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에게 찾아온 마틴은 그의 예전 환자의 아들이다. 스티븐은 마틴과 같이 밥을 먹고 둘만의 시간을 가짐과 동시에 그와 함께 찾아온 과거의 특정 사건을 의식하고 있다. (마틴의 아빠는 그의 과실치사로 사망했으며, 스티븐은 그 사건을 은폐했다.) 시계를 선물하고 집으로 초대까지 하면서 마틴에 대한 동정심을 달래고 있지만 스티븐의 뜻과 달리 그와 가까워질수록 과거의 그 사건은 재점화 되기 시작한다.
극중 마틴이 자신의 엄마와 스티븐을 엮어주기 위해 마련한 영화 ‘사랑의 블랙홀’을 관람하는 자리에서 초인적인 능력을 갖게 된 영화 속 주인공은 신을 자처하지만 상대방은 그것을 거부하는 태도를 보인다. 스스로 신적인 존재임을 드러내는 마틴과 그의 규칙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스티븐의 관계는 위의 영화를 통해 이미 예견되었다. 마틴에게 저주 2단계를 듣고 바로 병실로 달려가 아들의 입에 음식물을 쑤셔 넣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스티븐은 사실 그 저주를 수용했다. 아들에게 원인 모를 하반신 마비가 왔기에 나머지 저주도 실현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태를 마틴의 저주로 받아들인다면 저주를 멈추기 위해 그가 제시한 규칙도 받아들여야 한다. (가족을 직접 희생시켜야 한다.) 또한 이 사태가 그의 복수라는 것 역시 인정했다는 뜻이며 자신의 죄로 인해 일어난 일이라는 것도 인정했다는 뜻이다. 결국 마틴의 규칙을 수용하는 것은 자신이 부정하고 싶던 과거의 과실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그는 자신 때문에 가족이 고통받는다는 사실이 가져올 죄책감이 두렵고 마틴의 규칙을 따르기는 더욱 두렵다. 마틴의 계시대로 일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스티븐은 고집을 굽히지 않는다. 아들에게 서로 비밀을 털어놓자며 아들이 연기하고 있다는 답을 듣고 싶어 하고, 이 모든 일을 병리학으로 해결할 수 있는 병리적 문제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마틴의 저주는 현실이다. 그의 복수도 현실이다. 그 사건도 현실이다. 스티븐은 객관적 진실을 주관적 해석으로 애써 외면하려 한다.
초반부를 복기하면 스티븐의 이런 거부적인 태도는 마틴의 계시를 듣기 전부터 꾸준히 언급되어 왔음을 눈치챌 수 있는데, 스티븐은 아내에게 (마틴의 아빠) 조나단 랭이 교통사고로 숨졌다고 거짓말했으며 동료 매튜에겐 마틴을 쇼핑몰에서 만난 딸의 친구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킴과 마틴의 만남을 보면 이 둘은 구면이 아니라 초면처럼 보인다. 그가 딸의 친구가 아니란 것은 분명하다. 그런 측면에서 마틴을 쇼핑몰에서 만난 얘기 역시 거짓일 확률이 높다. 스티븐은 사건 당시 마취를 담당했던 매튜에게 마틴을 조나단 랭의 아들이라고 굳이 밝힐 필요가 없으니, 어제 들었던 킴의 친구 클레어를 만났던 쇼핑몰 얘기를 꺼내와 거짓으로 그 상황을 모면하려 했던 것이다.
