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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예능에 감춰진 자기웅크림

by TV피플


정말 작년만큼 요리 예능이 시청자의 마음을 쥐고 흔든 적이 또 있을까. 여러 채널을 마주하다 보면, 어김없이 요리를 메인 테제로 한 예능프로그램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정통의 요리 프로라 하면, 메뉴의 레시피를 정직하게 소개해 주며 요리 시연을 하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는 클래식한 요리프로는 아이돌 광희가 진행하는 EBS <최고의 요리비결>에 불과한 것만 같다. 그리고 대부분의 공중파와 케이블은 요리를 매개로 한 프로그램을 1~2개 이상씩 중심 시간대에 편성하고 있다.


이러한 대세적 현상은 TV로 대변되는 미디어의 주요한 흐름을 말해주며,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를 꼽으라면 자막으로서의 프레임, 정보쇼의 기능, 간접체험의 중독성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자막’에 대해 짚어 보자. 누군가는 예능의 정의를 자막이 있고 없고의 차이로 구분할 만큼, 예능에서 자막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를 차지한다. 일단 자막이 있으면 해당 텍스트에 집중하게 되고, 이는 PD의 편집의도를 반영함과 동시에 시청자를 수동적이게 하며, 리드의 발판을 마련한다. 대신, 시청자도 눈앞에서 펼쳐지는 상황에 대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과 같은, 생각의 꼬리와도 같은 추가 자막, 말풍선 등은 능동적으로 방송을 주도하는 것만 같은 착시효과와 함께 보는 시청자로 하여금 재미를 배가시킨다.


이는 어찌보면 개그프로(개그콘서트, 웃찾사) 중심의 예능이 리얼버라이어티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필연적인 것일 지 모른다. 왜냐하면, 실제 1박 2일, 삼시세끼로 이어지는 일상적 무대본의 리얼버라이어티는 단순한 시계열적인 촬영장면의 나열로는 보는 재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실제로 해당 장면이 재미있으려면,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듯, 장면에 자막과 상황을 부여해 의도한 듯 의도하지 않은 흐름으로 시청자를 매료시켜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막은 필수적이며, 점점 진보하는 흐름을 갖추지 못하면, 시청자에게 외면당하고 시청률의 저하로 직격탄을 맞는다. 시청자가 능동성을 갖는다는 느낌을 갖게하면서도, 결국 더욱 수동적이 되어 가는 자막의 필수불가결성.


TV가 수용매체를 다양화(인터넷, 핸드폰, IPTV 등) 하면서도, 여전히 미디어의 중심축에 있는 주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요리 예능에서 패널과 시청자의 자기참여적 구성은 어김없이 사용된다.

두번째는 ‘정보쇼의 기능’이다. 정보쇼라는 것은 마치 쇼의 형식을 빌어 정보를 흘리듯 자연스레 시청자에게 주입하는 것을 말한다. 정보는 더 이상 데이터로서의 기능만으로는 존재하지 못한다. 시청자도 결국 콘텐츠를 이용하는 소비자이기 때문에, 각종 기업과 미디어는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그들의 심리와 행동패턴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단순한 1차적 의미로서의 정보는 사람들에게 유용성을 갖지 못하며, 정보가 새로운 관점으로 포장되어 한 개인의 판단을 더욱 유용하게끔 하는 식견으로서의 정보가 의미가 있다. 즉, 정보의 나열이 아닌 정보의 재구성을 얼마나 극대화하느냐가 프로그램 성공의 관건이 된다.



요리 예능의 간판 프로그램은 개인적 취향의 차이는 있으나, ‘냉장고를 부탁해’가 아마 그 중심에 있지 않나 한다. 요리의 레시피를 TV 시청과 함께 자연스레 습득하면서도 정보의 암기가 아닌, 정보쇼로서의 식견을 제공한다. 식견이란 누구나에게나 동일하지 않은 것을 의미하며, 참여한 두 주인공의 개인적 평가기준과 경험에 따라서 실력 있는 최현석, 이연복 쉐프가 쓰디쓴 패배를 경험하고, 야매 요리의 강자인 만화가 김 풍이 승리를 맛본다. 그러한 가변성은 여러가지 관점을 가능하게 만들며, 일률적인 한국사회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이 프로를 통해 스스로 선택한 결정이 충분히 옳을 수 있고, 승리를 안겨준다는 일종의 환상을 심어준다. 이러한 환상이 꼭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건강한 의미로서의 몰입이라고 보긴 어렵다.



