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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MIN Dec 22. 2024

『어떤날Ⅱ』

Part 9. 6-11-20

  어디로 떠나는 것일까. 이 앨범은 분명 외로움을 만나고 그리움을 찾겠다고 일종의 포부를 밝힌다. 그러나 어느 순간 찾고자 하는 것이나 떠나는 이유가 끝내 사라진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목적을 잃고 목적지를 잃은 이 앨범의 곡은 그래서 특유의 따듯함을 유지하는 듯싶다가도 더할 나위 없이 서늘하다. 「출발」의 과거를 떠올리면서 짓던 ‘멍한 웃음’이 「11월 그 저녁에」의 어딘가 눈치를 보는 ‘어설픈 웃음’으로 바뀌는 모습을 앨범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앨범의 가장 좋은 곡이자 메이저 코드로 일관한 「그런 날에는」 또한 약간의 한숨이 들어있다.       


  확실히 이 앨범의 사운드는 전작의 사운드에 비해서 훨씬 매끈하고 날렵하다. 「소녀여」나 「하루」를 수놓는 세련한 사운드는 이 앨범이 전작의 스탠스와 다른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는 사실을 청자에게 확실히 알려준다. 하지만 「소녀여」에서 ‘보랏빛 바다’의 사랑과 (그이가 만든 조어처럼 들리는)‘사릇한’ 눈송이의 밤을 이야기하는 이병우의 표현은 여전히 돋보이고, 「하루」의 조동익의 상쾌한 프레이징을 충실히 뒷받침하는 리드미컬하고 탄탄한 리듬 구조와 편곡의 촘촘함은 이 앨범이 전작을 만든 이들의 작품이라는 점을 확실히 인증한다.     


  한 편으로 이 앨범은 「11월 그 저녁에」에서 친구의 흐느끼는 소리를 담담히 ‘이야기’하며, 「초생달」엔 ‘뜻 모를 너의 얘기’를 언급한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이 앨범의 사운드는 리얼 악기 사운드 또한 많이 사용한다. 임정희의 오보에 연주는 「취중독백」의 인트로와 간주의 아리랑을 연주하기도 하고, 거의 기타 하나로만 편곡한 「11월 그 저녁에」의 두 번째 벌스의 보컬 멜로디를 보충하기도 한다. (물론 이병우의 헛헛한 보컬이 마지막 ‘독백’을 부르는 대목에선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임인건의 피아노 연주는 「취중독백」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재즈 연주 파트를 충만한 스윙감으로 채웠다. 전작에서는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두 사람이 거의 모든 걸 꾸렸지만, 이 앨범은 거의 곡마다 게스트 세션을 달리한다.


  전작의 「하늘」과 마찬가지로 조동익이 작사하고, 이병우가 작곡한 「덧없는 계절」의 후주에 깔리는 기타 연주는 이 앨범이 그래도 미소를 잃지 않았음을 넌지시 강조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아름다움 또한 깔끔하기 이를 데 없어서, 되려 듣는 내내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뭔가 놓치고 있다는 기분까지 들 정도로 매끄럽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취중독백」의 말은 정확히 앨범의 나머지 곡들과 반대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풍자적인 어투의 표현을 독백으로 말하는 보컬은 이 앨범이 미처 다루지 않았던 영역을 표현한다. 이를 마이너 코드와 재즈 화성에 각각 나누어 담아 연주하는 이 곡은 이 앨범의 매끄러움이 맹목적이거나 충동적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이 곡 또한 생각의 깊이를 더하는 데까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낼 뿐이다. 자기가 아는 것만 이야기하는 이들의 음악은 이 앨범의 모든 곡에서도 그대로 지켜졌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추억하는 이 앨범은 모든 게 덧없다고 느낄 때마다 따사로운 햇살을 청자에게 드리운다. 또한 모든 추억을 회상할 때마다 결국 인생은 혼자라며 짙은 그림자가 섞인 묵상을 청자에게 건네준다. 이 앨범만을 벗 삼아 걷는 인생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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