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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천 Nov 02. 2023

욕망의 뽀드락지④끝

오피스별곡 시리즈 13회차

K가 머뭇거리는 사이 몇 년이 훌쩍 지났다. 어느새 회사 대표 자리에 올랐고, 샐러리맨의 성공 신화로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인 중 한 명이 됐다. 방송과 신문 등 언론들은 그를 모시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그의 재산은 이제 일반 직장인들이 꿈도 꾸지 못했을 정도로 늘었다. 아들 딸과 손자, 손녀, 또 그들의 아들딸까지 다 쓰지 못할 정도가 됐다.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더 사업에 투자했고, 기업을 더 인수했고, 돈을 더 벌어들였다. 그러는 사이 뽀드락지, 이제는 혹이라고 불러 마땅한 그 거대한 뽀드라지는 그의 머리보다 커졌다. K의 얼굴은 혹에 눌려 보기 흉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목과 어깨를 짓누르는 혹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 지경이 됐다. 그리고 다시 수개월. K의 모습은 이제 공포영화에 나오는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참혹한 모습으로 변했다. 건강도 벼랑 끝으로 몰렸다. 가족과 지인들, 친구들 모두 그에게 입원과 수술을 권했다. 그러나 그는 식은땀을 흘릴 뿐 입을 열지 않았다.      


 K가 쓰러진 것은 그의 생일이었다. 마침 그날 기분 좋게 수천 억 원짜리 계약을 마치고 일어서던 순간이었다. 휘청하며 의식을 잃었고 그대로 응급실로 실려갔다. 가족들은 그의 얘기를 들은 여유가 없었다. 혹을 제거하는 대수술이 시작됐고, 다행히 그는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그건 그 후 이어진 고난의 시작일 뿐이었다. 수술 후 그는 일을 계속했고, 뽀드락지는 다시 금새 커졌다. 그는 다시 수술실로 실려갔다.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그의 몸은 수척해지고 얼굴은 검은 잿빛으로 변해갔다. 병원은 그에게 이대로라면 몇 달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제 마지막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심각한 상황. 결국 그는 결심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미국 최고권위 대학병원인 존스홉킨스대학 병원으로 가서 뽀드락지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내는 수술을 감행하기로.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떠난 한국. K는 그렇게 잊혀지는 듯했다. 2년간 완전히 소식이 끊겼다. 수술 후 병원에서 권하는 대로 약을 먹고 TV와 라디오, SNS 등 외부와 완벽히 단절된 삶을 살았다. 그렇게 지내는 사이 뽀드락지는 사라졌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더이상 몇 년 전 세상을 꿰뚫어 보며 호령하는 풍운아의 그것이 아니었다. 얼굴빛도 땅인지, 검은 퇴비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썩은 색깔로 변했다. 병자의 몸과 얼굴은 이제 그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놓고 병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에게는 승산이 없었다. 병원은 길어도 6개월이라고 통보했다. 그는 마지막 시간을 이국땅에서 마감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비루한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그의 유일한 고향이자 혈육들이 있는 곳. 한때 화려한 삶을 허락했던 곳. 성공이 세세만세 이어질 수 있을 것이란 꿈을 꿨던 곳. K는 그렇게 꺼져가는 생명을 부여잡고 한국행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       


 입국 당일. 공항은 취재진과 회사 관계자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K는 전용기 안에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구상을 끝낸 상태였다. 부모님 산소를 찾아 성묘하고, 고향 친지들과 친구들을 만나고, 그동안 못 본 가족들과도 충분히 시간을 가질 생각이었다. 이미 재산을 어떻게 분할할지 유언장 작성까지 마친 상태였다. K는 인천공항이 눈에 들어오자 오랜만에 가슴이 따뜻해져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이 전광석화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콧등이 시큰해지고, 눈앞이 아른 거렸다.      


 그가 마음을 가다듬고 수행원들과 이제 막 입국장으로 들어서고 있을 때였다. 그의 눈에 대형 TV모니터가 들어왔다. 화면엔 새로 취임한 대통령과 그를 병풍처럼 싸고 있는 수많은 기업인들과 최고위 관료들, 정치인들, 언론인들, 종교인들, 의료계 인사들이 비쳤다. 그들은 파안대소하며 손뼉 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던 K의 얼굴이 일순간 무서울 정도로 일그러졌다. 잿빛 안색이 완전히 흙빛으로 변하는 듯했다. 수행원들이 미처 손쓸 틈도 없었다. ‘어어’하는 단말마와 함께 동공이 커졌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리고 2초, 3초. 그의 고개가 어깨 위로 뚝 떨어졌다. 숨이 끊긴 것이다. 한국 땅에 닿은 지 채 몇 분도 안 돼서였다. 부릅뜬 그의 눈동자에는 TV속 영상들이 비치고 있었다. 탐욕스럽게 웃고 있는 권력자들의 모습이. 그들의 목 뒤로 솟아오른 거대한 뽀드락지들와 함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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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이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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