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란 무엇인가?
빈자든 아이든 공유하는 하늘은 모두 같다
2024년은 본연의 감정평가 업무를 시작하는 개인적인 변화가 있었던 해이기도 오랫동안 좋아했던 작가 폴오스터가 작고했던 해이기도 합니다.
감정평가사 시험을 합격한지 18년이 지낫지만 이제서야 진짜 감정평가사로 살게 된 것이지요.
누군가 ;신삥은 아닌 애매모호한 어쨌든 감정평가사임이 자명한; 저에게 감정평가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낮선 사람에게 말걸기와 같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마치 소설가 폴오스터가 소설을 통해 낮선 사람과 말을 거는 것처럼요.
대작가 폴오스터는 무명인인 양 낮선 사람에게 슬쩍 말을 시켜 글감의 소재를 찾곤 했다는데요.(장난꾸러기 기질이 다분하죠) 그의 산문집에서는 낮선 사람에게 말거는 비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낮선 사람에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도출해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아무리 낮선 사람이라도 날씨이야기를 한다면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그 다음 이야기는 술술 이어진다. 빈자든 아이든 공유하는 하늘은 모두 같기 때문이다 라고 합니다. [낮선 사람에게 말걸기, 산문집, 폴오스터]
MBTI가 ENTJ와 INTJ로 시시각각 변하는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요즘은 INTJ 성향을 고수하는 것 같습니다. 감정 평가를 하기 위한 낮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일이 설레임보다는 초조함이 앞서기 때문이지요.
감정평가는 수치와 숫자로 재단할 수 없는 많은 정보들이 부동산을 보유하고 살고 있는 사람의 경험치로 축적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등기부등본이나 건축물대장에 표기되지 않은 리모델링 비용이나 발코니 확장 등의 정보, 대지로 형질 변경을 하기 위해 소요된 비용, 최근 부동산 매물을 보러온 사람이 있었는지 얼마면 잘 팔릴 수 있는 가격인지 등 등 낮선 사람에게 말을 얼마나 잘 거느냐에 따라 감정평가사의 실력이 차이가 난다고 하는 말이 과언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내향형으로 살아가는 저에게 폴오스터의 충고는 동아줄 같을 때가 많았습니다. 날씨이야기 강박이라고 할까요? 오늘은 참 덥습니다. 비가 오는 날 찾아뵙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날씨가 흐려도 현장 조사하기에는 참 좋네요. 추운날 고생이 많으십니다.라는 날씨 인삿말을 낮선 사람을 대면하기 전 초조함을 걷어내기엔 괜찮은 주문이었던 셈이지요.
감정평가사로서 일한 지 어느덧 이십년이 되어 갑니다. 왜 감정평가사가 되었냐고 묻는다면, 제 대답은 사람과 가치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합니다. 처음 업무를 시작할 때는 서류와 숫자 속에서 급급하기 여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나서 보니 감정평가사의 일은 사람들의 삶 한복판에서 웃음과 눈물을 함께하며 가치를 찾아내는 일이었습니다.
신입 감정평가사로서 맞이한 첫 현장
신입 감정평가사로서 맞이한 첫 현장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는 헤프닝 투성이였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지도 한 장을 들고 시골 마을의 토지 감정평가를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내비게이션에 의존해 비포장 좁은 길로 접어들었다가 그만 논두렁에 바퀴가 빠질 뻔했고, 겨우 빠져나와 도착한 곳에서는 비슷한 지번 탓에 엉뚱한 땅을 한참 동안 살펴보고 말았습니다. 한참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하는데, 어디선가 “거기서 뭐 하는 거예요?“라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턱수염이 덥수룩한 농부 한 분이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고 있었죠.
알고 보니 제가 서 있던 곳은 의뢰받은 토지와 한 필지 차이인 옆집 농부의 밭이었습니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려 얼어붙은 저를 보며, 농부는 처음엔 수상쩍다는 듯 이것저것 캐물었습니다. 저는 식은땀을 흘리며 카메라와 서류 가방을 들고 얼른 사과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처음 와 보는 동네라 땅을 잘못 찾았네요. 감정평가사로서 토지를 평가하고 있었는데 지번을 혼동했나 봅니다.” 제 설명을 들은 농부는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경계심을 풀었습니다. 다행히도 큰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허허, 나도 처음 보는 젊은 사람이 우리 밭에서 서성대니 도둑인 줄 알았지!” 하고는 크게 웃으시는 겁니다.
그렇게 무안한 해프닝은 웃음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농부 아저씨는 직접 본인 밭이 아닌 의뢰받은 옆 밭을 가리키며 “저쪽이 말하는 그 땅일 게야”라며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덕분에 진짜 대상 토지를 찾을 수 있었지요. 헤어지기 전, 그분은 땀에 젖은 제 모습을 힐끔 보시더니 마당에 가서 시원한 물을 한 바가지 퍼 주셨습니다. 예상치 못한 환대에 당황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으로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던 기억이 납니다.
