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붉은 벽돌담 위의 뮤지션』 관람기
10월 13일
대학로 바탕골 소극장에 어린이 연극을 자주 보러 갔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아도 장면은 기억난다. 광대 옷을 입은 여배우가 쟁반만 한 크기의 양식화된 달을 껴안는 장면은 내 기억 속에 어떤 원형으로 자리 잡았다.
시간이 지나 대학로라는 곳을 자주 들락날락하지 않게 되었을 무렵, 그 근처에서 열리는 백일장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장소는 마로니에 공원이었고, 나를 비롯한 중, 고등학생들이 자신의 실력을 뽐내거나, 대학 입학 시에 필요한 ‘추천’을 얻기 위해 참여했다. 의외로 적은 사람들이 전자를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후자를 택한 것 같았다. 사실 나도 그랬다.
백일장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특별 공연을 봤다. 내 뒤편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윤효상 씨였다. 그는 관객들과 드잡이 하듯이 호객을 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집중력이 그리 좋지 않았던 나는 어느새 공연은 뒷전으로 하고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홀린 어린애 마냥 그를 좇아 대학로 길거리로 나갔다.
그가 벽돌 난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부른 「어쩌다 마주친 그대」를 듣고, 나는 그 곡만을 기억했다. (그게 송골매의 곡이라는 걸 나는 나중에 알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대중들을 보던 그 시선, 진지한데도 불구하고 재치를 잃지 않는 묘한 포지셔닝, 입으로 키보드 파트를 부르는 그의 재치, 관객들에게 호소하는 스테이지 매너(?). 아티스트는 광대이기 때문에 더 존중받아야 한다고 훗날 아는 선배가 조언을 해준 기억이 났지만, 나는 이미 그 사실을 그날 체득했다. 나는 그저 손이 아프도록 손뼉 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상이나 대학 특례같은 하찮은 일은 저멀리 던진 지 오래였다.
백일장을 마치고 오는 길에 엄마는 나를 데리고 근처 TGIF에 들렀다. 엄마는 스테이크를 사줬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그 스테이크가 격려의 포상과 질책의 대가가 절묘하게 합쳐진 음식이라는 것을 겨우 눈치챘지만, 적어도 그 때는 그날 쓴 글보다 그분의 퍼포먼스가 더 즐거웠던 나는 눈치보지 않고 그 한 접시를 해치웠다.
붉은 벽돌이 깔린 벽돌을 볼 때마다 나는 그날 그가 두드렸던 통기타를 떠올린다. 지판을 훑는 그의 손과 관객들(?)을 바라보는 진지한 눈빛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