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5. X-68-90
------------------------------------------------------------------------------------------------------------------------------------------------------------------------------------------------------------------------------------------------------
늘 「실락원」부터 먼저 들었다. 이펙터를 쓴 (먹먹한 느낌의) 리듬 기타 연주에 이상문의 재즈 베이스 연주가 슬며시 틈입한다. 김태윤의 섬세한 스네어 드럼(과 하이햇 연주) 연주가 이어지는 인트로와 벌스(Verse)를 지나 훅에 들어서자, 리듬 기타는 (클린 톤으로 바뀌면서) 메이저 코드를 스트로크 주법으로 연주한다. 이석원의 속삭이는 보컬 또한 훅에서 목소리를 돋웠다. 훅이 끝나자마자 곡은 이내 인트로의 그 ‘꿍’한 사운드로 돌아온다. 기실 앨범 전체가 이렇다. 밝은 부분의 연주는 퍽 어설픈데, 어두운 부분은 묘하게 능숙한 연주를 구사한다.
이 앨범이 ‘완벽’한 앨범인지는 여전히 의뭉스럽다. 그러나 이 앨범이 많은 외면을 받을 만한 앨범이었는지도 의뭉스럽다. 이 앨범이 (나중에서야) 대중의 재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다. 이 앨범에 참여한 밴드 멤버들이 적어도 자신들이 표현하고 싶은 부분만큼은 (지극히 훌륭한 실력으로) 연주했다는 게 제일 큰 이유다.
델리 스파이스(Deli Spice)의 윤준호가 ‘주노 3000’이라는 이름으로 베이스 연주를 맡은 「어제 만난 슈팅스타」는 이 앨범을 만든 이들이 얼마나 뛰어난 연주력을 지녔는지를 새삼 일깨운다. 이석원과 정대욱의 기타 연주는 이 곡에 (기타 ‘팝’을 벗어나지 않는) 속도감이 풍부한 속주를 되도록 많이 집어넣으며, 곡 특유의 황홀한 청승을 구현했다. 김태윤의 드럼 연주는 곡의 속도감에 눌리지 않으면서도 타점이 정확한 드러밍으로 곡의 비트를 챙겼다. 「청승고백」에서 우울한 정서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이들의 후반부 (거의 잼에 가까운) 연주는 (이 앨범의 전체 사운드와 조화를 이루면서) 곡 자체가 지닌 신선한 미감 또한 미진함 없이 표현했다.
이 앨범이 (3곡의 연주곡이나, 몇몇 부분에 드러난) 날렵한 톤으로 경제적인 표현을 구사한 사운드로만 채워졌다면, 이 앨범이 함유한 감성은 설득력을 잃었으리라. 앨범의 훌륭한 곡 중 하나인 「어떤날」은 (훗날의 거장으로 성장할) 정재일의 서정적인 키보드 연주부터가 일품인 곡이었지만, 이들이 구현한 사운드는 굳이 그걸 뽐내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 곡의 미감을 투박하다고 하겠지만, 이러한 톤이야말로 그 당시의 이들이 자신들의 곡을 자연스레 펼칠 수 있었던 톤이 아니었을까. 돌이켜보면 이 앨범의 곡은 되려 깔끔한 사운드가 아닐 때, 되레 예상치못한 정조를 드러냈다. 「무명택시」나 「꿈의팝송」 같은 곡은 이 앨범의 ‘톤’ 덕분에 지나치게 들뜬 사운드를 가라앉히며, 지금 여기에 발 디뎠다. 이 앨범은 섬세함과 투박함이 나름의 중용을 이룩한 앨범이었다. 우리 모두 고개를 숙이고 다닐 수밖에 없었던 1998년에, 이 앨범은 (그 중용을 바탕삼아) 치솟는 사랑과 서정을 노래했다.
(후주 부분의 요상한 구령이 인상적인) 「유리」에서 이석원의 보컬과 대등하게 활약하는 정대욱의 기타 연주는 이들이 ‘치열한’ 레코딩을 거듭했다는 사실을 암시했다. 이 앨범에 대한 대중의 외면 때문에 이 (분열에 가까운) ‘치열함’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이 앨범은 만든 멤버들은 결국 산산이 흩어졌다. 훗날 이석원이 이능룡과 전대정을 데리고 함께 만든 『가장 보통의 존재』(2008)의 눅눅한 사운드는 기실 이 앨범의 먹먹한 사운드에서 출발한 사운드였다. (이 앨범의 톤이 실은 의도된 것이었다고 『가장 보통의 존재』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이들의 모든 앨범은 각자가 서로의 오해를 풀어준다. 이는 이들의 축복일까. 아니면 저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