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9. 8-22-35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가을)」는 가을이라는 부제가 붙었음에도 연주곡이 아니다. 김종진의 어눌한 보컬을 지그시 받쳐주는 송홍섭의 베이스 연주는 ‘고급’스럽다. 이 곡의 신디사이저 편곡은 곡이 지닌 사색적인 성격에 복잡한 감정을 부여한다. 방황과 한탄 속에 있는 멜로디는 이와 같은 연주로 인해 복잡하고도 독특한 번민의 분위기를 획득했다.
이 앨범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LP 기준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콘셉트에 충실한 편곡과 사운드를 들려준다. 이 앨범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연주곡과 노래가 같은 위치에 놓여있다는 그들의 겸손한 제언도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리라. (몇 차례 흥미로운 시도가 있었지만,) 노래의 반주에만 머무르는 연주와 연주자의 ‘타성’을 이 앨범은 앨범의 ‘표제음악’으로 타파하려 했다.
그래서 이 앨범의 노래 또한 흥미롭지만, 베이스 5현의 저음을 적극 활용하는 (이 앨범의 디렉터로 활약하며 이 앨범 사운드의 밑그림을 그린) 송홍섭의 힘찬 베이스 연주가 인상적인 (라틴 팝의 성향도 있는) 「거리의 악사(여름)」가 이 앨범의 베스트 트랙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김종진의 기타가 황수권과 한충완의 피아노와 신디사이저가 어우러지는 대목도 훌륭하거니와 비트감을 충분히 살리며, 심벌 사운드까지 정교한 전태관의 드러밍 또한 이 곡에서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이 앨범의 ‘연주곡’은 연주 자체에 대한 그 당시 대중의 고정관념에도 정면으로 도전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봄)」은 곡 중간에 실제 퍼커션 연주와 베이스 솔로 연주를 담으며 현장감을 살린 대목이나 「12월 31일(겨울)」에서 베이스와 더불어 김종진의 기타 연주가 지닌 필링이 지닌 ‘날 것’의 힘은 분명 진취적인 뉘앙스를 품고 있었다. (영향이 분명한) 화려함으로 시작하여 (개인적인) 몰입으로 끝을 맺는, 이 앨범의 연주곡은 (시간에 쫓겨 이 앨범을 만들었기에 이들은 이 앨범의 사운드에 만족하지 못했지만.) 이들의 집중력과 기세를 청자에게 비교적 확실히 어필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놀랍게도 김종진의 보컬은 생각보다 이 앨범의 곡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가을)」만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유재하를 기리는 추모곡인) 「보고 싶은 친구」는 김종진의 (프레이징을 살린) 담담한 보컬이 되려 곡의 무드와 우수를 살리고, 「내가 걷는 길」에 살짝 리버브를 건 김종진의 보컬은 고독과 방황 속에 지친 사람의 감정을 적확하게 표현한다. (훗날 발표한 「어떤 이의 꿈」의 예고편처럼 들리는) 「혼자 걷는 너의 뒷모습」에서도 김종진 보컬 특유의 딜리버리는 멜로디에 독특한 질감을 부여한다. 한숨을 입에 달고 사는 모놀로그로 들리는 그이의 보컬은 이 앨범의 화려함에 수더분한 고독을 부여한다. 기존의 한국 대중음악이 고독을 표현할 때 무턱대고 쓰던 과도한 파토스를 줄이고 지적이고도 음악적인 기율에 따른 표현으로 고독을 다루는 이들의 어프로치는 이들이 테크닉을 바탕으로 특유의 감정을 창안하는 ‘뮤지션’이라는 사실을 비교적 설득력 있게 강조한다.
연주곡이 섬세한 노래처럼 들리고 보컬이 부르는 멜로디가 일종의 베이스 멜로디 라인처럼 들리는 이 앨범은 그 당시의 연주에 대한 개념을 향해 던진 (능숙한 자신감과 예기치 못한 소박함도 담긴) 노란 도전장이었다. 우리의 ‘연주’는 이 도전 이후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