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나는 대학생 시사 팟캐스트의 패널이었다.
그때는 학생운동을 시작하기 전, 그러니까 한참 운동권 선배들의 총애를 받던 저학번 후배 시절의 이야기이다. 나는 그때 단과대에서 가장 운동권 선배들을 잘 따라다니던 2학년 학과 집행부였다. 2015년. 시국은 혼란했다.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돌아왔고, '노동개혁'이라고 들고 나온 정책 때문에 당국은 그걸 '노동 개악'이라고 인식하는 노동계와 정면 대치 중이었다. 그 해 가을이 되자 정부는 '역사시간에 주체사상을 가르친다'며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고 나섰다. 정의감에 불타던 2학년 정치학도였던 나는 그때 주말마다 선배들을 따라 집회 나가기에 바빴지만, 학생운동과는 좀 거리가 있던 대외활동에도 열심이었다. 그중 하나가 서울지역 정치외교학과 연합동아리였다. 나는 거기에 새내기였던 2014년 2학기에 가입해, 이듬해 2학기에 회장이 되어 한 학기 활동한 것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마쳤다. 그곳에서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이듬해 단과대 학생회장이 되면서 나는 완연한 운동권이 되었다.
그때 했던 것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걸 꼽으라고 하면 마지막 학기였던가? 그때 했던 팟캐스트 제작이었다. 그때 나는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게 한다면', '정치를 많이 알게 한다면' 세상이 조금 더 좋아질 수 있을 거란, 그야말로 새내기 정치학도에게나 어울릴법한 생각들에 강하게 매료되어 있었다.(그런 생각이 어리다고 하는 건 아니다. 새내기'다운' 생각이었단 것이지.) 그땐 뭐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도 아니었고 사상적으로 시각이 굳혀지기도 전이었으니. 소위 '의식화' 전이었던, 평범하게 정의로운 정치외교학과 학생이었다. 그런 내게 당시 동아리의 한 회원이 제안했던 프로젝트인 '시사 이슈 해설' 팟캐스트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때마침 스마트폰 사용이 전면적으로 확대되고, 애플리케이션 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하면서 페이스북과 팟캐스트 같은 매체들이 크게 주목받던 시절이었다. 정치를 전공하는 대학생들이, 시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시사 이슈를 대중적으로 해설한다. 당시 내 캐릭터에 비춰 생각해보면 그냥은 못 지나칠 방앗간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 아마 그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사람은 네 명이었을 것이다. 다 모아놓아도 쥐꼬리만 했을 동아리 활동비에서 프로젝트 비용을 일부 지원받아서 그 네 명이 녹음실을 빌렸다. 장소는 홍대입구 근처, 동교동 골목길에 위치한 지하 스튜디오였다. 당시에 워낙 팟캐스트 붐이 불던 시절이라 여러 동호회나 모임들이 모여 팟캐스트를 녹음했고, 그러다 보니 시간제로 비용을 지불하고 이용할 수 있었던 녹음실들이 있었다. 우리는 1~2주의 텀을 두고 가장 핫한 시사이슈를 모아 자료로 조사했고, 대략적으로 구성한 대본 한 장만 들고 그 녹음실에 모여 앉아 토론을 나눴다. 정치외교학과생들은 학교를 불문하고 다들 말쟁이라는 걸 그때 새삼 실감했던 것 같다. 다들 너무 재밌게 이야기 나누듯 녹음하다 보면 예정된 녹음 시간은 훌쩍 넘어버리곤 했다. 그렇게 녹음을 마치면 헤어지기 전에 홍대 근처에서 밥도 한 끼, 술도 한잔 나누며 우리는 그 시절을 그렇게 보냈다.
지금도 그렇게 할 수 있냐고 하면 글쎄... 나는 고작 20대 후반이 되었을 뿐이고, 10년도 채 되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그때만큼 열정적이고 정력적으로 그런 작업에 몰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그때 내 생각과 시선은 지금보다 훨씬 맑고 투명했고, 더 정의로웠다. 오히려 학생운동에 뛰어들고 그 이후 몇 년의 시간을 보내자 나는 많이 무기력해졌고, 많이 세속적으로 변해버렸다. 나는 제법 잡기술에도 능한 편이었어서 녹음된 음원파일의 편집도 맡아했었는데, 그땐 과제를 미뤄가면서도 밤을 새워서라도 데드라인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파일이 업로드되고 나면 주로 그 팟캐스트를 들어주는 건 우리들의 지인이었지만, 간혹 팟캐스트를 즐기는 30-50의 유입도 있었더랬다. 간혹 달리는 청자들의 댓글에 우리는 힘을 얻었고, 에너지를 얻었다.
그 동아리. 캐릭터 강하고 신기한 사람들이 많았다. 서울에 위치한 예닐곱 개의 대학 정치외교학과 저학년들이 주를 이뤘었는데, 개성 넘치고 독특한 이들도 참 많았던 것 같다. 나는 그래서 그때 그 동아리의 회장 감투를 쓴 게 신기하다. 등 떠밀어서 쓴 감투였긴 했다.(아이러닉 하게도 정외과 대학생들이 모인 동아리였는데도 회원들이 회장 감투는 피했다. 바지사장... 이어서 그랬나.) 학생회 선거 출마를 준비하던 시절이라 내가 그걸 계속하는 게 좀 버거웠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즈음엔 은근 감투 욕심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 기회가 오자 내심 좋아서 덜컥 얻어 쓴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있던 그놈의 감투 욕심이 종국에는 내가 학생운동에 뛰어들게 된 큰 계기 중에 하나였던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그때 스무 살 넘어 서울에 홀로 상경해 다양하고 신기한 사람들을 만나 볼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다들 어떻게들 사시는지. 자연스레 연락이 끊겨 많이 궁금하다.
사는 게 바쁘고 벅차 동아리 활동하던 기억을 완전히 잊고 지냈다. 내가 그 동아리 회원이었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일상을 보내던 차, 정말 우연한 계기로 오늘 그 시절을 떠올렸다. 요즘 시간이 빌 때면 틈틈이 브런치를 뒤지고 좋은 글을 찾아 읽곤 한다. 어떤 멋진 대학생 활동가의 글을 찾았고, 이 작가는 정말 응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글에 빠져들어 나도 모르게 댓글을 몇 번 달았다. 그런데 작가님이 대댓글을 단 것이다.
혹시 예전에 ~동아리 회장 하셨던 00님 아니세요? 저 00이에요! 그때 활동했던.
일단 진짜 깜짝 놀랐다! 세상에 이런 우연이. 그제야 그때 그 활동들과, 그때 만났던 얼굴들이 막 떠오르더라. 신나서 작가님 계정을 찾아 이메일을 보내고 오는 참이다. 세상은 이렇게나 좁고, 브런치는 이렇게나 이롭다.
그래서 오늘은 문득 저학년 시절의 내 대학생활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때 나는 별로 가진 건 없었지만 당당하고 때론 무모했다. 그리고 대책 없이 정의롭기도 했다. 그게 진짜 정의인지 같은 걸 떠나서, 어쨌든 대책 없던 그 모습은 그 나름의 매력과 저력이 있었다. 속절잆이 흐른 대학에서의 시간이 그 시절 모습을 잃어버리게 한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먹먹해져오는 밤이다.
2021. 1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