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
왜, 굳이 '경찰국'이어야만 하나
[월간 <치안 문제> 기고글]
행안부가 '경찰국'이라는 이름의 경찰 통제기구 설치에 관한 최종안을 오늘(7.15.) 발표했습니다. 여전히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물음표들을 뒤로한 채, 경찰 조직의 운명은 정부의 입김 앞에서 언제 꺼질지 모르게 껌벅거리며 나부끼는 촛불처럼 위태롭게 느껴집니다. 지금의 민주경찰의 근간이 된 민주주의는 독재정권 시대에 무고한 시민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너무나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이 땅에 뿌리내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인데, 행여 뼈아픈 역사가 다시 반복될까 심히 우려가 앞섭니다.
과거 내무부 산하 치안본부 소속의 경찰은 부정선거 개입은 물론 남영동 대공분실을 만들어 인권 탄압을 자행했습니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계기로 거국적으로 일어난 민주화 운동에 힘입어 1991년 경찰법 제정을 통해 치안본부에서 독립된 외청인 경찰청으로 분리되어 나오면서 정부조직법상 내무부장관의 치안 업무 권한이 삭제되고 대신 경찰행정 심의ㆍ의결 기구인 '국가경찰위원회'가 설치되었습니다. 비록 현실적으로는 자문기구 정도의 상징적인 역할밖에 수행하지 못했지만 입법 취지에 맞게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경찰 조직을 견제하려면 형식상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이 '국가경찰위원회'를 실질화하면 될 것을, 행안부는 굳이 대한민국 역사에 오점을 남긴 것과 유사한 시스템을, 사전에 충분한 검토나 의견 수렴의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시한까지 정해놓고 통보하듯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태도로 더욱 일선 경찰관들의 불안감과 반발심만 키웠습니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권 조정으로 인해 비대해진 경찰 권한을 통제한다는 게 명분인 것 같은데, 현재 경찰 수장인 경찰 청장은 고작해야 차관급입니다. 여기에 검찰을 들먹이며 검찰청도 법무부 산하에서 통제를 받고 있다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검찰청이 법무부를 통제하면 모를까요. 비단 법무부뿐만 아니라 노골적으로 검찰 출신 인사들이 현 정부 요직에 등용되고 있어 항간에는 '검찰공화국', '만사檢통'이라는 말이 떠돌 정도니까요.
어쨌거나, 경찰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정권의 직접 통제가 아닌, 민주적 방식의 통제여야 합니다. 권력의 직접 개입은 오히려 철저히 배제되어야 마땅합니다. 지금 행안부가 추진하려는 것은 독재정권 시대로의 회귀, 경찰 장악에 불과합니다. 이에 경찰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경찰서 직장협의회 입장문, 성명서, 1인 시위, 단식, 삭발 등 민주주의와 민주경찰 수호를 염원하는 마음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바람 앞의 위태로운 촛불이 아닌, 국가의 위험을 알리는 봉수대의 드높은 횃불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뜻이 경찰 통제를 향한 무모하고 위험한 질주에 켜진 적색 신호등이 되어 부디 무고하고 선량한 국민들을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