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틀면 어딜 가나 나온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사라진다. 때론 혼자서, 때론 누군가와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본인들의 영역으로 넓혀 가고 있는 MC들의 행보를 짚어 보는 건 꽤나 흥미로운 일이다. 그래서 해보려고 한다.
10여년전만 해도 차분한 프로그램은 아나운서가 진행하고, 인기 있는 버라이어티 쇼, 가요순위 프로는 자리를 잡은 연기자 남자와 미스코리아, 리포터 출신의 여자가 더블 MC 형태로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후, X맨, 천생연분, 해피투게더, 무한도전, 1박2일, 강심장 등의 단체 버라이어티가 인기를 끌면서, 다양한 출연자들이 적게는 열 명 가까이, 많게는 스무 명 가까이 출연하는 행태를 띠게 된다. 이 중엔, 꽤 이름을 알리고 싶은 신인 연기자나 가수를 비롯, 입담으로 검증 받은 개그맨, 정상을 달리는 아이돌에 이르기까지 활동영역, 장르를 불문하고 출연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이 다 같이 모여서 게임을 하고, 특정 주제에 대한 토크를 풀어 가면서, 이들을 아우르고 프로그램의 균형과 호흡을 잡아 줄 MC가 필요해 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토크 박스 프로그램으로 입담을 검증 받은 유재석과 1박2일 등 야생형 단체 버라이어티에서 맏형 역할로 인기몰이를 더하는 강호동이 그 중심에 서게 된다. MC는 안정된 진행력을 필요로 함과 동시에 적절한 유머감각과 잔챙이식 토크 능력도 갖춰야 하므로, 개그맨 출신의 MC가 당연히 부각될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유재석과 강호동은 전혀 반대 되는 스타일로 프로그램을 이끌며, 앞서거니 뒷서거니 프로그램을 5개 넘게 단독 진행하며 승승장구 해 나간다.
그 와중에 김승우, 고현정 등과 같은 연기자 출신의 토크 프로그램이 꽤 인기를 끌긴 하지만, 출연자의 인력풀에 다소 한계가 드러나면서 장수프로그램으로서의 지속성은 확보하지 못했다.
프로그램이 아무리 기발하다고 해도 공중파는 안정적인 구성과 루틴한 에피소드적 컨셉을 계속 유지하면서 유지/보수를 지속해 가는 특성을 버리지 못했고, 유재석과 강호동의 2강(強)체제가 지속되면서 진부함은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고, 사람들은 TV를 보면서 눈의 피로가 아닌, 수동적 시청자로서의 정신적 진부함의 피로를 호소하기 시작한다.
안정되고 재치 있는 입담과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진행으로 팬덤을 확보한 유재석과 동네 맏형의 이미지로 야외 버라이어티의 다소 윽박지르기식 진행의 강호동에게서도 일종의 피로감을 느낀다. 진행의 강도와 흐름을 떠나서 프로그램이 바뀌어도 비슷한 진행인 것처럼 느끼는 착시현상이 발생한다. 어찌보면 비슷한 진행의 비율은 절반이다. 그보단 안정적인 수익률(시청률)과 광고수익의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공중파 PD와 방송편성 국장의 안일한 반복 MC 채용이 그 한계를 드러냄으로 인한 현상이다.
아무리 새롭게 프로그램을 기획한다고 해도, MBC, SBS, KBS에서 2강(強)체제 MC만 계속 나오는데 지루할 수 밖에 없다. 이는 어찌보면, 국제시장/ 베테랑/ 히말라야/ 검사외전/ 곡성으로 3년째 홈런을 날리는 배우 황정민에 대한 피로감과도 그 맥을 같이 한다. 너무 적절한 캐스팅이 너무 스탠다드함으로 흘러버리는 사이, 우리는 무언가 따분해졌다. MC의 잘못으로 귀결되어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사이, 케이블, 종편이 등장해서 tvN, JTBC를 중심으로 다양한 드라마와 버라이어티를 쏟아 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세금 사건에 연루되며 강호동이 무너지게 된다. 자연스럽게 케이블에서 내공을 쌓아 가며 사업실패에 대한 자금 마련으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생활형 MC 신동엽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적절한 치고 빠지기식 섹드립과 콩트식 개그 장악력까지 겸비한 그는 자연스레 케이블, 공중파에 관계없이 모든 영역을 넘나든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그는 완벽한 공중파 중심의 복귀보다는 케이블에서 아직도 스스로를 더 실험하려고 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예상과 포지셔닝은 향후 3년간은 유효해 보인다.
