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P와 ISFP의 연애

(6) 연애

by 티워터

사귀기로 얘기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의 그 기분은 한마디로 짜릿했다.

연애의 정점은 바로 이 고백 직후가 아닐까

자정이 넘어 서울에는 차가 없었고 날은 그렇게 춥지 않았다. 운전을 좋아했는데 차 문을 살짝 열어 바람을 쐬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다. 신호에 걸려 서 있을 때도 자꾸 웃음이 나왔다.

사귀기 전과 사귀고 나서의 세상의 온도도 달라졌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기분이 좋았고 문득 그 사람이 떠오르면 또 기분이 좋았다. 계속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누군가 INFP를 쉽게 말해 ‘대가리꽃밭’이라고 지칭하는 걸 들었는데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고 그 사건 직후에는 거의 천국에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S는 아무런 부담을 나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S는 바로 그다음 날 가족텃밭에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바로 또 얼굴을 보게 되지 않은 점 또한 좋았다. 이 행복을 나 혼자 더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물건을 사도 바로 뜯어보지 않는 습관이 있다. 하루 이틀 그 물건을 하루 이틀 정도 새 제품으로 놔둠으로써 그 행복을 더 누려보려는 심산이다.

그래서 S와는 정말 의도할 수도 없던 이 '타이밍'이 잘 맞는 점이 너무나 좋았다.


2023. 11. 9. 07:27, ISFP : 운전조심하고 잘 다녀와~심심하면 저나하고~

2023. 11. 9. 08:03, INFP : 일찍일어났네 ~^^도착하면 저나할겡~♡♡♡

2023. 11. 9. 20:54, INFP : 하루안봤다고 보고싶네에?^^

2023. 11. 9. 21:10, ISFPI : 나도 보고싶어~~^^


이틀 후 S는 시골에서 저녁 늦게 올라왔고 나는 고백사건이 있기 전 잡아 놓은 B클럽 정기전에 갔다. B클럽 정기전은 금요일 밤 10시였는데 잠이 중요한 S에게는 있을 수 없는 스케줄이었다. S는 소개팅을 시켜준다는 사람도 있고 반 이상이 남자들로 구성된 B클럽에 나가는 걸 전혀 터치하지 않았다.


2023. 11. 10. 21:01, INFP : ㅠㅠ피곤하겠다 얼른 집가서 쉬어~

2023. 11. 10. 21:02, ISFP : 연락할게

2023. 11. 10. 22:44 INFP : 자나봐?

2023. 11. 10. 22:45 ISFP : 안자고 기다리고 있어

2023. 11. 10. 23:44, INFP : 첫게임 171점

2023. 11. 10. 23:45, ISFP : 다음 겜은 200넘어보자~~

2023. 11. 10. 23:50, INFP : 안졸려?^^

2023. 11. 10. 23:51, ISFP : 아직 안졸려~~아주 잘하고있어~~ 홧ㅌㅣㅇ^^

2023. 11. 11. 00:04, INFP : 193 올라간다아!

2023. 11. 11. 00:08, INFP : 잔다 자!

2023. 11. 11. 00:41, INFP : 188

2023. 11. 11. 00:41, INFP : 집에간다~^^

2023. 11. 11. 02:51, ISFP : 버티고 있었는데 ㅜㅜ ㄴㅏ도 모르게 잤네.


잠을 이기지 못하는 S의 습성이 참 귀엽다고 생각했다. S의 연락 타이밍도 참 좋았다. 아무 때나 연락하지 않았고 무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분위기도 자연스러웠다. 연애 초반에는 우리 집 쪽으로 많이 와줬다. 나는 중간 지점에서 만나도 됐지만 와준다고 하는 게 좋아서 그러자고 했다. 한 시간 정도 되는 거리이기 때문에 그 고생 자체가 고마웠고 내가 그쪽으로 가게 되는 때도 있었기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았다.

썸시절이나 고백사건이 있을 때에도 나는 딱히 평소와 다르게 꾸미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미리 살을 빼거나 치장을 하는 행위는 나와 맞지 않았는데 S도 같았다. 나는 이 옷을 입을까 저 옷을 입을까 고민하는 것을 싫어했는데 그렇게 그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S는 내가 뭘 입거나 뭘 하든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거울을 보긴 하지만 거울을 보면서 나는 거의 내 얼굴만 보는 것 같다. 거울 속에 있는 나라는 사람을 보고 마음에 든다고 생각하고 나머지 것들은 1초 만에 휘리릭 훑어보고 뭐가 잘못되어 있는지만 보고 거울 보는 걸 끝낸다.

사람들이 연애상대를 고르는 기준에 대해 얘기하는 게 재미있으니까 얼굴이니 재력이니 얘기하는 거지 그 기준은 결국 ‘인성’이라고 생각한다. 외모나 다른 걸 보고 골랐다가 결국은 ‘인성’을 보고 실망한다면 외모는 쓸모 없어지기 때문이다. 얼굴 때문에 참는다는 말은 하루 이틀 지나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난 이상형도 따로 없었고 친구들 사이에서 공인된 ‘외모를 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동안은 외모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사귀고 나니 이제부터 잘 보이고 싶어졌다. S가 먹는 양이 많지 않고 체격이 나랑 비슷하다는 점 때문에 밥이 별로 먹고 싶지 않아져 살이 점점 빠졌다.

물론 나도 S의 외모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면 마음이 가지 않았을 테지만 내가 마음에 들었던 S의 모습은 다음가 같은 것들이다.

