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의 일상 이야기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조폭 아지트 안, 격렬한 화면이 바삐 전환된다. 공기를 가르는 외투 소리와 함께 뻗은 '남성'의 라이트 훅이 적중한다. 험상궂은 덩치가 하릴없이 쿵하고 쓰러진다. 지켜보고 있던 패거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며, 끝내 권총을 뽑아 든다. 곁눈질로 무장을 감지한 남성은 재빠르게 반응하지만 완전히 은폐하지 못한 사이, 총성이 울려 퍼진다. '탕! 탕! 탕! 탕! 탕!'. 화약 냄새와 함께 자욱하게 연기가 인다. 점차 시야가 뚜렷해지나 남성은 보이지 않는다. 패거리는 남성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서서히 접근한 결과, 쓰러져 있는 사람은 남성이 아닌 자신의 패거리 중 한 명이었다. 순간 섬뜩한 살기를 감지하고 고개를 재빨리 돌려보지만, 그 순간 남성의 일격에 마지막 잔당까지 쓰러지고 만다. 남성은 단 한 발의 총알도 맞지 않았던 것이다. 이 남성은 누구일까. 바로 '주인공'이다.
반면 '엑스트라'는 어떤가? 허구한 날 맞기 바쁘다. 주인공에게 단 한 번의 타격을 입히기 위해 자신이 가진 전력을 쏟아내야 하지만, 정작 본인은 주인공의 가벼운 공격에도 붕 날아가버리고 만다. 주인공은 아무리 쓰러져도 칠전팔기로 일어서지만, 엑스트라는 한 번만 쓰러져도 도통 일어날 수가 없다. 줄거리 중 다소 흥미가 떨어지려던 참에, 압도적인 풍채를 풍기며 힘 좀 쓸 법한 덩치가 등장한다. 주특기인 '찍어 누르기'를 시전하며 주인공을 제압하는가 싶더니 어찌 된 일인지 평소와 달리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다른 엑스트라와는 다르게 주인공과 몇 합을 대치하긴 하지만, 주인공의 노련함에 서서히 밀리더니 결국 급소 발차기 한 방에 쓰러지고 만다. 한편 어찌어찌 패거리를 상대하고 있는 주인공의 뒤를 잡은 경우에도, 마치 주인공이 결계를 두른 마냥 쉽사리 접근하지 못한다. 순간 이때다 싶어 빈틈을 노려보지만 주인공의 현란한 카운트에 정신을 잃고 만다. 엑스트라가 주인공과 일대일로 마주하는 장면이라도 촬영하는 날엔, 감독과 작가가 참 원망스러울 것이다. 이만 역할이 종결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억지 주목(속칭 '어그로')을 끄는 게 아니고서야, 웬만해선 엑스트라가 되기보단 주인공을 선호할 것이다. 생각을 되짚어보면 엑스트라에게는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고, 가져보리라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모두가 주인공이 되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주인공은 한정되어 있다. AI에 의하면 한 편의 영화를 위해 투입되는 인력의 평균 수치는 주인공 2명에, 엑스트라 및 스태프 200여 명이라고 한다. 1명의 주인공을 위해 100여 명의 숨은 인적 자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슬 우리의 이야기로 바꿔보자. 나를 포함한 독자들에게 물어본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주인공일까, 엑스트라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인생에서는 주인공이고, 80여 억 명의 전 세계 사람들에겐 엑스트라가 되겠다. 우리의 인생은 나 자신에게는 이 세상 모든 것이지만, 지나가는 남에게는 한낱 무관심의 대상에 불과하다. 타인에게 나는 철저히 엑스트라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수십 억 명의 엑스트라로서 삶의 가치가 없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남들이 나에게 흥미를 가질 알짜는 딱히 없지만, 나도 꽤나 치열하게 살아왔다. 많은 고민을 하며 성장해 왔다. 지속적인 시행착오 끝에 나름의 진리를 깨달으며 버텨왔다. 엑스트라의 삶에도 각자의 전략과 의미가 있다. 구미가 당기지 않는 사람들은 지금껏 그래왔듯이 엑스트라를 무시해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본다면 여태 알아보지 못한 세상의 일부를 이해하는, 보다 넓은 식견을 가질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한다. 누가 알겠는가. 내가 풀지 못한 많은 난제의 답을 엑스트라들에게서 찾을 수 있을지 말이다.
이 글은 저자가 살면서 느낀 점들을 자유롭게 풀어보려 한다. 어느 한 '엑스트라'의 에세이일 뿐이다. 이 글의 끝맺음은 나는 솔로 6기 광수의 명대사로 마무리를 지어보겠다.
"옥순아 나 광수야"
"별처럼 빛나는 너의 옆에서 나도 잠깐 빛을 낼 수 있어서 좋았어"
"너의 드라마에서 나는 지나가는 조연일지도 모르지만"
"내 드라마에서의 주인공은 너였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