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40년 전. 엄마는 제 멋대로인 아빠의 막내 여동생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한 겨울 거실엔 난로가 피워져 있었고, 난로 위 주전자에는 물이 담겨 있었다. 얼마 후 물이 끓기 시작했다. 거실에는 다섯 살, 세 살의 남매가 뛰어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녀석이 펄펄 끓은 주전자를 건드렸다. 다섯 살 여자아이의 다리와 엉덩이에 뜨거운 물이 쏟아졌다.
나는 다섯 살 때 화상을 입었다. 엄마는 화상 입은 이유가 고모 때문이라 했다. 고모 때문에 아주 머리가 복잡해 주전자를 못 치웠다고 말이다. 화상 얘기가 나오면 "그 나쁜 년, 니 고모 때문에 너 화상 입은 거잖아." 그렇게 말씀하셨다. 고모, 엄마, 아빠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가 놀다 다친 거니까.
"아휴. 이거 상처 남겠다, 어떡하냐."
엄마가 넘어져 꿰맨 턱을 만지며 말했다.
"저는 평생 짧은 치마 한 번 못 입었어요."
엄마의 모습에 화가 나 쏘아붙였다.
엄마는 당황하셨고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엄마가 뜨거운 물을 부은 것도 아닌데 그러면 안돼.
하지만 아이가 어린데 위험요소를 방치한 거잖아.
그렇게 될 줄 알았겠어? 엄마도 미안하실 거야.
하지만 늘 고모 탓이잖아. 고모는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어.
나는 늘 혼자 되뇌었다.
그렇게 우리 관계는 늘 도돌이표였다.
나에게 가시가 없었다면?
조금 가까워지는 듯하다가도 가시를 드러내는 '나' 때문에 금세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가시 돋친 딸에게 찔릴까 봐 엄마는 선뜻 감싸주지 못했다. 그녀 역시 한없이 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가시 돋친 딸을 감싸주는 것보다 딸을, 고모를, 아버지를 비난하며 모면하는 것이 그녀에겐 더 안전하고 편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엄마와 나는 사이가 왜 이렇게 불편할까 늘 궁금했다. 자녀교육 책을 찾아 읽고, 심리상담을 받아도 늘 같은 자리였다. 화상 때문일 거라 어렴풋이 짐작했다. 억울한 마음에 뜨거운 물을 치우지 않은 엄마에게 화살을 돌리나 보다 라고. 최근 나의 초등학교 일기를 읽으면서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다. 어린 날의 나는 동생들과 차별당한다 느꼈다. 먼지털이개가 부러지도록 맞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사랑을 갈구했다. 예쁨 받고 싶어 온 에너지를 다 짜냈다. 아쉽게도 부모님은 표현에 참 인색했다. "그 시절엔 다 그랬어"라는 말로는 내게 부족하다. 그러나 그 부당함, 억울함 덕에 나는 이만큼 성장했고, 학대와 차별의 고리를 끊으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나에게 가시가 없었다면?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았다면? 살아온 습성 그대로 답습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의 초등학교 일기
나는 장미다.
엄마와의 관계를 계속 고민하고 되돌아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엄마의 허물을, 나의 컴플렉스를 드러내 좋을 게 뭐가 있다고 이렇게 오픈된 공간에 글을 쓰고 있는 것인가. 나와 비슷한 아픔을 겪은 이에게 위로받고, 또한 위로해주고 싶어서 아닐까.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이 껍데기를 부수고 나와야 한다고 외치는 게 아닐까. 어떻게 서든 이제라도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아닐까.
어머니를 향한 애달픈 사랑, 그 방향을 살짝 틀어보니 아버지가 보였다. 무직, 알코올 중독, 폭력성으로 온 가족을 힘들게 했던 아버지. 하지만 그런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 불편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버지는 가시 돋친 나를 감싸주었다. "나를 용서해다오" 사과하셨고 나를 보면 웃어주셨다.
어머니에게 나는 모난 돌이자, 가시 돋친 덤불이다.
아버지에게 나는 빛나는 수석이자, 향기로운 장미다.
모든 이에게서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아버지가 나를 예뻐했듯 어머니가 동생들을 예뻐한 것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유 없이 끌리는 사람이 있고,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사람이 있듯. 가족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가 하고 싶은 머리를 하고,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며 나를 위해 살 것이다. 이미 지난 과거의 사랑에 애달파하지 않고, 나의 남편과 아이들을 더 사랑할 것이다. 그리하여 언젠가 서로가 서로에게 주었던 그 상처들을 담담히 마주할 날이 오길.
부모를 미워하는 자식은 왜 마음이 아플까요? '죄책감'때문입니다. 많이 미워요. 하지만 미움만 있지 않아요. 그 안에는 사랑도 있어요. (중략) 어린 시절 부모에게 상처를 받았다면, 때로 어머니를, 아버지를 미워했던 적이 있다고 담담하고 솔직하게 고백하세요. 그러나 돌아보니 그런 마음만 있는 게 아니더라고. 부모님이 무슨 말을 해도 좋으니 그냥 곁에 살아 있어 주기만을 바라는 마음이 내 안에 분명히 있다고 말이에요.
이렇게 말하면 부모님이 뭐라고 하실까요? 가슴 아프지만 부모님이 이제 와서 진심 어린 사과를 할 거라고 기대하지 마세요. 대부분 사과하지 않습니다. 사과받는 데 매달리면 부모가 끝내 그 기대를 저버리고 떠날 경우에 더 큰 상처를 받을 겁니다. 지금 당신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자신의 오랜 아픔을 부모에게 털어놓는 그 시도 자체가 중요해요.
당신에게 부모와 상처에 대해 대화하라고 조언하는 것은, 그 자체가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해결해 보려는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당신의 말에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든 안 하든, 한 번쯤 속마음을 표현한다는 그 자체가 당신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p39
부모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도 알아야 하지만, 그 부모가 어떤 사람이기에 나에게 이런 상처를 주었는지도 알아야 해요. 그래야 마음의 짐을 좀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마음 깊이 '아, 이건 엄마라는 사람의 문제였구나, 나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던 거구나'를 느낄 수 있어요. 그래서 '내가 그렇게 사랑받지 못할 만큼 문제가 많거나 가치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구나'를 깨달아 갈 수 있습니다.
p62
- 오은영 <화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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