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울타리에 핀 박꽃 - 강청댁

- 박경리 작가님의 <토지> 속 인물들. 토지 1권

by 청록펜

강청댁은 작은 키에 볼품없고 알뜰한 살림꾼도 아니며 산골짜기에서 본 바 없이 자란 사람입니다.


도무지 마음을 숨길 줄 모르고, 화가 솟구치면 대번에 식칼이나 희번득거리는 낫을 들기도 합니다.

이렇듯 강짜 심한 강청댁이지만 그녀에게도 수줍은 새색시 시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혼인날 처음으로 신랑을 봤을 그녀는, 옥을 깎아놓은 듯 잘생긴 용이를 보고 얼마나 설레고 행복했을까요.


그러나 그녀가 가지게 된 것은 그의 빈 껍데기뿐. 꼭 해야 할 일들만, 마지못해 해내는 의욕 없는 사나이 용이. 그의 낮이 이럴진대, 그의 밤이라고 해서 온전히 강청댁의 것이었을 리 없습니다. 그녀의 심한 강짜는 내게도 관심을 가져달라는 처절한 외침이었건만, 오히려 마을 사람들 속에서마저 설 자리 없이, 그녀를 철저히 고립시켜 버립니다.


내가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임이네처럼 예뻤다면, 두만성님처럼 살림을 잘 살았다면, 다른 아낙들처럼 아이를 순풍순풍 낳을 수 있었다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아프고 괴롭습니다.

그 년 때문이다. 개처럼 노란 눈깔을 한 꺼림직한 무당 딸년…

오로지 그년에게 화살을 돌리지 않으면 내가 죽을 거 같으니, 강청댁은 "그년", 월선이를 증오합니다.


강청댁의 그 년, 월선이는 신분 때문에 자기 마음을 드러내기보다는 숨기기를 먼저 배워야 했습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가슴에 묻고, 마음 없는 남자에게 시집가 말 못 할 세월을 견디고,

가랑잎처럼 고향에 굴러들어 와서야 어매의 죽음을 알고 그 무덤 앞에서 무너지던 여자입니다.

염치를 알기에, 오밤중에 난데없이 찾아와 새파랗게 날이 선 눈으로 무작정 두들겨 패는 강청댁의 행패에도 제대로 저항 한번 못 해보고 옷까지 찢긴 채 주저앉아 울기만 합니다.


강청댁은 그런 월선이를 보고 맥이 풀려버립니다.

차라리 월선이 악다구니를 쓰고 달려들었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정말 나쁜 년이라면 마음껏 미워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월선과 용이의 밀회 현장을 덮치게 될 줄 알았는데, 용이는 없고, 주먹다짐으로 분풀이를 해 보지만 월선은 대거리 없이 울기만 하니, 자신의 잘못만 쌓여가는 거 같아 강청댁은 월선을 때리면서도 무언가 불안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캄캄한 30리 길. 한밤중에 감행한 “습격“을 용이에게 들킬까 봐 무섭기도 했지만, 사람 좋은 용이와 월선이 사이에 끼여버린 이년의 신세가 처량하여, 초조한 마음으로 달음박질치면서 강청댁은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그런 강청댁의 서럽고 지친 발걸음을, 그녀의 집 울타리에 핀 박꽃에 맺힌 이슬이 안쓰럽게 맞이합니다.




* 박경리 작가님의 <토지> 초독자로서, 작품 속 인물들과 장면에 관한 저의 느낌과 생각을 기록하려고 합니다.

지면을 허락해 주신 <브런치 스토리> 운영진 여러분들과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