배우 인터뷰를 실어야지, 하는 생각은 없었다.


예전에 단편영화 상영회를 했을 때 '프리즘 카드'라는 카드를 제작해 감상평을 받고 다같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여기서 '프리즘'을 상징으로 쓰기 시작했고, 이 현장을 지면으로 옮기는 것이 초기 〈프리즘오브〉의 핵심 포인트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제작사나 감독이 언론 홍보에서 밝히는 정보들을 소개하는 것보다는 관객들의 목소리가 휘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프리즘오브〉의 지면은 은유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한정되어 있다. 셀러브리티의 시선은 이미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조명해주기 때문에 우리까지 나서서 거기에 지면을 투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프레임 바깥에 영화 한 편을 둘러싸고 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다. 거기에 더해 되도록이면 지금까지 지면을 할애받지 못했던 목소리들을 전달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특별한, 더 특별한 한 권을 위하여


영화 속 겨울과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타탄 패턴으로 표현한 11호 〈캐롤〉 표지.


디자인이 훌륭한 잡지라는 평이 많다. 각 권마다 그 영화를 위한 아트디렉션을 하니까 맞춤 제작된 책 같은 느낌도 든다. 예를 들어 〈케빈에 대하여〉 호에는 낙서 가득한 거친 종이에 색안경을 끼고 보는 듯한 원색이 강렬하고, 〈소공녀〉 호에는 미니홈피, 채팅창 등 아기자기한 일상 속의 요소들이 재미있다. 이렇게까지 매호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가 있나?

결과물이 잘 나온 것은 저희와 협업하는 디자인 스튜디오에게 감사한 부분이다. 처음에 잡지를 계획할 때 디자인을 처음부터 같이 고려했다. 창간호를 내기 전에 거의 9개월가량 국내, 해외 잡지들을 엄청 사서 매일같이 보면서 참고하며 기획했다. 워낙 예쁜 책들을 보면서 준비했기 때문에 이 정도의 퀄리티는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게 출발을 하고 나니까 점점 더 기대치가 높아졌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정체성으로 잡힌 것 같다.


지금까지 다룬 영화를 보면 국내와 해외, 옛날 영화와 요즘 영화, 독립영화와 상업영화 등을 딱히 가리지 않고 선정하는데도 어딘가 '프리즘오브스러운' 느낌이 있다. 어떤 기준으로 영화를 선정하는가?

틀에 박힌 답변부터 얘기하자면 작품성과 다양성, 시의성을 고려한다. 좋은 작품임과 동시에 지금 이 시기에 다루어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면 좋다. 그리고 한 편의 영화에 다양한 여러 매력이 담겨 있는 것이 좋다. 주제면 주제, 연기면 연기, 감독의 미장센이라거나 현실의 반영 등 여러 면면을 다 뜯어볼 수 있을 때 훨씬 가치가 사는 영화들이 있다.


이런 답변이 준비돼 있긴 하지만, 사실 웬만큼 일정 수준 이상의 평가를 받는 영화라면 어떤 작품이든 2021년 현재의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갈지에 대해서는 항상 발굴할 만한 요소가 있기 때문에 할 얘기는 늘 있다고 느낀다. 작품성, 다양성 이런 얘기는 어찌 보면 결과론적인 것이다. 화제가 될 것 같은 영화를 고를 때도 있고 담론을 아카이빙해 둘 필요를 느끼는 영화를 고를 때도 있는데 그렇게 자연스럽게 골라놓고 보면 결국 시의성, 작품성,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보인다. 선정부터 하고 나서 의미를 찾는 편이다.


아무리 이 영화로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시작하더라도 처음에는 사실 막연한 마음과 불안감이 있다. 좋아했던 영화라도 사업적으로 확신이 없을 때도 있고, 평소에 손길이 잘 가지 않던 작품이라면 작업도 더디게 진행된다. 그런데 아무리 늦어도 3주 차쯤이면 이 영화를 다뤄야만 하는 이유가 체화되기 시작한다. 그러고 나면 영화를 감상하는 관객으로서도, 콘텐츠를 편집하는 편집장으로서도, 사업적인 시선을 가져야 하는 발행인으로서도 해당 작품에 진심으로 임하게 된다.