무리의 한 발짝 뒤에서 소리 없이 웃으며 사람들을 지켜보는 모습, 언제나 다정한 말투, 목소리가 크지 않고 거들먹거리지 않는다는 점, 자랑이 없고 그 어떤 상황에도 상대방을 당황스럽게 하지 않는 점, 빠른 사과,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고 소위 나이에 걸맞은 행동 같은 건 하지 않는다는 점, 옷을 입을 때 브랜드가 드러나지 않는 것과 자신의 체형에 딱 맞는 들러붙지도 너무 크지도 않은 옷을 입는다는 점 등이다.

나는 초점을 흐리고 상대방을 전반적으로 다 들여다보는 타입이다. 물건을 살 때도 나는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렸다. 골라야 할 선택지들이 있어서 고를 때면 과장을 보태서 10년 후 혹은 내가 죽어서까지도 생각을 하기 때문에 3자의 눈으로 봤다면 저 사람이 저기 서서 대체 뭐 하는 거지 싶을 정도로 오래 고른다. 사람을 고를 때도 그래서 시작이 이렇게 오래 걸렸나 보다.

서로를 인지하고부터 썸이 시작되기까지 24개월, 그로부터 연애시작까지 총 16개월이 걸렸다. 긴가민가해서 못 알아채고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리기도 했고, 도중에 포기할 뻔 한적도 여러 번 있기도 했지만 가까스로 연애가 시작됐다. 내가 봐도 굉장히 느리다. 나이가 많아도 조금도 서두를 수 없었나 보다.


성공확률이 높지 않은 이런 방식으로도 연애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고 ‘될 커플은 된다’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너무 쉽게 ‘잘됐다’라고 말해버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어떤 연애든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시작될 것이다. 다 다르니 지침이나 꿀팁 같은 건 있을 수 없다. 그래도 연애를 함에 있어서 가져야 할 마음 하나는 '내 방식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쓸 필요 없다. 서두를 필요도 무언가 해보려고 하는 것도 사실 필요 없다. 이렇게 해보고 싶은데 한번 해볼까? 정도의 마음으로 내 방식대로 가는 게 제일 맞다고 생각한다. 소개팅이든 자만추든 상관없다. 시작이 다를 뿐이니 서로를 인지하고 좋아하는 마음이 쌓여갈 때에는 정말 하고 내 싶은 대로 상대를 생각한다면 그게 최선의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이제 본격적으로 연애가 시작됐고 난 체력이 좋았다. 밥을 같이 먹고 걷고 커피를 마시고 또 걷고 볼링을 치고 다음날 또 치고 뒤풀이를 하고 또 볼링을 치고 했더니 좀처럼 생기지 않던 혓바늘이 돋았다. 나와 S는 연애 초반 둘 다 입술이 부르텄다. S야 원래 체력이 좋지 않아 자기 체력의 200%를 써버렸고 나는 체력은 좋았지만 그 당시 조카가 너무 이쁠 시절로 성신여대에서 성남까지 왔다 갔다를 일주일에 두어 번 하는 것과 병행했더니 그렇게 됐다. 빡센 연애가 시작됐지만 조카와의 도둑놀이와 숨바꼭질도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작이 어렵지 연애는 빡세고 촘촘했다.

내가 두려운 것 하나는 변하는 것인데 S는 사귀기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조금도 텐션이 떨어지지 않았고 나도 처음과 같은 텐션으로 연애를 계속했다. S가 텐션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처음부터 낮은 텐션이었기 때문이다. 훌륭하다. 낮은 텐션이지만 그대로 계속 간다. 자신의 페이스이므로. 나도 11년간의 연애를 한 이력이 있는 사람으로 마라톤 같은 연애를 하는 스타일이었다.

ISFP의 특징 하나가 딱히 자기주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애에 최적화된 타입이었지만 ‘리드하지 않는 남자’라고 해서 의견을 내지 않는 것은 보통 남자의 가장 큰 단점이기도 했다. 우유부단해 보이기 때문인데 나는 아이디어 내는 것을 좋아했으므로 오히려 완벽히 잘 맞았다. 특히나 ‘노는 아이디어’는 굉장히 잘 냈기 때문에 연애 때 하고 싶은 놀기 아이디어를 모두 실현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면 무슨 아이디어인지 들어보기 전부터 무조건 OK였다.

ISFP의 습성상 자주 누워야 하고 체력을 떠나서 노는 텐션이 딸릴 법도 한데 잘 따라왔고 ‘좋다’고 했다. 자기는 끌려가는 게 좋다고 했고 생각해 보면 거의 의견을 내지 않았다. 사귀기 전에 볼링을 치자고 했던 제안 자체가 얼마나 큰 용기를 내 에너지를 쓴 건지 알게 됐다.

같이 있을 때도 좋지만 따로 있을 때 보고 싶어 하는 것도 좋아서 결국 24시간이 좋았다.

이 이후의 연애는 꽁냥꽁냥하므로 더 이상 공개하기는 어렵다. 그것이야말로 정말 아무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글이 될 것이다.

이상 열정적인 중재자 INFP와 평화주의자 ISFP의 연애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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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 1. 20:53, INFP : 달이너무예쁜데!! 옆에오빠가없네

2023. 12. 1. 20:55, ISFP : 사진예술이구만~~오빤 항상 니맘속에있어~~

(자신을 '오빠'라고 칭하는 이 점은 아직도 자기를 1인칭으로 부르는 것과 동일해서 너무나 이상하지만 봐주기로 했다)

2023. 12. 1. 21:06, INFP : ㅋㅋㅋㅋㅋㅋ 오케이!

2023. 12. 1. 22:25, INFP : 잘자~~~

2023. 12. 1. 22:26, ISFP : 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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