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소마
활활 타오르는 성전으로 맞이하는 생일.
그토록 바라던 육체를 얻게 된 악마 파이몬의 성장 드라마를 오컬트 장르에 녹여내었던 <유전>처럼 <미드소마>역시 호러라는 틀에 자신을 둘러싼 공동체, 즉 이전 세계를 새로운 세계로 대체하는 여성의 성장 이야기를 녹여낸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감독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레퍼런스를 적극 인용해 자신이 원하는 창작물에 재조합해내는 능력이 상당해 보인다. 전작에서 이피게네이아 신화와 성경의 일부 요소들을 상징적으로 집어넣었듯이 본편에서도 그러한 특징이 두드러지는 부분들이 있다. 또한 영화 곳곳에 흩뿌려진 복선들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일례로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그림들은 대부분 인물들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으며 크리스티안은 시브의 집에서 곰이 불타오르는 그림을 목격하고 대니의 침대 자리엔 메이퀸 축제를 벌이는 그림이 포착된다.)
짙게 깔려있는 여러 요소들 중 기독교 측면에서 이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로 읽힐 수 있다. (물론 표면적으로 그렇다는게 아니라 내적인 의미에서다.) 먼저 헬싱글란드를 향하는 차량을 잡은 숏을 예로 들면 이 숏은 처음엔 정상 숏을 유지했으나 카메라는 점점 차량의 위로 지나가며 마침내 차량 앞에 당도하게 될 때 그 이미지는 거꾸로 뒤집히는 형태가 되는데, 이는 반전의 이미지를 관객에게 각인시킴으로써 앞으로 이어질 요소들에 대한 연결고리를 제공하는 셈이다. 당연히 이 반전의 이미지는 성경에서 인간과 밀접한 숫자인 '6'을 뒤집어 '9'를 애용하는 호르가 공동체의 풍습을 떠올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 공동체는 인간의 삶을 가늠하는( ~18세 ~36세 ~54세 ~72세) 숫자로 9의 배수를 지극히도 애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90년에 한번 열리는 인신공양 축제라는 점과 인신 제물 9명을 바치는 것처럼 인간과 연관되어 있는 숫자를 기독교와는 정반대인 숫자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반전의 이미지는 뒤로 걸으며 꽃을 뽑는 호르가의 풍습과도 이어진다.)
다시 말해 영화가 이교도를 묘사하는 작법은 기본적으로 기독교의 요소들을 끌어들여오지만 그것을 배반하고 오히려 모독까지 하는 태도를 취한다는 점이다. 이외에도 영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돌출된 기독교 이미지는 앞서 언급했던 예와 마찬가지로 엮어낼 수 있을 듯하다. 영화에서 꽤 중요하게 다뤄지는, 어찌 보면 영화의 흐름을 전환시키는 72세가 된 노인이 낙사를 준비하는 씬에서 카메라는 노인 둘이 자신의 ‘손바닥’에 칼을 그으며 어떤 의식을 치르는 행위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은 절벽에서 떨어지기 전(혹은 떨어진 후) 어떤 행위를 각기 다르게 취하는 듯하지만 그 행동은 결국 십자가의 이미지로 수렴한다. 여성은 절벽에서 떨어질 때 두 팔을 벌린 채로 십자가의 형상을 만든 상태에서 낙하하고 뒤이어 떨어지는 남성은 절벽에서 떨어지기 전 팔을 안으로 굽으며 십자가 형상을 만든 뒤에 낙하한다. 손바닥을 긋고 십자가의 모습을 취하는 그 일련의 행위들은 골고다 언덕에서 손바닥에 못이 박힌 채로 십자가형을 당한 예수를 연상시키는데, 여기서 잘못 떨어져서 처참하게 안면이 뭉개지는 자는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다. 이 장면은 사실상 남성을 고통스럽게 살려놓음으로써 망치로 안면을 강타하는 모습을 빅 클로즈업으로 짧게 인서트 하며 예수를 모독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는 그것을 장르적 유희거리로 삼는다.
