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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의 피로

2월 24일

by GIMIN

코로나로 인해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 상태로 새해를 맞는 일은 힘겨웠다. 거리는 한적했고, 세상은 마치 부연 안개가 덧씌워진 듯했다.


지금도 벗지 못하는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는 길에, 나는 내 귓바퀴가 짓물렀다. 맨날 귀에다 마스크를 걸고 나가는 바람에 생긴 상처였다.


풀 죽은 사람처럼 시들시들하고 있을 때 인터넷에서는 사람들이 붐볐다. 어딜 가든 사람들이 거기 있었지만, 내가 얻은 것은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마주 대하며 느끼는 대화가 그립다는 사실뿐이었다.


죽은 사람들은 숫자와 기사 속에서 애매했지만, 당장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구체적이었다. 코로나는 중간이 없었다.


이따금 흉흉한 소식과 따듯한 소식을 들었지만, 언젠가 희망이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지금 당장은 막았지만, 앞으로 더 어떻게 될까.


분노도 희망도 모래성처럼 퍼졌을 때 나는 책을 읽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말한 사람은 반만 맞고 반은 틀렸다. 견물생심이라 했던가. 길을 떠나는 사람의 글을 읽으며 나는 문득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마침내 백신을 맞고 나서야 나는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그러나 어딜 갈 것인가.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 나는 걷는 방식을 퇴화한 사람처럼 덩그러니 집 안에 있었다.


피가 돌지 않아 따끔따끔한 다리에 점점 피가 돌고 따끔거림이 잦아들 듯, 걸음은 내가 디디는 곳에서 다시 돌았다. 아직도 병은 완전히 물러가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있다. 백신은 세 번 맞은 이후에 약간 앓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코로나에 있었던 일을 잊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처럼 보였다. 하긴 누가 그 시절을 좋아하겠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이없는 방식으로 죽어나가는 모습을 가슴에 대못처럼 박은 사람들이 오늘도 살기 위해 길거리를 걷는 모습을 보면 침울해진다.


이 피로에도 길과 희망은 있을까. 밥 딜런은 바람 속에 답이 있는 가사를 멜로디에 실어 노래 불렀고, 루쉰은 자신의 단편소설「고향」의 말미에 희망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가 생기는 일종의 길이라고 말했다. 나보다 더 피로했고, 외로웠던 사람의 말이기에 나는 수긍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가두는 게 좋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세상은 가끔 우리를 너무 자유롭게 풀어놓는다는 생각 또한 든다. 봄 기운이 몰려올 때면 이 피로도 얼음 녹듯 녹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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