펼쳐진 다른 세상

감정평가사는 넓은 세상을 보는 사람입니다

저번주에는 활발하게 제조업을 운영을 하고 있는 공장에 다녀왔습니다. 프레스와 자동화설비, 크레인 등 기계설비가 포함된 공장재단 감정평가 업무를 하기 위해서였는데요. 한국부동산원 신입사원시절 공장재단 감정평가 업무를 하면서 놀라웠던 경험들이 새록새록 살아나기도 하였습니다. 퇴사직전 근 8년간을 본사에서 문서질만 하였으니 활발히 운행하고 있는 제조 공장을 오랜만에 본 셈이죠.


저는 감정평가사를 합격하고 한국부동산원 인천지사에 입사해서 7년여간을 인천에서 근무했었습니다. 인천은 남동공단 (지금은 남동국가산업단지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인천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업공단입니다), 인천은 주안 및 부평 국가산업단지뿐만 아니라 도심지 외곽에도 중소규모의 제조 공장들이 많이 소재하고 있습니다. 주물공장, 금형 제조 공장 등 다양한 공장유형을 감정평가하는 행위는 재미있는 신선한 경험이었는데요. 과자 봉지만 만드는 공장이 갑자기 생각이 나네요.


아빠의 아빠, 아빠의 아빠의 아빠, 아빠의 아빠의 아빠의 아빠.... 아빠의 아빠로 이어지는 끝나지 않는 조상 대대로 인천사람의 피를 이어받은 저로서는 유년시절을 흘러 직장까지 인천에서 터를 잡다 보니 인천에 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니던 곳이 집과 학교 떡볶이 먹고 닭강정 먹으로 놀러 다니던 신포시장이 전부였던 저로서는 인천에 그렇게 많은 공장들이 있다는 것은 신비로운 일이었는데요.

중장비 설비 중에 굴삭기라는 것이 있지요? 주걱처럼 생긴 긴 장비를 통해 도로 등 정비작업을 하는 중장비 기구인데요. 굴삭기는 유치원생도 잘 알지만, 윗 그림처럼 집게발 형태의 중장비 기구를 본 적이 있는지요? 공장 감정평가 하러 출장 가는 길에 집게발 중장비로 공장 건물 철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집게발로 건물 벽을 찝고 뜯는 과정을 거쳐 철거를 하는 장면을 실제로 목격한 것이지요. 너무나 신기해서 먼지 풀풀 날리는 현장에서 갑갑한지도 모르고 한참을 서서 구경했었습니다.


인천에서 나고 자라 성인이 되어서도 이런 진기한 광경을 처음 본다니 말입니다. 제가 감정평가사가 아니었다면 건물 철거용으로 집게발 중장비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평생을 모르고 살았을 것입니다.


감정평가사의 세상에 맑은 눈 광이 띄었던 첫 기억입니다. 감정평가사란 같은 곳이지만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마치 다른 차원을 넘나드는 마법 같은 직업인 것 같지 않나요?


감정평가사는 세상의 모든 토지와 건물, 기계, 자동차, 선박 등 동산, 영업권 등 무형자산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나 무궁무진한 직업이었다니,, 평가사들은 가슴속 한 개 이상의 무용담을 품고 있다는 말은 과언이 아닙니다.


한시적이었지만 재고자산을 담보물로 대출을 해주는 정부정책이 시행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공장에서 제조되어 상품화되기 전 구입한 고철 등의 원료를 담보물로 인정해 주겠다는 것인데요.


원재료 등 재고자산은 상품화되면 없어지고, 다시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공장 창고에 쌓여 있는 재료를 평가한들 가공되면 바로 없어질 물건들인 거죠. 담보물로 제공되는 물건은 부동산과 같이 안정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인데 정부에서 획기적인 경기 부양책으로 원재료 등 재고자산도 담보물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물론 얼마지 않아 이 황당한 제도는 없어졌습니다만., 그때 백금 100톤이 감정평가 의뢰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평가하러 가는 길 얼마나 가슴이 콩당콩당 뛰던지요. 백금 100톤 쌓여 있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는 거라니까요 ㅎㅎ


공장에 도착했을 때 벌어진 광경은?


백금은 없었습니다. 텅 빈 창고 앞 공장사장님의 말은 아니 백금을 쌓아놓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정신 나갔어요? 도둑맞으면 큰일 나요? 사자마자 바로가공해서 팝니다!


그럼 대출받고자 하는 담보물 재고자산 100톤은 뭐죠?


월간 상시적으로 쓰이는 백금량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재고자산의 담보물로 취급되기 위한 요건 중에 적치요건이 없었는지 은행에서 대출 가능하다고 호언장담했다는 것이지요. 황당한 건 은행 담당 직원이 실적 압박이 있었는지 경황을 따져 물으니 오히려 노발대발이었습니다. 어서 빨리 감정평가서 내놓으라면서 말이지요.


재무제표상 연간 1200톤가량의 백금 매입이 확인되고 공장 자체 장부 기록상 월간 100톤의 백금이 사용되었다는 증빙으로 100톤의 백금량의 가치를 평가해 달라는 것이었는데요.


어찌 되었건 재무제표와 제시 목록에 기초해 평가했다라는 단서를 감정평가서에 기재하고 감정평가하면 그만이지만, 평가조건 달지 말라는 깡패 같은 은행 담당 직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은행직원에게 ‘감정평가 불가’하다는 말과 함께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험한 말로 맞짱 뜨고 황당한 사건은 마무리되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꿈처럼 상상하곤 합니다. 백금 100톤이 내 눈앞에 쌓여 있는 광경을요.


다른 차원의 세계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