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퍼마게돈

두려움 이겨내기

by 튜머

스퍼마게돈.. 이 제목을 들으면 뭐가 떠오르는가?


이 영화를 접하게 된 건 순전한 우연의 중첩이었다.

'점프 스케어'에 관한 글을 쓰던 도중, 레퍼런스를 위해 이 기법을 가장 잘 활용하는 감독인 '제임스 완' 감독의 필모그래피들을 훑게 되었고, 그의 대표작인 <쏘우>를 오랜만에 찾아보게 되었다. 이 시리즈의 팬은 아니지만 워낙 유명한 만큼 자료들을 보니, 시리즈가 꽤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본편 이기는 속편 없다고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점점 저열해지는 퀄리티에 평가가 점점 박해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이것이 단적으로 드러난 게 박평식 평론가의 별점과 한줄평인데, 시리즈가 이어질수록 느껴지는 그의 피로감, 분노 등이 한줄평에 그대로 녹아있었다. 한편으로는 이걸 다 본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그의 한줄평 목록을 최신순으로 해서 쭉 훑던 중이었다. 큰 목적 없이, 높은 점수를 받은 좋은 영화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스크롤을 얼마 내리지 않았을 때, 이 영화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의 별점은 6점. 한줄평은 돌진, 교훈, 폭소의 투 트랙. 높은 점수를 준건 아니지만, 이 별점과 한줄평보다도 눈에 들어왔던 건 이 영화의 제목이다.

그의 한줄평

스퍼마게돈. 샤크네이도 같은 제목이 주는 정신 나간 생명력이 느껴졌다. 아, 부제도 있었다. 스퍼마게돈 : 사정의 날. 부제를 뺀다면, 실제로 23편까지 판매된 동명의 독일 포르노가 있다.

도대체 무슨 영화일까. 사실 제목만 들었을 때 바로 떠오른 건 예전에 본 영화다. 바로 2011년 개봉한 <칠레라마>라는 B급 공포 옴니버스 영화의 <와질라> 에피소드다. 누가 봐도 <고질라> 제목의 패러디인 <와질라>의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1950년대 괴수물을 패러디 한 영화로, 이 괴수가 한 남성의 거대 정자이다. 사람을 먹는 이 식인 거대 정자가 고질라와 마찬가지로 뉴욕 한복판을 침공하고, 그 사이즈의 정자가 수정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인 자유의 여신상으로 돌진하고, 부카케 장군(...)의 지시 아래 폭발하여 도시에 하얀 비를 내리며 도시를 지킨다는 단편이다.

<와질라> 저 이빨 괴물이 거대 정자이다.


사실 <와질라> 보단 <스퍼마게돈 : 사정의 날>이 더 이 내용에 걸맞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보다 더 어울릴 수 있을까?

아무튼 이 둘은 분명 다른 영화이기 때문에 바로 찾아보게 되었고, 심지어 애니메이션이라고 한다. 기대감은 점점 커졌다. 이 영화의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평범한 10대 소년 옌스,

짝사랑 리사와 드디어 첫 관계를 맺는 역사적인 순간!

그런데… 그의 몸속에서는 지금껏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단 한 번뿐인 ‘사정의 날’이 개막한다!


수억 개의 정자들이 그날을 위해 러닝머신을 뛰고,

수영법을 갈고닦고, 심지어 팀워크 훈련까지 해온 상황.

단 하나의 목표는 단연코 난자 골인지점!


하지만… 수정 따위엔 관심 없는 책벌레 정자 시멘과,

그를 말리느라 고생하는 절친 쿠밀라까지 휘말리면서

이 레이스는 순식간에 생존 서바이벌 코미디로 변한다.


6억 분의 1 확률을 뚫어야 하는 인류 최초의 레이스!
세계에서 가장 작지만, 제일 치열한 서바이벌이 시작된다!


마침 왓x에 있길래 바로 결제를 한 뒤 보게 되었고, 참 복합적인 느낌을 받았다.

이 영화는 단순한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뮤지컬 애니메이션이다.

정확히 말하면 교육용 뮤지컬 애니메이션이다.

이 영화는 분명 교육용을 표방하고 있다.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 4개의 넘버가 나오는데, 마지막 곡이 매우 교육적이다.

