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과 불안정의 공간 'Banjiha'
미완의 공간 반지하가 Banjiha가 되기까지 반세기, 없애면 해결일까
반지하는 그야말로 ’불완전‘과 ’불안정‘의 표상이다. 반(半)지하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온전히 지하가 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지상이 되지도 못했다. 70년대 도시화와 산업화 열풍 속에서 방공을 목적으로 조성된 공간에 세입자가 살기 시작하면서 조성되기 시작했다는 이 공간. 주거공간으로서 그야말로 불완전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볕이 잘 들고, 신선한 공기도 드나드는 공간에서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성인 키 정도 되는 높이만큼 지하로 들어가면서 이런 조건도 함께 잃었다. 이 거래의 대가로 얻은 것은 저렴한 보증금과 월세다. 반지하 속 사람들은 그렇게 스스로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삶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최초에 사람이 살 것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공간도 아니었기에 당연히 주거공간으로서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전쟁이라는 특수하고 불안정한 한반도의 상황은 수도 서울 도심의 신축건물에도 방공호를 강제했다. 급격한 도시화에 인구를 수용할 준비가 부족했던 도시는 이 방공호에 도시노동자들을 받아들였다. 너도나도 저렴한 집을 찾아 반지하로 들어가기 시작하자 결국 국가는 이 공간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타협을 택했다. 몇 가지 전제조건을 붙여 주거공간으로 인정하고 합법화한 것이다. 그렇게 그 불완전한 주거공간은 하나의 주거형태로 정착했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났다. 산업국가로서 불완전했던 대한민국은 어느덧 온전한 산업화를 이룩한 것처럼 보인다. 정치인들은 이 땅의 발전사를 두고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룩한 성공신화”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그러나 그것은 양지의 이야기일 뿐이다. 경제발전의 햇볕은 주거촌 골목골목마다 즐비한 반지하방 입주자들에겐 아직 닿지 않았다. 월세 500에 50, 전세로는 5000에서 많게는 1억까지 육박하는 서울 도심의 이 불완전한 공간. 재난은 가장 낮은 곳부터 사람들을 위협했고, 반만 지하라는 이 공간이 서울에서는 가장 낮은 곳이었다. 올여름 수도권을 덮친 폭우에, 반지하에 살던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일가족이 침수로 세상을 떠났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통해 처음 알려진 반지하가, 이번 폭우를 계기로 외신을 통해 소개되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독특한 도심 주거형태인 반지하는 ‘Half-Basement“가 아니라 ”Banjiha“로 그대로 음차 되어 소개되었다. 마치 재벌(Chabol)이나 꼰대(Ggondae) 같은 사례처럼. 이 나라에만 존재하는 특징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대로 두고 보기에는 이 문제가 너무 오래 묵었다는 방증이 아닐까. 서울시는 부랴부랴 정부와 협의해 반지하를 장기적으로 없애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과연 그저 없애기만 하면 해결될 문제일지 의심스럽다. 반지하가 ’Banjiha’가 되는 동안 반세기가 흘렀다. 반세기 삶의 터전을 햇볕 없는 곳에서 살았던 이들에게 햇볕을 돌려주는 일이지만, 그곳을 터전으로 살던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은 아닐까. 그들의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삶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이 숙제를 끝낼 해법일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