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이야 Sep 02. 2021

구멍은 파는 것, 아니 메꾸는 것

책, 그리고 나의 이야기

루스 크라우스 글ㅣ 모리스 샌닥 그림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읽고 모리스 샌닥의 다른 책들도 빌려다 보고 있다. <구멍은 파는 것>은 루스 크라우스가 글을 쓰고 모리스 샌닥이 그림을 그린 책이다. '어린이의 시선을 담은 재밌는 낱말 책'이란 소제목처럼 갖가지 사물들을 아기자기 재미나게 풀었다. 하지만 오래된 그림책이라 그런 건지, 번역이 문제인 건지 몇몇 부자연스러운 부분들이 눈에 띈다. 루스 크라우스와 모리스 샌닥은 <아주아주 특별한 집>에서도 호흡을 맞추어 칼 데콧 명예상을 받았다.  



손은 꼭 잡는 것. 할 말이 있을 때 번쩍 드는 것. 구멍은 파는 것. :)
조약돌은 모아서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것. 아이들은 서로 사랑해.


오빠는 동생을 도와주는 사람?

이 부분에서 불쑥 마음이 불편해진다.






친정엄마는 4남매 중 둘째(딸--딸-아들)이다. 친정엄마 위로 큰 이모가 있지만 가장 먼저 결혼해 3남매(-아들-아들)를 낳았다. 3남매 중 첫째인 딸이 '나'이고, 그 뒤로 줄줄이 동생과 사촌들이 태어났다. 그렇게 나는 집에서도 외갓집에서도 맏이가 되었다.


지금은 왕래가 뜸해졌지만 어릴 때는 외가에 참 자주 모였던 것 같다. 방학 때면 이 집에서 며칠, 저 집에서 며칠씩 돌아가며 신나게 놀았다. 어느 날, 명절은 아니었지만 무슨 행사가 있었는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외삼촌 집에 모였다. "집에서 놀고 있으렴." 아이들은 집에 남고 어른들은 모두 외출하셨다. 내 나이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나와 열 살 터울의 사촌동생이 아기 변기를 쓰는 너댓 살 쯤이었으니 나는 열네 살쯤 되었을 것이다. 열네 살의 나와 열두 살 둘, 여덟 살 하나, 일곱 살 둘,  살 하나. 아이들은 그렇게 어울려 놀았다.


"잘 놀고 있었니?"

어른들이 돌아오셨다.

어찌나 뛰었는지 아이들은 땀범벅이었다.


"아이고! 똥도 안 치우고 뭐 했어?"

누군가 소리쳤다.

어른들의 시선이 똥에 한 번, 내게 한 번 꽂혔다.


거실 한 귀퉁이 아기 변기에 사촌동생이 싸 놓은 똥이 그대로 있었다. 누구도 내게 대놓고 뭐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눈이 모두 내게로 쏠렸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큰 잘못을 지은 아이마냥 얼굴이 빨개진 채 정처 없이 눈동자만 굴렸다. 고백건대 사촌동생이 똥을 싸 놓은 걸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저 치우기 싫었을 뿐이다. 치워야 하는데.. 치워야 하는데.. 하며 치우지 못했던 그 똥이 나도 몹시 불편했을 게다. 그때 이미 나는 맏이의 무게를 느끼며 크고 있었나 보다.


"왜 저를 쳐다보세요? 제가 싼 거 아닌데요?"라고 받아쳤어야 했는데. 아마 우리 둘째라면 충분히 그렇게 말했으리라. 첫째라면? 잘 모르겠다. 집에서였다면 맞받아쳤을 테고, 밖이었다면 나와 비슷한 반응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잘했어, 그깟 똥 좀 안 치우면

 어때! 니가 싼 똥도 아닌데."


그때의 나에게 외쳐준다. 죄책감이 통쾌함으로 바뀐다. 뻥 뚫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내 감정의 구멍이 조금씩 메꾸어진다. 나는 어린 날의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 내가 왜 삼십 년이나 지난 그날을 잊지 못하는 걸까. 그날 어른들은 나를 혼내지도, 비난하지도 않았다. 어찌 보면 정말 별 것 아닌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날 알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열 마디 말보다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것들을.


'구멍은 파는 것'이라 했나. 하지만 나의 '구멍은 메꾸는 것'이다. 오늘도 글을 쓰며 나의 감정, 나의 구멍을 빼꼼히 들여다보고 토닥토닥 메꾸어 본다.       



Photo by Valentin Lacoste on Unspl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