이 첫 현장 경험을 통해 저는 지도를 읽는 법뿐 아니라 현장에서 겸손하게 여쭙는 지혜도 배웠습니다. 신입으로서 잔뜩 주눅 들었던 저에게 농부의 너털웃음과 한 바가지 물은 큰 위로이자 배움이 되었습니다. 그날 저녁 사무실로 돌아와 선배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더니, 선배는 박장대소하며 “누구나 처음엔 실수하는 법이야. 다음부터는 마을 이장님이나 주민들께 먼저 물어보는 것도 좋아”라는 조언을 건넸습니다. 저는 웃음 속에 귀한 충고를 새기며, 실수도 자산으로 삼아 성장해 나가기로 다짐했습니다.
단순히 건물과 땅값을 계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삶의 이야기를 함께 마주하는 사람
몇 년 뒤 감정평가사로서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이번에는 도시 재개발 지역의 주택 감정평가를 맡게 되었습니다. 개발로 오래된 주택들이 철거될 예정이라 주민들에게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했지요. 현장에 도착하니 골목마다 이사 준비로 분주했고,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흔적들로 가득한 집들이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중 한 허름하지만 정감 어린 작은 집에서 백발의 할머니가 저를 맞이해 주셨습니다. 할머니는 처음엔 감정평가사라 소개한 저를 경계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셨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삶이 담긴 집이 헐값으로 평가될까 걱정이 많으셨겠지요.
저는 최대한 차분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인사드린 뒤, 집 안 구석구석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방 한 켠에는 오래된 흑백 가족 사진과 손때 묻은 가구들이 놓여 있었고, 벽에는 손주들이 그린 크레용 그림들이 붙어 있었습니다. 창틀엔 세월의 먼지가 앉아 있었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정원은 정갈하게 가꿔져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제 뒤를 천천히 따라다니며 때때로 설명을 덧붙이셨습니다. “저기 액자 속 아기가 우리 큰손주여. 이 방에서 첫걸음마도 뗐지. 마루에 난 저 자국 보이나? 30년 전에 지진 났을 때 금 간 건데 그냥 뒀어. 추억이라…” 할머니의 이야기는 집 구석구석에 깃든 추억과 정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감정평가를 위해 체크리스트를 따라 집의 구조와 상태를 살피고 있었지만, 마음 한켠으로는 그 추억의 무게를 느끼며 숙연해졌습니다.
집을 모두 둘러본 후, 저는 할머니께 감사 인사를 드리며 조심스레 말씀드렸습니다. “말씀해주신 사연들을 들으니 이 집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것 같습니다. 저도 최대한 할머님과 가족의 추억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공정하게 평가해 보겠습니다.” 할머니는 잠시 놀란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시더니, 이내 눈시울을 붉히며 제 손을 꼭 잡았습니다. “고맙네, 젊은 양반. 내 평생을 바친 집이라 마음이 쓰렸는데, 이렇게 알아줘서…” 그 순간, 감정평가사라는 일의 무게와 의의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건물과 땅값을 계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삶의 이야기를 함께 마주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오늘 날씨는? 맑음입니다.!
요즘 부동산 시장은 한마디로 ‘출렁이는 바다’ 같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거래가 활발하고 가격이 치솟던 지역이었는데, 이제는 썰물 빠지듯 빠르게 침체된 곳이 많아졌습니다. 금리 인상, 경기 침체, 인구 감소… 요인은 다양하지만, 현장을 다니다 보면 결국 시장의 변화는 사람들의 표정 속에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처음 감정평가사가 되었을 때만 해도, 부동산 가격이 오르기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현장조사를 갈 때마다 “요새 우리 동네도 값 올랐지?” 하며 으쓱해하던 주인들이 대부분이었지요.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주택 담보 대출 이자에 허덕이며 “이거 매도하면 손해보나요?“를 물어보는 사람들, 장기간 미분양으로 고민하는 소형 건설사 사장님들, 재개발을 기다리다 지친 노부부까지… 부동산은 여전히 ‘돈’이지만, 그 ‘돈’을 둘러싼 표정은 무겁고 복잡해졌습니다.
시장 상황이 바뀌어도, 제 업무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사람과 마주하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부동산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들의 꿈과 불안, 희망이 얽혀 있는 현실입니다. 감정평가사로서 저는 늘 공정하고 냉정해야 하지만, 동시에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변하는 시장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저는 오늘도 현장을 누빕니다.
데이터를 분석하고 수치를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에 선 순간마다 저는 늘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 숫자 속에 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보고 있는가?”
앞으로도 저는 끊임없이 배워나가며, 부동산 시장의 변화 속에서도 사람과 가치를 잊지 않는 감정평가사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요즘처럼 변동성이 큰 시대일수록, 한 장의 평가서가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작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조심스레, 그러나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의 가치를 기록해 나갑니다.
낮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일을 시작으로 말이지요. 오늘 날씨는? 맑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