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불안함이 다가오면 느껴지는 불쾌함

1n년차여도 여전히 힘든 우울감 다루기

by 뚜로루디


예전에 비하면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 나는 스스로 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두 달째 해오고 있다. 내가 느끼는 불안함과 막막함을 웃는 얼굴로 농담조 살짝 섞어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건 정말로 많이 괜찮아진 것이다.


예전에는 뭐든지 막막해지면 그 결말은 '그래, 죽지 뭐.' 였는데, 지금은 먹고 살 길에 대해 걱정하는 걸 보니 앞날이 있을 거라는 전제를 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선생님께, 부모님께 말한다. 내가 현재 겪고 있는 불안함은 애써 찾아낸 듯한 먹고 살 만한 길이 그다지 미래를 보장해 주지 않는 것 같다는 사실로부터 시작한다. 부모님이 앞으로 더 나이들어가는 것, 독신으로서 살아갈 나의 미래, 이 모든 것을 부양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내가 확보해 놓아야 할 자원들 등은 일단 그 미래에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절대 생각해낼 수가 없다. 그러니 누가 봐도 예전에 비해 나아진 것은 맞다. 누가 지금 당장 안락사 캡슐 이용권을 제공해 주겠다고 한다면 나는 고민할 것이다. 아마 결정을 좀 미루면 안 되겠냐고 할 것 같은데, 상상 속에서라도 고민을 하는 것이 어디인가.


그러나 비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우울은 내가 나아졌는지 나아지지 않았는지에 관해서는 하등 관심이 없다. 그저 뒤통수를 치기 딱 좋은 시기다, 판단될 때 스멀스멀 기어오는 것이다. 목 뒤의 모든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고는 피를 말려 죽이겠다는 기세로 아주 조금씩 전진한다. 그렇게 우울이 다가오는 모든 순간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보면 어느새 잡아먹혀버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많이 좋아진 사람의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우울은 이때까지와는 다른 양상이라 참 찝찝하고 불쾌하다. 지난 일이 년 정도 특히 나를 괴롭혔던 편두통이나, 소음에 예민한 것이나, 면역력이 약해지는 것과는 또 다르다. 몸이 저릿저릿하며 마음이 무게추를 달고 끝없이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은 같은데, 분명 내 정신은 이전보단 건강해 또렷하다. 우울에 같이 잠겨들어가지 않기로 다짐한 맨정신으로 접하는 우울은 정말 너무 지독하고 징그럽다. 시시때때로 나도 모르게 끌려들어가고, 마음이 무겁다는 것을 깨닫고, 방을 치우지 않고 씻지도 않고 요리도 하기 싫어 냉장고 속 찬 음식으로 버티다 배달 음식만 사흘 연속을 주문하고. 단 음식 한두 조각으로 달래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또 무서워하고, 혼자 있는 시간들이 해가 질 때 즈음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처럼 한없이 길게만 느껴지고. 시간은 또 내가 버티고 견뎌내야 하는 무언가가 된다. 제일 정직하게 흘러가는 시간만큼 잔인한 무거움은 없다. 그럼 나는 어떻게든 잠으로 도피하는데, 잠은 꿈 속에서 나를 신나게 굴려 지치게 만든다. 현실이 아닌 꿈에서도 또 다른 복잡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피곤하게 느껴진다.


이 모든 것들은 빙판 위를 걷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직까진 그나마 두꺼운 얼음 위에 서 있었지만, 한 발이라도 잘못 내딛으면 빙판은 깨지고 나는 물에 잠겨 죽는다는 것을 안다. 나는 그 바닥까지 가 보았고, 바닥까지 갔다고 생각했을 때 또다시 더 낮은 바닥을 보아오는 삶을 10년 넘게 살아왔다. 또 다시 반복된다면 견뎌낼 자신이 없다. 더군다나 겨우 얻어낸 이, 상대적으로 멀쩡한 정신으로.


두려움이 큰 만큼 우울은 더 큰 불안을 선사한다. 이미 난 우울한 상태라는 걸 알고 있는 것은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미 먹혀 버렸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이 발이 꽁꽁 묶인 상태에서 나는 매일매일 한 층씩 높아져 시간이 갈수록 발밑이 더 아득해지기만 하는 옥상 위에 서 있는 기분이다. 뛰어내리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서 더 무섭다. 언제까지 저 아득한 발밑을 보고 있어야 하는 거지? 그러나 우울은 고개를 돌리려는 내 머리를 꽉 붙들고 아래를 쳐다보고 있을 것을 강요한다.


요즘은 집에 있는 시간 동안 뜨개질을 하며 새로운 시리즈를 본다. 어이없이 웃긴 말도 안 되는 애니메이션을 새로 시작하면서, 내가 쓸 물건들을 내 손으로 만들고 있다. 요즘 나에게 가장 잘 먹히는 시간 때우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한 달이 넘어가니 지루해지기 시작해서, 가끔은 집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밖을 떠돈다. 쇼핑몰이나 마트 같은 구경할 것이 많은 곳. 굳이 살 것이 없는데도 같은 곳을 뱅뱅 돌고 각 층을 두세 번씩이나 크게 돌다 보면 참 마음이 복잡해진다. 사람이 싫고 사람이 북적이는 게 싫어도 결국 이런 것들이 필요하긴 하는구나, 하는 깨달음이 그렇게 만든다.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고 행복한 사람들과 반려동물들의 모습이 어느 정도 지겨워진다 싶으면 집으로 향한다 - 혼자 버텨야 하는 시간이 조금은 줄어들었음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취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아서 문제였다. 하지만 에너지가 없으면 하기 힘든 취미도 존재한다. 준비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드는 것들이나, 반대로 정리하는 데 많은 시간이 드는 것들. 당연히 존재하는 번거로움도 해낼 힘이 없다. 뜨개질은 과연 얼마나 갈까. 우울이 나를 휩싸다가 바람처럼 떠나가길 기다려야 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얼마나 붙들려 있어야 할까?


상태가 좋아져도 기분이 좋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노력을 해도 결국 주의를 돌리는 그 잠깐의 역할만 할 수 있구나. 처음 알았다. 아니면 옛날에 알고 있었는데 잊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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