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점심에 다섯 살 큰딸인 지유의 친구 집에서 김밥을 말아 친구들을 초대해서 김밥 파티를 하고연이어 다른 친구 집에서 저녁까지 먹고 온 이후 컨디션이 안 좋아진 지유 동생 지민이가혹시 또 자다가 새벽에 침대에서 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애들을 거실로 데리고 나와 이부자리를 펼쳤다. 이미 지쳐 일찍 잠에 든 지민이와 달리 노는 양이 부족했는지 잠자리에서 놀잇감을 가지고 노는 지유. 그런데,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낯선 장난감이 눈에 들어왔다.
출처를 물으니 김밥 파티를 했던 리우네 집에서 가져왔다는 지유. 다시 주인에게 돌려주자고 하니 친구에게 말 안 하면 안 되냐고 오히려 내게 되묻는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졌다가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많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밀물처럼 밀려왔다.
물론 친구 장난감이 탐날 수는 있지만 친구에게 "빌려줘"도 엄마에게 "사주세요"도 아닌 '몰래 가져오기'를 선택하다니. 우리는 나름대로 아이에게 허용적인 부모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다섯 살 아이가 남의 물건을 충동적으로 가져올 수 있다고 치더라도 그 이후에 이미 친구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는 것 자체가 본인의 행동이 떳떳하지 못한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일 텐데, 이리도 당당하게 반환 거부 의사를 밝히다니. 심지어 유치원에서 매일 보는 친구인데.
일단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 친구 어머니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심심한 사과와 함께 지유가 가져온 장난감의 구매처를 물어 작은 책은 레고 프렌즈 시리즈 부속 중 하나라는 것과 정체불명의 동물은 레인보우 유니콘 시리즈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 두 조합을 재현하기 위한 예상지출액이 생각보다 너무 커져버려서 당황한 가운데, 리우 엄마도 사실 그냥 가지라고 주고 싶은데 교육상 돌려받는 게 맞는 것 같다며어제 리우에게 집에서 지유와 함께 놀았던 장난감 리스트를 물어 지유가 흥미 있어했던 것으로 골라 친히 우리 집으로 로켓 배송을 보내주었다.
고마운 마음에 집에 뜯지 않고 박스채로 보관 중인 우주 무드등이 있어서 급한 대로 포장지로 포장하고 돌려줄 장난감도 아이가 직접 나름대로 정성스레 포장하여 선물상자에 담아 리우 집으로 향했다. 혹시 리우가 부재중이면 문 앞에 놓고 가려했는데 전화해보니 리우가 집에 있다고 하여 딸아이가 직접 사과도 하고 장난감도 돌려주었다.
지유에게는 남의 것을 허락 없이 가져왔다는 사실보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용기'에 초점을 맞추어 두 엄마가 폭풍 칭찬을 해주었더니 아주 으쓱해져서 신난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고의든 과실이든 잘못은 할 수 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기 세계에 갇힌 옹졸하고 비겁한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솔직히 말해 이것은 어른들도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이가 많고,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것과 별개로. 사실 한 나라의 대통령도 못하는 일이니까(!)
오후에는 친정아버지 생신 겸 친정 식구들을 초대하여 지민이는 남편이랑 집에서 쉬게 하고 지유만 데리고 나와 케이크도 사고 미역국 재료와 구이용 소고기, 쌈채소, 과일, 음료수 등 장을 보고 간단히 상을 차려서 집에서 생신파티도 했다.
친구들, 가족들과 알차고 보람된 주말을 보낸 지유.지유도 어린 나이에 나름대로 사회생활을 겪으며외면뿐 아니라 내적으로도 많이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 덕분에 나도 어른으로서 내면이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