그가 그토록 거부하는 마틴마저도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순간이 있다. 마틴이 그의 가족을 응시하는 라스트 숏까지 보고나면, 영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스티븐과 그의 가족을 향한 관음증적인 쇼트들은 사실상 시점쇼트이고 마틴의 시점임을 눈치 챌 수 있는데, 그 시선들이 안정된 가정을 원하는 마틴의 염원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가 엄마에게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싶어 하는 대목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에게 안쓰러움을 느낀 마틴은 처음엔 스티븐이 아빠의 부재를 대신하는 것으로 대가를 치르도록 했으나 그 계획은 실패한다. 1차 계획이 실패하고 저주가 내려진 걸로 보아선 마틴은 애초부터 정상적인 가정을 원했다. 스티븐은 그의 신적 존재를 거부하는 것이고 마틴은 스티븐을 자신의 가정의 일원으로 데려오길 바라는 것이다. 허나 계획이 실패함으로써 저주는 내려졌다. 계시가 실현된 뒤 안나는 마틴을 찾아간다. 스티븐의 죄를 왜 우리가 대가를 치러야 하냐는 그녀의 물음에 마틴은 자신만의 고유한 특징인 줄 알았던 스파게티를 먹는 방식이 사실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낸다. 마틴은 그 순간이 아빠가 죽었을 때 보다 더 속상했다고 한다. 언뜻 뜬금없어 보이는 이 대답은 고유한 특징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박탈감에 대한 이야기이다. 동시에 그 박탈감을 느끼도록 종용한 자신의 무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스파게티 이야기는 무지에 대한 대가의 이야기다. 여기서 마틴의 대답이 안나의 질문에 대한 답이라는 점을 상기해볼 때, 그 스파게티 이야기를 안나와 그의 가족이 징벌을 받는 이유에 대한 답으로 볼 필요가 있다. 스파게티 이야기에서 마틴이 스파게티 먹는 방식을 좀 더 빨리 알았거나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면 그 박탈감은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마틴은 인간의 무지를 진실에 게을렀다는 태도로 보는 것이고 무지는 죄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마틴이 스파게티를 먹는 방식에 대한 진실을 몰랐던 것처럼 스티븐 가족 역시 마틴을 만나기 전까지 스티븐의 과실치사를 모르고 있었다. (밥과 킴은 마틴을 만나게 된 후 이 상황을 얼추 알게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스티븐뿐 아니라 가족의 무지도 죄목임을 규정함으로써 그 사건을 알지 못했던 밥과 킴에겐 질병을, 아내에겐 남편에 대한 신뢰성을 강탈하여 그 무지함에 대한 대가를 치르도록 한다. 여기서 안나에게도 질병의 형벌을 내린다고 경고를 했음에도 끝내 안나에겐 그 징후가 보이지 않았던 것은 남편에 대한 신뢰성을 이미 잃었기에 그 부부관계가 파멸 직전까지 갔기 때문이다. 아마도 가정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 마틴은 부부관계에 있어선 질병보단 관계에 균열을 생기게끔 하는 목적에 더 홀렸을 것으로 보인다.(그럼에도 3명 모두 질병에 걸릴 것이라며 경고한 이유는 스티븐이 반드시 1명을 죽일 수밖에 없도록 종용하기 위해서다.) 스파게티 이야기는 결코 동문서답이 아니다.
극중 킴이 작성했던 이피게네이아 에세이와 영화의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킬링 디어>는 아가멤논 신화를 변용한 이야기다. 신화의 각 인물들을 영화에게 대입해 본다면 마틴은 아가멤논 신화 속 아르테미스 같다. 아가멤논이 아르테미스의 신성한 수사슴을 죽인 이유로 바람이 불지 않자 그리스 군이 트로이로 출항할 수 없었던 것처럼, 스티븐 역시 마틴의 아빠를 죽음에 몰아넣은 대가를 치른다. 마틴의 규칙은 스티븐이 가족 중 한 명을 선택해서 직접 죽이지 않으면 스티븐을 제외한 가족 3명이 모두 죽고, 마틴을 죽여도 3명 모두 죽는다는 규칙이다. 즉 2명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을 희생하거나 3명이 다 죽어야 한다. 이 규칙은 트로이 출항을 위해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쳐야 하는 신화 속 내용 그대로다. 이 이야기를 기독교적 맥락으로 본다면 킴과 마틴은 각각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의 관계처럼 보이는데 킴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마틴을 이용해 집을 벗어나려 했으며 마틴은 예수와 반대로 사람들을 걷지 못하게 했다. 킴과 마틴의 관계는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를 신봉하는 맥락과 처음엔 일맥상통한 것처럼 보였으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맥락은 거부되고 만다. 킴이 시기의 눈빛을 보낸 채 그 관계는 종결되었다. 