그렇다면 이 <스퍼마게돈>이 교육용으로 적합한가? 에 대한 생각은, 한국의 정서로는 절대 아니다.라는 생각이다. 절대로.

이 노르웨이 영화는 노르웨이에선 12세 관람가를 받았다. 덴마크에선 7세 관람가를 받았고, 한국에선 청소년 관람불가를 받았다.

이 이유는 내가 북유럽 사람이 아니라 평생 알 수 없을 것이다.


아래의 내용은 <스퍼마게돈 : 사정의날> 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웃기다. 약 80분간의 짧은 영화지만, 시도 때도 없이 저급한 조크를 시도한다.

또한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노르웨이식 말장난의 변형이다.

다행인 점은 여기서 말한 저급한 조크가 성차별적이거나, 시대착오적이거나 하다는 뜻이 아니다. 대부분 그저 말장난들이다. 노르웨이 영화라 그 전부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공식 자막은 이걸 표현하는데 꽤나 고생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뉘앙스가 잘 느껴졌다.

노르웨이식 개그라 100% 이해하진 못했지만, 자막 번역자는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예컨대, 주인공 일행(정자들)이 ‘모종의 사고’로 원래 가야 할 길이 아니라 항문으로 들어가 버리는 장면.

“이건 정말 큰일이... 나는 곳이네요.” 같은 식이다. 이런 류의 대사를 1분에 한 번씩 끊임없이 하고, 솔직하게 타율이 꽤 높았다고 생각한다. 정말 최악이다 싶을 정도로 별로인 것도 많았지만 , 몇몇은 꽤나 통했다.

항문에 들어온 주인공 일당

영화의 내용은 시놉시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투트랙으로 진행되며, 외부에선 10대 소년 '옌스'와 '리사'의 첫 성관계에 관한 내용이고,

내부에선 '시멘', '쿠밀라'가 포함된 주인공 일동, 그 외의 두 세력이 난자로 골인하기 위한 생존 레이스를 펼치는 내용이다. 이 나머지 세력은, '지즈모'라는 우등생 소시오패스 정자 (이 작품의 메인 빌런이라고 할 수 있다)와 갱스터 정자 트리오로, '지즈모'는 아이언맨 슈트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사정머신 9000' (원문은 Ejaculator 9000)을 타고 무력을 뽐낸다. 정자들이 수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방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콘돔을 뚫어버리고, 사후 피임약도 무력화하는 놀라운 기술을 가졌다. 아이언맨 슈트를 닮은 만큼 인공지능 조수도 있는데, 이름은 각자 생각하시라. 갱스터 정자 트리오는 올슨 갱이라는 덴마크 영화를 패러디한 인물들로, 큰 활약은 없으나 브로맨스 감초 역할을 한다.


영화를 보면서 궁금했던 건, 정자의 목표는 난자에 무사히 수정하는 것이지만 두 10대 청년의 목표는 임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적은 '섹스'지 아직 청소년이고, 아이를 가질 생각은 전혀 없다. 실제로 '옌스'와 '리사'는 피임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이건 반대로 정자들에겐 큰 시련이다.

즉, 한쪽이 성공하면 다른 쪽은 실패한다. 이 딜레마를 영화는 의외로 영리하게 해소한다.

마지막 피날레, 교육용 뮤지컬 넘버를 통해서다.


이 영화는 호불호가 엄청나게 갈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80분의 러닝타임 내내 눈 달린 정자 캐릭터들과, 저급한 말장난으로 극을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사실 저 두 가지 외엔 특징적인 요소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전개 방식은 평범하고 뻔할뿐더러 억지스러운 장면이 많이 나온다. 유치하기도 하다. 캐릭터도 갱스터 정자 트리오 외에는 진부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저 두 가지가 코드에 맞는 나 같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러닝타임 내내 이어지는 저급한 말장난은 정말 인상 깊게 느껴졌다. 다시 한번 번역가 분한테 박수를 드리고 싶다. 코드가 맞지 않는다면 정말 시간이 아까운 최악의 영화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줄 느낀 점 남기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이것 또한 저급한 말장난이다.


쥬토피아, 업, 인사이드 아웃, 스트레인지 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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