또한, 대결구도를 기본으로한 요리쇼는 쇼의 형태중 가장 기본적인 재미를 추구함과 동시에 적정한 긴장감을 형성하여 프로그램 재미를 극대화 시킨다. 매일 매장을 관리하며 스텝을 교육하는 위치에 있던 쉐프가 이 프로를 통해, 실패도 맛보는 역전적 구성을 통해, 우리는 갑과 을의 묘한 뒤바뀜을 경험하며, 일상의 반전을 꿈꾸게 된다. 한식대첩, 집밥 백선생, 한 끼의 품격, 마이리틀텔레비전 등의 프로가 요리를 예능에 적절히 삽입하면서 대결구도, 패널의 평가, 승패의 구도를 묘하게 유지하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세번째 요리예능의 요소는 ‘간접체험의 중독성’이다. 이는 일종의 대리만족 심리와도 유사하며, 수년전부터 먹방이 대세가 된 것에 근거한다. 먹고 살기는 힘든데 먹방을 통해, 먹을까 망설이는 메뉴를 간접 섭취하게 되고 일상의 공감을 맛보게 된다. 고전의 요리프로가 레시피를 설명하고, 음식을 맛보는 보여주기식 구도였다면, 현재의 요리예능은 직접적으로 패널이 원하는 음식테마를 설명하고, 쉐프는 이에 따라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승패의 UP & DOWN을 경험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쉐프끼리 서로의 요리평가를 서슴지 않는 올리브쇼를 비롯하여, 다양한 직종의 일반인이 요리 서바이벌에 참여하여 승부를 겨루는 마스터쉐프코리아나 한식대첩에 이르기까지 간접체험은 곳곳에 숨어 있다.



이러한 간접체험의 중독성에는 쉐프의 위상 변화가 큰 몫을 한다. 의사나 변호사와 같은 고전적인 인기직종의 사람이 각종 의료상담, 법률자문을 해주는 3분요리와 같은 케이블 프로는 이제 겨우 시간을 점유하고 있을 뿐이고, 시청자는 관심이 없다. 새벽부터 일터에 나가 밤늦게 집에 오며, 고된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사회적인 대우는 받지 못했던 요리사가, 이젠 사회의 문화적 메인스트림을 주도할 만큼 인정을 받고 자본적 성취도 이루는 직업군으로 탈바꿈했다. 물론 여전히 현실에서의 요리사는 고되며 힘들 것이다. 단, 우리는 무언가를 꿈꾸고 있다.



각자 사회적 위치는 높지 않으나 꼭 하고 싶었던 일들. 그러한 일을 직업으로 했을 때의 변수와 위험성. 그 속에서 자기의 꿈을 위해 매진했을 때 얻게 되는 일상의 반전과 현실의 새로운 국면. 그리고 사회적 성공. 이 모든 것이 인기쉐프를 기반으로 한 요리 예능에서 드라마로 펼쳐지고, 시청자는 간접체험을 통해 스스로 레시피 정보와 함께 자신의 식견과 주관을 더욱 정립해 나갈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세 가지 흐름을 기반으로 한 요리 예능은 앞으로도 다양한 컨셉의 서브 프로그램을 양산해 갈 것이며, 뉴스와 드라마, 각종 교양프로그램으로 확대될 것이다. 에세이의 제목에서 언급한 자기웅크림이란, 결국 ‘시청자로서 우리의 자기웅크림’을 말한다. 현실은 녹록치 않고, 연예, 결혼, 출산, 취직, 인간관계 등 ‘오포시대의 핵심 골치거리’로 신음하는 우리들에게 요리예능은 무언가 성공신화적 대결구도가 짜여진 참신한 정보쇼로 보인다. 그리고, 보는 즉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하지만, 여전히 TV 속의 프레임속에서만 드러난 카타르시스는 현실에서 곧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기 일쑤이다. 그리고 여전히 씁쓸한 뒷맛은 가시질 않는다.



대세가 되는 프로그램을 잘 들여다 보면, 우리의 자화상이 있고 욕망이 숨어 있다. 요리예능의 대세가 언제까지 이어질 지 모르겠지만,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의식주의 상향조정으로의 욕망은 인간이기에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단, 미디어와 현실사이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하는 자기웅크림은 곧 또 다른 벽을 만들어낼 뿐이다. 미디어를 보는 지혜, 그리고 그 미디어 속에 빠져든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시켜, 현실로서의 자기 스토리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본인의 삶을 스스로 인정하고 격려하며, 변화를 매일같이 조금씩 만들어 가는 자기피드백만이 자기웅크림을 해소하는 최적의 솔루션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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