이러한 반 기독교적 요소를 부각하기 위한 전제로 기독교 맥락을 끌어들여오는 영화의 화법은 이 이야기가 종교와는 별개인 인간의 실존적 이야기임을 역설한다. (킴이 성가대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마틴이 제시한 선택지는 어딘가 불합리하다. 인간이 선택에 앞서 고민하는 이유는 선택지가 서로에게 없는 것을 각각 보충하고 있거나 대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틴이 제시한 선택지는 대등하지 않다. 1명을 잃는 것과 3명을 잃는 것이 어떻게 대등한가. 표면상으론 3명을 잃는 것보다 1명을 잃는 것이 낫다. 물론 미래의 일들(아가멤논의 결말처럼)을 따지고 심적 고통을 계산하면 3명을 잃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르겠으나, 인간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그렇게 뛰어난 혜안을 발휘하지 못한다. 스티븐은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갈등하는 게 아니라 가족을 내 손으로 죽여야 하는 선택에 대해서 갈등한다. 다시 말해 마틴은 대등하지 않은 선택지를 제시해 한 명을 죽여야 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규칙을 짜놓았다. 자신의 팔과 스티븐의 팔을 깨물며 동등한 대가를 치르도록 한 것처럼 1명을 잃은 대가로 1명을 죽이게 함으로써 결과적 균형을 맞추게 한 것이다. (이런 교환의 모티프는 안나가 사건의 전말을 위해 맞바꾼 것, 시계를 선물 받고 스위스 군용칼을 선물한 것 외에도 꾸준히 언급된다.) 스티븐이 교환이라는 숙명적인 틀에서 벗어날 수 없었듯이 인간 역시 저마다 벗어날 수 없는 어떤 틀에 갇혀있음을 영화는 마틴의 규칙을 통해 개개인이 처한 실존적 상태를 은유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들은 자신들 중 한 명이 죽어야 함을 알았다. 킴은 밥에게 아빠가 너를 죽일 것이라며 넌지시 자기를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밥은 엄마 아빠가 나한테만 피아노를 사줬고 누나가 겁먹을까 봐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밥은 피아노를 사랑의 척도로 받아들임으로써 부모는 나를 더 사랑해서 죽인다면 누나를 죽일 것이라고 응수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망상에 불과하다. 그제서야 아빠의 잔소리를 듣지 않던 밥은 머리를 자르고 화분에 물을 주어야겠다며 호들갑 떤다. 게다가 엄마의 직업이 아닌 아빠의 직업을 동경한다며 말을 바꾸기까지 한다. 킴은 스티븐에게 자신이 대신 죽겠다며 혼신의 연기를 펼치지만 마틴과 같이 떠난다던 그녀가 왜 자신이 대신 죽겠다며 자처하겠는가. 킴은 스티븐이 자신을 죽이지 않게끔 동정심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것만으론 부족했다고 생각했는지 마틴에게 같이 떠나자는 구실로 자신을 걷게 해달라고 애원한다. 결국 걸을 수 없자 혼자 도망치는데 역시 헛수고다. 심지어 엄마에게 자신의 무례한 짓을 아빠에게 말했는지 검사하는 경지에 이른다. 안나는 스티븐에게 아이는 어차피 만들면 된다며 슬쩍 자신을 그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임신이 안 되더라도 시험관을 통해서 아이를 만들 수 있다며 절박하게 항변한다. 제단에 오르기 전 검은 드레스를 입어 마지막까지 발악을 하지만 결국 그들은 3분의 1의 확률로 죽어야 하는 제단에 오른다. (이런 블랙코미디는 스티븐이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비교하는 대목과 이어진다.)
아가멤논의 말로를 빗대어 이 이야기의 후일담을 예상해본다면 오히려 한 명을 희생시킨 것이 최악의 선택이 아닌가 하는 의문은 든다. 아가멤논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딸을 제물로 바친 대가로 아가멤논을 죽이고 아가멤논의 또 다른 자식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는 아버지를 죽인 대가로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죽였다. 만약 스티븐의 가족도 이렇게 된다면 스티븐이 가족의 죽음을 기다리며 임종을 맞는 것이 차라리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마틴과 스티븐의 가족이 서로 시선을 교환할 때 영화의 끝을 장식할 마지막 컷의 주인은 마틴이었다. 가족을 응시하는 그의 시선은 여지껏 등장했던 출처불명의 시점 숏들의 주인이 누구인지 가늠케 한다. 그의 능력을 생각하면 스티븐의 시점이라고 볼 수 있는 영화의 첫 숏마저 마틴의 시선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서서히 줌아웃하며 심장을 바라보는 그 시선은 인간의 시점이라기 보다 초월적인 시점처럼 보이는데 이것은 사실상 수술을 집도하고 있는 아버지의 원수, 스티븐을 향하고 있는 마틴의 시선인 것이다. 이로써 마틴은 해당 장소에 있지 않음에도 모든 걸 관장할 수 있는 세상이라는 초월적 위치에 선다. (인물의 등을 따라가고 훔쳐보는 듯한 쇼트들이 시점 숏처럼 느껴지는 데엔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마틴의 규칙은 세상의 규칙이다. 그 규칙은 어떤 행위는 기어이 여파를 남긴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