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짧은 공약, 그 이면엔 놓치고 있는 길고 복잡한 고민들이 많다.
그야말로 “짧은 공약”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설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라고 올린 짧은 글에 수많은 이대남(20대 남자)들이 열광했다. 그리고 그것은 공약이 되었다. 윤 당시 후보는 보수 정당 후보로는 유례없이 높은 20대 남성 지지를 기반으로 0.7% 차의 신승을 거둬 대통령이 되었다. 역사도, 맥락도, 흐름도 그야말로 짧은 공약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이 집권하고 100일 남짓이 흘렀다. 유사 이래 최연소 여당 당수가 대통령의 핵심 관계자들과 다투다 쫓겨나는 걸 지켜보던 '그 20대'들은 등을 돌렸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석달 여 만에 레임덕 수준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정부의 입장은 여전히 명확하다. 여가부 폐지 공약 사수는 젊은이들과 지켜야 할 마지막 의리라도 되는 것일까? 이어지는 논란에도 특별히 입장을 선회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최근 국회에서 여가부 폐지에 대한 입장을 묻자 ‘분명하다’고 답했다.
20대들이 특별히 여가부 폐지에 뜨겁게 열광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기저에 대한 해답은 최근 몇 년 새 대학가에 이어진 ‘총여학생회 폐지’ 흐름에서 찾을 수 있다. 대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단체를 조직하고 여가부 폐지를 추진하며 차라리 ‘성평등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그 논리는, 대학사회에 필요한 것은 ‘여권 신장이 아니라 성평등’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규정하는 것에 더 이상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여성과 남성을 동일선상에 놓고 성차별 문제를 포괄적으로 푸는 것이 중요하다는 식의 주장이다. 성평등 문제에서 여성이 약자에 위치에 놓여 있으니, 여성의 권리를 강화하는 것이 실질적 성평등을 달성하는 것이라는 명제. 적어도 이대남들에겐 구시대적인 발상이 되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 폐지를 추진하는 여가부 장관의 인식은 여기에 비춰본다면 모순적이다. 김 장관은 성 격차 문제도,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도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임에는 분명하다고 답했다. 여가부를 없애더라도 다른 부처에서 기존 사업들은 각기 맡아 추진하도록 하는 것이 현 여가부의 기본 방침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여가부 사업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여가부로는 안 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결국 바뀌는 것은 이름뿐일까. 부처를 없애기 위한 장관이라는 점 뿐 아니라, 그 정책 방향의 논리까지도 총체적 자기모순으로 가득해 보인다. 총여학생회가 성평등위원회가 되는 것처럼, 여성가족부도 성평등부로 바꾸면 그만인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도 나온다. 실제로 야당에서는 박근혜 정부 시절 ‘해경 해체’처럼 허울뿐인 행정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세대 간, 젠더 간 인식의 격차는 몹시 크다. 여성이 사회적 약자가 맞냐는 물음에 대해 이대남들은 아니라고 답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들은, 또 다른 세대는 다른 입장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식의 간극이 ‘젠더 갈등’으로 치부되면서 여가부는 젠더 갈등의 촉매제로 단순 치부되었다. 그러니 그 내용과 본질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폐지’라는 짧은 공약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짧은 공약만큼이나 숙고도, 사회적 합의도 너무 짧다. ‘젠더 갈등’이 문제의 본질이라면 이 문제를 풀기 위한 숙고의 과정은 길어야 한다. 이 문제의 깊이가 짧지 않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성 불평등과 성차별을 바라봐야 할지, 성평등 문제에서 우리 사회의 현주소는 어디쯤으로 보아야 할지, 당연히 동반되어야 했을 고민은 실종되어 보이지 않는다.
해경이 잘못했으니 해경을 해체하라던 대통령이 탄핵당한 지가 5년이다. 서울시장은 물난리 통에 반지하가 문제니 반지하를 없애자고 했다. 비판이 만만치 않다. 민주주의는 원래 길고 복잡한 것이라는데, 다들 너무 쉽게 답을 찾으려는 것은 아닐까. 그 복잡한 과정이 생략된 짧은 답은 반드시 흠이 많기 마련이다. 여성가족부 폐지 문제도 길고 지난한 고민으로 답을 찾아야 한다. 대통령의 짧은 공약에 대한 고민이 이대로 짧게 끝난다면, 이후에 이어질 문제들은 결코 짧게 끝나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