계간지라는 것은 10년을 하더라도 40편밖에 다룰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지금 이 영화를 다루지 않으면 후회하지 않을까?'


12호 〈케빈에 대하여〉 내지 디자인


양육, 폭력 등의 테마를 담은 〈케빈에 대하여〉는 좋은 영화지만 누군가에게는 보기 힘든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다룰 때에는 누구의 시선을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나?

이 영화 한 줄 평을 보면 '내 아들이 싸이코패스라면?' 처럼 자극적인 감상투성이다. 하지만 실제 영화에서는 에바(극 중 어머니)의 서사가 훨씬 더 길게 나오고, 아이의 서사 비중은 적다. 에바의 목소리를 주로 싣고자 했지만 에바가 아동학대를 하는 면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아이의 시선도 한 번은 실어야 한다고 보았다. 발행인의 말에도 썼지만 이 호의 목표는 영화를 보고 나서 엄마가 미운 사람, 아이가 미운 사람 양쪽을 모두 설득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특히 엄마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엄마페미니즘탐구그룹 '부너미' 인터뷰를 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다. 극 중에서 에바가 케빈의 기저귀를 갈아주다가 열이 받아서 아이를 던지는 장면이 있다. 나는 그 장면을 영화가 갈등을 고조화시키는 장치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인터뷰이 중 한 분이 '그 방에 성인이 한 명이라도 더 있었으면 던졌겠느냐'라고 말씀해 주시는 거다. 이건 정말 육아를 해 본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다 싶었다. 케빈이 아무리 예민하고 어렵고, 설령 실제로 싸이코패스 기질이 있다 할지라도 그 방에 양육자가 한 명만 더 있었더라도 저렇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너무나 현실적이었고, 그런 목소리를 싣는 것이 어떤 비평보다도 흥미롭고 가치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개봉한 지 26년 된 〈중경삼림〉 호를 2020년에 다뤘을 때에는 어떤 이유에서였나?

주변에서 문화적으로 '레트로' 붐이 최고조에 달하는 느낌을 받았고, 많은 사람들이 DM으로 〈프리즘오브〉가 다뤄줬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이런 반응을 준 독자들의 연령대가 다 낮았다. 어디서 그렇게 이 영화를 찾아보고 좋아하게 된 건지 궁금했다. 90년대 감성을 사람들이 좋아하고 이것을 찾아보는 트렌드가 지금 왔구나, 몇 년만 지나도 이걸 다루는 건 '뒷북'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중경삼림〉의 경우에 처음에는 레트로붐에서 착안해 세기말 홍콩에 담긴 90년대 감성과 왕가위 감독의 미장센을 탐구해 보자는 생각이었는데 논문을 찾다 보니까 지금의 홍콩 민주화 시위와 연결 짓지 않을 수 없는 작품임을 알게 됐다. 그래서 홍콩 시위를 국내에서 서포트하고 있던 단체에 문을 두드렸고, 학민사조라는 학생 운동 단체의 창립자 한 분과 연결이 되었다. 실제 현재 홍콩을 살면서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 또래의 사람들이 왕가위 영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조각조각 모으다 보면 처음에 기획했던 시각이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인 면을 통과하면서 총체적인 결과물이 딱 나오는 것 같다. '이 영화를 〈프리즘오브〉로 다루는 의의가 여기에 있었구나' 하는 순간이 매번 뒤통수 때리듯이 온다. 직접 설정한 기획 의도가 그렇게 눈덩이처럼 디벨롭되는 걸 보면 내가 잡은 방향이 틀리지 않았구나,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다.


후원자 2,484명의 참여로 1억 2천만원에 가까운 모금액을 기록한 특별호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펀딩 페이지


특별호였던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잡지뿐 아니라 당시 독립출판 분야 최대 펀딩 기록을 세웠다. 〈불한당〉은 〈프리즘오브〉에 어떤 경험을 남겼나?

