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와 향기 사이

by 모사

늙으신 어머니의 향기, 문순태


물로 칼칼하게 씻은 듯 흙이 묻지 않은 호미 날 쪽에 불긋불긋 녹이 슬어 있었다. 예전에 어머니는 농사꾼 집에서 호미나 낫 등 농기구에 쇠꽃이 피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곤 했었다.

손때 먹은 자루에서는 시지근한 땀 냄새가 났고 녹슨 날에서는 비릿한 녹내가 났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오랫동안 간직해온 보따리에서는 고리고리한 새우젓국 냄새를 비롯해서 짭조름한 간고등어 냄새, 시큼한 쇠꽃 냄새, 비리척지근한 멸치 냄새가 한데 어우러져 참으로 묘한 냄새를 만들고 있었다. 여러 가지 냄새들은 저마다의 색깔로 치장을 하고 소리를 내며 꿈틀대는 것 같았다. 그 냄새들이 아우성치며 내 뼛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냄새는 타오르는 불꽃처럼 따뜻하게 나를 감쌌다. 나는 그 냄새의 한 부분이라도 되는 것처럼 모든 거부감이 일시에 사라졌다.

갑자기 머릿속에 어머니의 얼굴 윤곽이 그러지지가 않았다. 동글납작한 얼굴에 끝이 살짝 매달린 가느다란 눈도, 뭉뚝한 코도, 크고 도톰한 입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전화를 끊고 허둥지둥 옷부터 꿰입었다.

큰길을 향해 달리는 동안 어머니가 했던 말이 뇌리에서 자꾸 부스럭거렸다. 그 냄새는 몸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살아온 쓰디쓴 세월의 냄새라는 말이 벌겋게 달궈진 부젖가락처럼 오목가슴을 뜨겁게 파고들었다. 젊어서 남편을 잃고 병든 시아버지와 어린 두 자식을 위해 짐승처럼 살아온 어머니. 그것은 어머니가 살아온 신산한 세월이 발효하면서 풍겨져 나온 짙은 사람의 향기였다. 고통스러웠던 긴 세월의 더께 같은 것. 어머니의 냄새는 팔십 평생 동안 푹 곰삭은 삶의 냄새이며, 희로애락의 기나긴 시간에 의해 분해되는 유기체의 냄새가 분명했다. 나는 갑자기 어머니의 냄새가 내 몸의 모든 핏줄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황금빛 들판에는 벼들끼리 온몸으로 서로에게 부대끼며 물결 치고 있었다. 땅의 혼령들로 가득한 그곳에서 어머니의 냄새가 바람처럼 훅 덮쳐 왔다. 나는 국도 변에 차를 세우고 길게 숨을 들이켰다. 어머니의 향기로운 냄새가 아우성치며 온몸의 핏줄 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어머니의 향기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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