2013년 김희선, 윤종신 등과 화신을 진행했지만 프로그램이 오래 가지 못했고, 이전 해피투게더 쟁반노래방 식 진행은 번복할 수 없는 올드함이 있어서일까. 각종 주요 영화제 시상식, 연말 이벤트성 프로 진행으로 정기적인 활동을 하는 것 이외의 행보는 잘 보이지 않는다. 어찌 보면 그 스스로가 본인의 콩트식 개그, 자유분방한 놀림식 추임새에 가장 적절한 놀이터를 더 이상 놓치지 않고 장기체제를 굳히겠다는 의지를 스스로 표명한 것인지도 모른다. SNL, 수요미식회, 마녀사냥 등으로 본인의 컬러를 스스로 뿜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MC의 영역이 확대되는 만큼 입담을 확보한 패널도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단, MC급 진행이 가능한 박학다식 김구라 정도의 레벨이 아니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조세호, 양세형, 김나영, 신봉선 등의 방송 VJ, 개그맨 출신의 엔터테이너는 오히려 박리다매식 패널로 스스로 생계를 찾아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패널의 시장 역시 꽤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어떠한 토크에 대해서도 대응이 가능하며, 새로운 프로그램의 포멧을 빨리 습득할 수 있는 내공형 패널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 중 가장 포텐셜이 좋아 보이는 건 조세호 정도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오랜 라디오 진행으로 내공을 쌓은 윤종신과 같은 스페셜 케이스는 연예기획사를 만들고, 또 다른 살길을 찾는다. MC임을 굳이 선언하지 않는 만큼, 그 영역은 자유롭고 발걸음은 가볍다. 라디오 스타의 터줏대감을 유지하며, 슈퍼스타K, 속사정쌀롱 등, 본업과 부업 장르의 프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일률적이지 않아 재밌는 MC 캐릭터다.
MC와 패널이 난무하는 버라이어티에서 먹방, 집방, 쿡방과 각종 경연 프로로 컨셉 자체가 상당히 역동적으로 바뀌었다. 케이블, 종편까지 가세하며 시장도 넓어졌다.
아나운서들은 자신의 고유 영역이 사라짐을 본능적으로 느끼며 2000년대 후반부터 프리선언을 하며 단독 혹은 더블 MC 체제로 본인의 먹거리 찾기에 나섰다. 독보적 행보인 메이저리거 전현무, 김성주를 비롯 박지윤, 오상진, 한석준 등 마이너리거에 이르기까지 진행자는 많아지고, 프로그램과 시장은 아주 넓어졌다. 공중파에 지친 시청자는 종편 방송사와 CJ 그룹의 각종 케이블의 매력에 어김없이 빠져들었다.
이제 MC들은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갈 것인가. 개그맨 출신의 빅 MC 체제가 깨어지고, 아나운서, 가수, 개그맨 출신의 다양한 팔방미인들이 MC에 도전한다. 그리고 각종 행사 진행 수입 등으로 본인의 기반을 끊임없이 증명한다. 그리고 열 명 가까이의 MC들이 살아 남았다. 추후, 기회가 되면 주요 MC별 캐릭터 분석을 해보고자 한다. TV의 중심과 변방에서 프로그램의 파일럿 기획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바로 MC 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보란 듯이 살아 남았다.
처세술이 통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