사실 당시에 7호까지 만들고 나서 시스템도, 수익적으로도 너무 힘들고 지쳐 있었다. 휴간을 하기로 하고 개편이 제대로 안 되면 끝내야지, 하는 생각으로 배수진을 쳤다. 제대로 지속할 수 없다면 박수 칠 때 떠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시기에 영화 〈불한당〉을 다뤄 달라는 요청이 우리 인스타그램 DM이나 페이스북, 텀블벅 메시지, 심지어는 장문의 메일 등 각종 채널이란 채널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냥 '불한당 해주세요'가 아니라 굉장히 긴 글로 왜 〈불한당〉이 매력적인 작품이고 어떤 점이 흥미로운지를 상세하게 적어서 보내주시는 거다. 신기하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다. 하지만 〈불한당〉이 당시 개봉한 지 1년도 안 되었기 때문에 선정기준에 맞지 않았고, 우리가 수집할 수 있는 비평적 자료나 담론이 부족했기에 다룰 수 있을지 고민이 있었다.


<프리즘오브>는 순수하게 독자 기반으로 성장한 매체다. 기업이나 광고주를 등에 업고 아무도 사보지 않아도 계속 인쇄기를 돌리는 방식으로 성장하지 않았다. 그 지점에 자부심을 느끼고, 그렇기에 독자들과의 소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이 이렇게까지 원하고 있는데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이렇게 폐간하는 것은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이 포맷으로 나오는 마지막 호라는 생각으로 <불한당> 특별 호를 텀블벅에 런칭했는데, 그렇게 큰 반응을 얻을 줄은 절대 몰랐다.


여기서 그만둔다면 주인을 잘못 만난 콘텐츠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프리즘오브〉가 폐간이 아닌 지속을 택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특별호의 역할이 컸다. 금액 때문만은 아니다. 워낙 들어가는 돈이 많았기에 적자가 조금 줄어드는 정도였다. 돈보다는 반응의 크기가 소중했다.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사랑해 주고, '다음 영화는 뭐에요?'라고 물어봐 주는데 제작자가 지쳐 있었던 거다. 이 행보가 흔들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반성을 했다. 독자들에게 미안한 건 둘째치고, 이 콘텐츠, 〈프리즘오브〉 자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다시 힘을 냈다. 그런 마음이 들 정도의 반응이었다.





1인 기획자가 스스로 맺는 계약



현재 고정 멤버가 유진선 편집장 한 명이다. 1인 팀이 이 정도의 결과물을 내면서 브랜드를 지속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예전에는 무릇 잡지라고 하면 인하우스 디자이너가 있어야 하고, 편집장, 에디터가 있어야 하고 그런 구색을 갖춰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 독립출판은 체계가 정해져 있지 않다 보니 더더욱 그냥 기성 시스템을 따라야 하나, 고민되기도 했다. 하지만 원하는 퀄리티의 잡지를 원하는 리듬으로 만들겠다는 목표 자체가 중요한 것이고, 그걸 하기 위해서 혼자 하든 누구를 데려와서 하든 그건 큰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이걸 어떻게 혼자 만드냐, 대단하다' 하는 말을 종종 듣는데 나는 내가 전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혼자 만들 수 있도록 세팅을 한 것이다. 혼자 하는 것이 아닌 게, 디자인 스튜디오가 디자인을 맡아 주고, 기고를 넣으면 여러 기고자분들이 글을 주시고, 고정 필진분들도 있다. 단지 그들을 편집팀 소속으로 두지 않고 약속을 하는 식이다. 나는 그 중앙에서 각 호의 핵심을 지키며 목차의 방향성을 정하고, 글과 디자인을 조율하는 일을 한다.


