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장판

두려움 극복하기

by 튜머

전기장판의 시즌이 도래했다.

하얀 세상에만 등장하던 것들이, 주황 세상에도 꺼내어진다.

이 사악한 악마들은 점점 더 많은 출전 기회를 보장받는다.

인간이 나약해지는 탓인지, 자연이 혹독해지는 건지 구분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거역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코드를 삽입하고, 레버를 내 체온에 알맞게 조작한다.

부끄러움을 느껴 불을 끈다. 감추어진 불만 밝힌다.

곧 뱀같이 길게 이어진 열선들이 몸을 조여오며 달아오르게 한다.

위에 덮인 식물성 피혁은 이 은밀한 행위를 감추어주며 동조한다.

강한 구속감이 느껴지고, 산소가 부족해지며, 호흡이 안정된다.

곧 림보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곳의 시간 단위는 통상적이지 않다.


수 초 후, 저만치서 이 자승자박을 방해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눈을 뜨겁게 하는 또 다른 전기장판이다.

하루의 2/3을 같이 보내지만, 오늘따라 질투가 심하다.

사실 질투가 아니다. 이건 신의에 관한 것이다.

사회적 신의.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이걸 저버리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갈라진 혀가 두 귀를 막고 있어 더더욱 멀고 괴기스럽게 느껴진다.

유일한 동아줄이 손에 닿을락 말락하고 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숨의 끝에서 역겨워하며 스스로 눈을 뜬다.


시간을 보니 간신히 지각은 면했다.

체면치레는 뒤로 하고, 약속만 겨우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휘감는 것들을 간신히 뿌리치고, 숨통을 끊어버린다.

지금 숨통을 끊지 않으면, 불같은 질투의 화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죽음을 검증한 뒤, 필요한 것들만 챙겨서 급하게 밖으로 나온다.

어제의 흔적들이 몸 곳곳에 붉게 남아 있지만, 얼음찜질이 도움이 될 것이다.

공복 유산소는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다.

다이어트 덕분에 간신히 반으로 접힌 신문지만큼의 공간에 서있을 수 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전기장판에 구속되어 어디론가 실려간다.

다시 불이 켜지기 만을 고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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