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7. 0-0-64
공일오비의 음악은 이 앨범을 기점으로 많이 달라졌다. 프로그래시브 록, 인터스트리얼, 록, 모던록, 재즈, 레게, 두왑, 힙합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를 거침없이 탐구하기 시작한 4집 이후의 음반은 기실 이 앨범의 방향 전환과 (소위 ‘모던화’를 시도하는) 표현 양식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1,2집으로 절대 돌아가지 않았다.
간단한 전주를 길게 늘인(차라리 하우스와 프로그레시브 록의 영향을 언급할 수 있는) 「아주 오래된 연인들」의 심플한 인트로는 공일오비의 음악이 본격적으로 ‘블록화’가 되었음을 차근차근 청자에게 알린다. (장호일의 와우 페달을 단 기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악기를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나 시퀸서로 편곡한 이 곡은 빠른 BPM의 하우스 비트를 채용하면서도 각종 소스를 배치하는 방식을 청자에게 차근차근 일러준다. 객원보컬인 김태우의 보컬은 (약간의 패러디처럼 느껴지는) 두왑 스타일의 코러스와 가볍게 맞물린다. 기존의 공일오비가 다루지 않았던 어떤 산뜻한 가벼움이, 이 곡의 차근차근한 권태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공일오비는 이 앨범에서 자신들의 곡에 보다 입체적으로 접근한다.
「수필과 자동차」의 단단한 레게리듬과 문명 비판적인 가사는 그 자체로도 이색적인 미감을 발휘하고, 윤종신과 박선주의 듀엣곡인 「우리 이렇게 스쳐보내면」은 피아노와 키보드를 중심으로 한 미니멀한 편곡으로 인해 둘의 다이내믹한 멜로디가 더욱 직접적으로 들린다.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의 음악적 성격을 이어받은 「다음 세상을 기약하며」는 비트를 강조하는 편곡 덕분에 많은 메시지가 들었는데도 쉬이 들을 수 있다. 윤종신의 성격이 다른 보컬을 느낄 수 있는 「현대여성」의 리듬 중심의 편곡이나, 「5월 12일」의 복잡한 후반부, 「널 기다리며」의 긴 후주조차도 새로운 감흥을 자아낸다. (「敵 녹색인생」의 구음과 몸에서 나는 소리를 주 멜로디와 더불어 선명하게 녹음하는 일은 정말이지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테다.) 이러한 점이 앨범 곳곳에 골고루 깃든 덕분에, 이 앨범은 새로운 미감과 구성의 묘미가 한층 돋보이는 작업물로 거듭났다. 해당 장르의 음악을 콘셉트와 더불어 풀어내는 이들의 (이론적인) 완벽주의와 자신들의 작업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이를 실현할 수 없었으리라.
앨범의 유일한 연주곡이자 걸작 중 하나인 「Santa · Fe」는 색소폰 주자로 참여한 이정식의 솔로가 탁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장호일과 정석원과 조형곤의 긴밀한 플레이가 일품인 곡이다. 이 곡의 연주는 그들이 공일오비라는 ‘밴드’를 어필하기 위해 객원가수 시스템을 채택했다는 사실에 굳건한 설득력을 부여한다.
가장 전위적인 곡인「먼지낀 세상엔」은 잃어버린 순수에 대한 앨범 전체의 아쉬움을 종합하여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 앨범의 ‘말’은 (심의가 이 앨범의 말을 ‘추상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디테일이 풍부하지만, ‘메시지’에 구태여 힘을 주지 않는다. 이 앨범은 그리하여 어느 순간 ‘말’에서도 문득 자유로워지며, 한없이 가벼워진다. 사전 심의 때문만으로 이런 방식을 택한 건 분명히 아니리라. 생각 없이 들으면 많이 놓치는데, 주의 깊게 들으면 함정에 빠진다. 이 흥미로운 ‘어프로치’가 앨범을 일종의 ‘지적 게임’으로 만든다. 근데 들을수록 자꾸 지는 느낌이다. 연거푸 지는데도 뭔가 속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정말 무서운 ‘팝’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