발행되는 수많은 콘텐츠들을 보면 퀄리티가 조금 낮더라도 오래 가는 것도 있고, 심혈을 기울이지만 오래 가지 못하는 것도 있다. 예전에는 그 사이에 우열이 있다고 생각했고 나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은 조금 더 총체적으로 생각하는데, 콘텐츠와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어차피 분리될 수 없다고 느낀다. 나는 내 일상이 어떻게 변하든 간에 이 콘텐츠의 지속성에 무게를 두고 싶다고 몇 년 전에 결정을 내린 것이다.


'독립 잡지'나 '독립출판'이라는 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가? 이러한 분류가 답답하지는 않은지.

처음 잡지 형태의 〈프리즘오브〉를 기획할 때에는 아주 단순히 언리미티디드에디션에 나가는 것이 목표였다. 독립 잡지도, 독립 출판도 모를 때다. 창간호를 만들기 전 어떤 잡지 편집장의 강연을 들으러 갔는데 '우리는 독립잡지가 아니다, 같이 묶지 말아 달라' 이렇게 말을 시작하는 걸 봤다. 그러면서 아, 출판계가 어딘가에 층이 나뉘어 있고 서로 생태가 다르구나, 인지하게 됐다. 어쨌든 11월에 언리미티드에디션이 열리니까 9월까지는 1호를 내보자, 그런 생각이었다. 사실 첫해에는 때를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언리미티드에디션에 정식 참여는 못하고, '이런 책이 곧 나옵니다' 하는 예고편 무가지를 놔두고 오기만 했다. 그 해 12월에 1호가 나오고, 이듬해 2월에 2호, 8월에 첫 텀블벅 펀딩을 통한 3호가 나오면서 처음으로 언리미티드에디션에 정식으로 나갔었다. 처음 언리미티드에디션에 나갔을 때 모든 테이블을 보면서 '우와' 하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기존에 출판계를 잘 알고 있었다면 '우리가 제2의 무언가가 되자'라거나 하는 목표가 있었겠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눈앞에 있는 다음 단계만이 중요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니 독립 잡지가 '마이너리그'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한동안은 '독립 잡지'라는 프레임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딱히 상업 잡지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그냥 잡지이고 싶지, '독립 잡지'라는 이름으로는 불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독립 잡지가 '마이너리그'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얼마나 주체적으로 내 시선을 표현할 수 있는지, 쉽게 말하면 얼마나 눈치보지 않고 내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지가 본질이다. '독립 잡지'란 그런 주체성과 자율성을 내포한 용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상업 잡지 업계에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시도와 실험들이 생겨나는 영역이기도 하고.



이렇게 지속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에 있어 자금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텀블벅 펀딩 외에도 투자를 받거나, 지원 사업에 공모를 하거나 하는 선택지도 있었을 것 같은데.

실제로 학교의 지원사업으로 돈을 받기도 했고, 외부 지원 사업 참여도 해 봤고, 소규모 시드 투자를 받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돈을 먼저 받아서 구독자를 만난 것이 아니라, 구독자가 모였기 때문에 그 돈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전적으로 독자에 집중하는 것, 우리가 지속할 수 있는 자본의 원천까지도 독자 한 명 한 명에서 왔다는 것에 늘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포커스를 두면 사업적으로 뭔가가 흔들릴 때 가장 먼저 '자금을 어디서 조달해 오지?'가 아니라 '책을 어떻게 더 잘 만들어서 많이 팔지?'가 된다. 모든 질문이 디자인으로, 콘텐츠로 회귀하는 것이다.


텀블벅으로 돈을 모은다고 할 때 사실은 텀블벅이 돈을 주는 것이 아니지 않나. 개인 개인 한 명으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우리가 원래 생각하던 지향점과 딱 맞았다. 중간자 없이 직접 독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것의 의의가 엄청 크다. 투자자의 입맛에 맞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독자의 입맛에 맞는 것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나아갈 길을 정할 때에도 투자자 몇 명의 조언보다 독자 100명, 200명의 서베이 답변이 익명이더라도 훨씬 유효하다.


나는 배급사의 심리도, 극장의 심리도, 투자자의 심리도 모른다.
하지만 나처럼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의 심리는 안다.
관객이 좋아할 만한 책을 만드는 것은 어쩌면 제일 쉬운 일이다.