아울러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성전과 함께 불태워 죽는 자들 중 외부인들의 이름이 성경에 등장하는 이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는 점에서 자신의 신을 위해 타 종교를 상징하는 자들을 희생 시키는 것은 명백한 기독교 모독처럼 보인다. (예언자 다니엘에서 왔을) 대니마저도 여왕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그 공동체에 편입된 상태다. 조쉬라는 이름은 여호수아(JOSHUA)를 연상시키고 마크는 마가(MARK), 사이먼은 시몬, 크리스티안은 크리스천, 코니는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지명 코냐(이고니언)에서 따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서양 이름들의 대부분은 성경에 기인한다. 하지만 영화가 그 이름들을 또 다른 신을 믿는 공동체에게 어떤 방식으로 대비시키고 또 자신의 신을 위해 어떤 결말로 치닫게 하는지에 따라 뉘앙스는 다르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런 측면에서 대니가 신에게 바칠 한 명을 선택하게 되는 결말 역시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영화는 왜 그녀에게 한 명만 선택해야 하는 선택권을 주었을까. 왜 하필 그 선택지가 크리스티안과 호르가의 구성원일까. 이것은 사실상 기독교와 호르가 두 종교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 이야기는 기존에 의존했던 세계인 기독교로 대변되는 크리스티안을 배척하고 그 종교를 모독했던 새 종교로 입교하게 되는 개종의 로드무비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미드소마>는 두 세계 간에 자신이 살아갈 세계를 선택하는 이야기다. 여기서 두 세계는 유일한 안식처인 남자친구의 세계와 펠레로 대변되는 호르가의 세계다. 이 시각에선 그녀가 크리스티안과 호르가 구성원 중 제물을 선택하는 것은 앞으로 자신이 살아갈 세계를 선택하는 행위로 다가온다.
영화는 초반부터 대니를 펠레와 크리스티안의 관계를 1:1로 대면시키면서 그 관계를 묘사해왔는데 펠레는 크리스티안과 다르게 대니의 생일을 알아서 챙겨준 반면 크리스티안은 뒤늦게 알아챈 다음 급조한 케이크에 불을 붙이지만 그 불은 제대로 붙지 않는다. (이때 케이크의 색깔이 성전의 색깔과 흡사한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크리스티안은 대니와 연애 기간이 3년이라 착각하고 대니는 그것을 곧바로 4년 2주로 정정해주기도 하며 그는 초반부터 스웨덴에 가기로 한 사실을 티켓을 이미 끊은 상태인데도 대니한테 미리 고지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 위태로운 관계는 다정다감한 펠레와 대비되고 펠레는 직접적으로 대니에겐 의지할 공동체가 필요하다며 크리스티안 보다 이곳이 더 낫다는 식으로 호르가 공동체에 안착하길 유도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미드소마의 축제는 두 세계 사이에 선 대니의 심리적 갈등을 동반한 채 진행된다. 그녀는 이 위태로운 관계와 더불어 가족의 상실에 대한 트라우마를 축제 기간 도중 종종 겪곤 했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72세의 노인들이 겨울의 나이를(54~72) 견뎌온 자들이라는 점에서 대니는 그들에게서 ‘겨울’에 돌아가신 (아마도 조울증인 동생에게 죽었을) 자신의 부모님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위태로운 심리는 자신을 놔두고 친구들이 몽땅 떠나버리는 악몽을 꾸는 것과 배기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입, 절벽에서 떨어진 자들을 침대에 입 벌리고 죽어있는 부모와 매치시키는 컷들을 통해 증명된다.
그럼에도 대니가 그곳을 쉽게 떠날 수 없었던 이유는 고향엔 더 이상 가족이 없기에 더군다나 남자친구와의 관계는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그곳을 떠나버리면 새로운 안식처를 찾을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펠레의 제안은 그녀를 흔들어놓기 충분했다. 이와 연결해서 보면 그녀가 마지막에 제물을 선택한 대상이 호르가 구성원이 아닌 크리스티안인 이유는 분명하게 다가온다. 대니는 메이퀸을 뽑는 의식을 행할 때조차 유일하게 호응해주지 않는 크리스티안을 못마땅해 했고 그 선택이 있기 전, 결정적으로 크리스티안이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는 모습을 목격한 상태였다. 이는 자신의 일원들이 아파하면 같이 곡소리를 내고 슬퍼할 땐 같이 슬퍼하는 호르가 공동체들과도 대비가 된다. 크리스티안과의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망가지는 반면 공동체와의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점점 친밀도를 쌓게 되면서 이 둘은 끝에 가서 역전 되어버리고 만다. (이때 영화는 대니의 통곡과 크리스티안의 성교의식을 매치시킨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가족을 얻게 된 자의 회복을 다룬 성장 드라마다. 자신의 짝이 되길 바라는 사람의 음식에 음모를 넣고 생리혈을 넣어 임신하게 된 그림 속 이야기는 단순 마야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일련의 의식을 통해 짝을 이룬 그 이야기는 호르가 의식을 따르며 새로운 가족에게 안착한 대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제대로 불이 붙지 않던 케이크 대신 활활 타오르는 성전으로, 그렇게 그녀는 호르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써 새로운 탄신일을 맞이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