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부터 11월 중순까지 첫째가 목금, 둘째가 월화수 등교했다.등교일이 완벽하게 어긋나다 보니 매일 하루 세끼를 차려내야 했다. 온라인 수업하는 아이를 혼자 집에 두고 돌아다닐 성격도 못 되는지라 툴툴거리면서도 아이들 뒤치다꺼리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마침내 11월 22일부터 전면등교 확정. 여전히 코로나로 불안하기는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도 반가웠다.
"이 시간에 나 혼자라니! 너무 좋잖아."
평소라면 마흔 다섯 번은 들었을 "엄마", "엄마?","엄마!!!"
고요하고 평화로운 이 시간이 너무나 그리웠더랬다.
"이 시간에 나 혼자라니, 너무 허전해."
아무도 찾지 않는 나. 곧 미치게 외롭고 우울했다.
누구 엄마 누구 선생님도 아닌 그냥 '나'는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고, 지극히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혼자가 되자 그 시간을 버티기 힘들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내 시간을 즐기는 법조차 까먹었나 보다.
아이들 등교시키고 제일 먼저 한 일은 구직사이트 검색과 욕실 곰팡이 청소였다. 얼마나 기다리던 시간인데, 그 시간에 제일 먼저 한 일이 욕실 곰팡이 제거제 발라놓고 기다리며 잡코리O 검색이라니... 구직사이트를 전전하다 보니 우울감이 극에 달했다. 여력이 될 때까지 최대한 아이들을 돌보고 싶은 엄마인지라 풀타임 잡은 언감생심. 아이들 하교시간에 맞추어 두 시에 마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어찌 보면당연한결과다.
Photo by Markus Winkler / JESHOOTS.COM on Unsplash,
결혼 전 다니던 회사 사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 OO!!!" 까르르 웃으며 전화를 받아주는 팀장님(지금은 언니라 부른다). 나보다 세 살 많은 그녀는 나처럼 두 살 터울 형제의 엄마이기도 하다. 3~4년에 한 번씩 안부 전화하는 후배의 연락처를 지우지 않고 늘 반갑게 받아주는 팀장님은잠깐의 통화만으로도 힘이 되는, 그냥 이유없이 끌리는 그런 사람이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이 전부라 생각하던 시절, 나는 내 능력치보다 높은 직장에서 하루하루 겨우 버텨내고 있었다.반면 빛나는 업무능력에 인성까지 겸비한 그녀는 내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육아를 위해 퇴사를 결정했다. 그 후 2년여 만에 팀장님과 가진 점심식사 자리에서 나와 동료들이 그녀의 안부를 물었다. 잘 나가던 그녀를 내심 안타까워하며 말이다. 하지만 팀장님은 미소 지으며 담담히 말했다.
"꼭 그 길만 있는 게 아니더라고."
"언니 그때 그 한 마디가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수년이 지난 후 그녀에게 말했다.
"어머, OO! 내가 그랬어? 까르르"
그녀가 특유의 웃음으로 답했다.
정말 인생에는 한 가지 길만 있는 게 아니더라. 나와 맞지 않는 직장, 그리고 직업을 내려놓자 비로소 행복해졌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을 가르치며 내 마음 속 깊이 내재된 긴장과 불안을 치유했다. 나만 아이들을 키운 것이 아니다. 아이들 역시 나를 키워주었다. 그 아이들이 제법 컸고 서서히 독립할 시기가 다가온다. 누구 엄마가 아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내 나이 마흔 갑상선암에 걸렸을 때, 어린 아들들을 두고 내가 너무 일찍 세상을 저버릴까 봐무서웠다. 그러나 이젠,치매에 걸릴까 거동을 못 할까 두려워하는 노모를 지켜보며 내가 너무 오래 살까 봐 무섭다.
Photo by Kendall Scott on Unsplash
"자기야, 나 국민연금 15년 더 부어도 매달 100만 원도 못 받더라. 애들 다 키우면 여행 다니며 살고 싶은데 입에 풀칠도 못 하겠어."
"그걸 이제 알았어? 내가 얘기할 땐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만.그런데 왜 100만원이야. 내 연금도 있잖아."
최근 남편과의 대화 주제가 육아에서 노후로 바뀌었다.
1년 계약직 강사보다 안정적이고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보다 사서직에 관심이 생겼다. 도서관에서 일하면 좋겠다. 사서공무원이 되면 더 좋겠다. 사서 관련 도서를 대출하고, 관련 카페에 가입하고, 9급 공무원 시험문제를 풀어보았다. 브런치 검색해보니 사서직 작가분들도 꽤 많다.
5년 후면 쉰, 15년 후면 예순.
그때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 당장 챙겨야 할 끼니가 아닌 15년 후의 밥상. 다음 달 아이들 학원 플랜이 아닌 15년 후의 내 인생 계획. 아이들과 24시간 함께일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코로나 때문에 매일이 불안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등교하면서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음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