독립출판에서 활동하는 창작자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고민이 있다. 소속 없이 일하기 때문에 사수나 선배가 없어서 학습하기 어렵고 외롭다는 점. 〈프리즘오브〉의 경험은 어땠나?

잡지 만드는 분들이 다들 내향적인지 전면에 나서지를 않는다. 남의 목소리를 모아서 내는 것이 잡지여서 그런가. 그래서 막상 만나면 다들 서로 신기해한다. 예전에는 질투도 많이 했다. '어디는 몇 부 찍는대', '여기는 인쇄비가 얼마래' 하면서. 책을 사서 내용은 안 읽고 크레딧만 보면서 비교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하나둘씩 잡지가 사라지는 걸 보다보니 서로 경쟁할 게 아니더라. 초기에 경쟁자라고 생각했던 분들에게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매대에 함께하는 것만으로 동료애가 느껴진다.


하지만 다들 조용히 각자 활동하다 보니 처음 시작하는 입장에서는 정보를 얻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나도 처음 시작할 때 그 부분이 어려웠기 때문에 나에게 문의나 컨설팅 제안이 들어오면 돈을 적게 주더라도 최대한 하려고 한다.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 지금은 코로나라서 어렵지만, 페어 같은 데에 나갔을 때 적극적으로 현장에서 궁금한 점을 물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차피 개개인으로 이루어진 필드이고, 개개인이 연결된 네트워크이니까 자신이 무언가를 갖추고 있지 않다고 해서 너무 주저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확실한 방법은 내가 누군가의 작업을 좋아하고 그 사람과 일해보고 싶다고 느낄 때 실제로 의뢰를 하는 것이다. 같이 일할 때 가장 많이 친해지니까.




프리즘오브는 이제 연차로는 6년, 호수로는 18호, 권수로는 20권의 책을 만들었다. 이렇게 오래 몰두하게 될 줄 알았나.

전혀 몰랐다. 앞으로도 모를 것 같다. 처음에는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고, 중간에는 반대로 또 오래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기도 했다. 지금은 조금 더 내려놓은 상태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용기와 시작한 것을 계속하는 끈기를 어디에서 얻는 편인가?

한 2년 전부터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프리즘오브〉와 매년 1년 단위 계약을 하는 거라고. 연초에 계약을 하면 그 계약을 지켜야 하는 거다. 만약 내년에 내가 그만두고 싶다고 하면 단순히 내가 지쳐서 <프리즘오브>를 그만뒀다는 식이 아니라, 〈프리즘오브〉와 유진선이라는 작업자가 계약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1년 단위로 나를 점검해서 내가 이것을 계속할 수 있는 상황인지 체크하는 식으로 생각하다 보니, 좀 더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됐다. 내가 콘텐츠에 매어서 다 고갈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덜었다. 나는 한 호를 만들면 평균 10명 이상의 작업자들과 같이 소통하는데, 정작 나 자신을 포함한 어디서도 나를 개별 작업자로 대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라도 나를 작업자로 대해야 한다는 선을 긋는 것이다. 그렇게 하니 원칙이 조금 생긴다.


내가 1년을 더 할지 2년을 더 할지, 아니면 여기서 그만두고 다른 프로젝트를 할지. 이 문제를 너무 나와 혼연일체인 것처럼 생각하지 말고 차갑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이 프로젝트의 작업자이고, 지금 텐션이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1년 계약은 채워야 하니까, 하고 힘들 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프리즘오브〉와의 다음 계약은 언제인가?

다가올 연말쯤이다. 내년에 내가 어떤 쪽으로 성장하고 싶은지. 더 해보고 싶은 공부가 있는지. 다른 커리어에 도전을 해보고 싶은지. 여러 생각을 열어두면서 잡지를 얼마만큼 할 수 있을지 재보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한 해를 돌아보았을 때에는... 아마 별수 없이 계약을 갱신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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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괜저

사진: 박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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