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결」을 들을 때마다 팔뚝을 괜스레 쓰다듬는다. 노래에 담긴 사랑은 순진하기 이를 데 없다. 기억과 인생에 대한 고찰이 담긴 「잊혀지는 것」은 풋풋한 조숙함이 느껴지며,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은 상대 없는 사랑에 번민하는 마음을 너무나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앨범은 그 모습이 모두 동물원이라는 점을 일컫는 듯하다. 「거리에서」의 슬픔과 「무전여행」의 낭만 사이에서도 머뭇거리던 이들은 김창완의 도움을 받으며, 하나둘 연주자를 모집하면서, 이 앨범을 만들었다. 곡은 이미 많이 만들었기 때문에 이들은 어떤 곡을 앨범에 실을지 스스로 결정하여 선곡했다. 여태까지 이름조차 없던 이들은 ‘동물원’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채로 (일종의 사회화를 거치며) 세상에 나왔다. ‘동물원’이라는 이름에 대한 각자의 해석조차도 달랐던 이들은 말 그대로 이곳저곳에서 모인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이들이 어떤 목적의식을 가지거나, 사명감을 느끼고 있었을 리가 없었다. 이 앨범 또한 단순히 기념음반의 성격을 분명히 한다.
그래서일까. 이들의 음악은 이들을 정말 쏙 빼닮은 듯하다. 「지붕위의 별」의 건반과 어쿠스틱 기타가 어우러지는 대목에서 자기 생각이 재미있을지 모른다고 말하는 대목이나, (김창완이 드럼머신으로 만든 리듬 파트가 제법 인상적인) 「귀 기울여요」의 ‘최선을 다한’ 하모니는 이들이 정말 자신들이 만든 음악을 온 정성을 다해 불렀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열악한 사정으로 인해 보컬에 리버브를 거의 걸지 않은 이 앨범의 보컬 사운드는 의도치 않게 그 ‘정성’이 흩어지지 않게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더 좋은 환경에서 녹음한 음악이 더 나은 음악이 나올 확률 또한 높다. 이 앨범의 열악한 조건은 김창완의 ‘배려’가 아니었던들, 누추해지고 말았으리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화려하지 않지만 누추하지도 않은 사운드의 이 앨범은 바로 그 점을 덕분에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생각한다.
이 앨범의 표현 또한 이들의 순진함을 닮아 전형성이 전혀 읽히지 않는다. 아니, 전형적인 클리셰를 서투르게 다룬다. 프로를 의식하고 만든 (김광석의 보컬이 지닌 바이브레이션이 해당 곡의 부족한 보컬 리버브를 대신한) 「거리에서」는 해당 곡이 지닌 소박한 사운드 덕분에 좀 더 귀 기울여 듣는 매력을 발휘하며, 「변해가네」를 부르는 박기영의 목소리는 어눌한 어투로 자신의 소신을 끝까지 표현했기에, 되려 그 성찰이 진솔하게 느껴진다. 「어느하루」의 밝은 목소리는 스쳐 지나가는 것과 떠나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도리어 밝은 목소리로 표현했기에 더 서글프다. 「그리움」조차도 전형적으로 부르지 않는 김창기의 목소리까지 듣노라면, 이들이 만든 노래는 시대적인 자기 검열과 상업적인 자기 검열에 그렇게까지 많이 얽매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순수하기엔 너무 자랐고, 때가 묻었다기엔 너무나 순진한 이 앨범의 곡은 의도치 않게 기존의 한국 대중음악이 남발한 화자의 구도와 열애의 포즈를 묵은 내복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엄숙함이 느껴지는 (그러나 마지막 곡으로 적당한) 「여기서 우리」와 같은 ‘단체곡’의 정돈된 피날레마저도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소화하고 있으니까.
잘하는 대목에선 힘차게 노래 부르고, 못하는 부분은 지나치게 어색하게 부르는 이 앨범의 숫기 없는 노래를 들으며, 내가 입은 옷이 성기고 불편하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이 앨범의 (지나치게) ‘엄숙한’ 결론은 그게 결국 사회라는 점을 넌지시 일러주는 듯하다. 이 앨범의 철창이 시대의 철창 만을 일컫는 게 아니기에, 이 앨범은 오늘도 갇힌 우리들과 공명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