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만달러면 용서하시겠습니까"

효험 있는 러스킨의 '사과없는 상처 극복 공식'

by 이리천

주위에서 이런 분들 많이 보셨을 겁니다. 친구에게 애인을 소개해 줬다가 몇 달만에 빼앗기고 분노하는 여성, 결혼 직전 약혼자로부터 일방적으로 파혼을 당해 극단적 선택까지 고민하는 청춘, 어렸을 때부터 학대하듯 공부를 시킨 부모에게 30년 넘게 분노를 참지 못하는 중년 남성, 친구의 갑작스러운 절교선언으로 당황하고 상처 받은 10대 소녀 등등....


살인이나 폭행은 아니지만 가슴속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영혼들입니다. 만약 이들에게


“사과를 못 받았지만 그래도 상대를 용서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아마 십중팔구 미쳤냐거나, 제정신이냐, 당신이라면 그게 가능하겠느냐, 남의 일이라고 막 던지는 것이냐는 등의 거센 비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상처 받은 영혼은 그만한 보상을 받거나 위로를 받지 않으면 회복하기 힘드니까요. 또 사과나 위로를 받았다고 해서 상처가 아문다고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질문을 바꿔서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지금 2000만 달러(약 238억 원)를 준다면 울분과 화를 풀고 바로 일상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세계적인 ‘용서학의 대가’로 알려진 미 심리학자 프레드 러스킨(Fred Luskin) 스탠퍼드대학 교수가 그런 식으로 자신이 운영하는 ‘용서 클래스’를 찾은 상처 받은 영혼들에게 질문을 해봤다고 합니다.

답이 어땠을까요. 대부분 처음엔 예상치 않은 질문에 멍해 있지만, 곧 이렇게 답했다고 하는군요.


“그렇다면 생각을 좀 해볼 만하지요. 2000만 달러을 포기할 만큼 내가 바보는 아니니까요”


러스킨 교수는 저서 ‘나를 위한 선택 용서’(원제 : Forgive for Good)에 용서와 관련한 자신의 이론을 정리했습니다. 책은 391페이지에 달하는 결코 적지 않은 분량입니다. 그러나 이 두꺼운 책의 핵심이 바로 이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뒤통수를 맞은 듯했습니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접근 방법이었거든요. 좀 설명해 보겠습니다.




저자는 ‘Forgiveness’라고 썼고 역자는 이를 ‘용서’라고 번역했습니다. 맞을 수도 있지만 저는 그냥 읽는 내내 ‘(상처) 극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상대가 사과하지 않는데 용서할 수는 없으니까요. 용서하는 게 아니라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 러스킨은 그것을 과학적인 실험과 증명을 통해 공식으로 만들어 소개했습니다.


책은 용서(지금부터는 상처 극복)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상처로부터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찾는 것. 상대가 사과를 했든 안 했든 상관없습니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과거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용서(극복)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과거는 한 조각도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당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감동적인 얘기 아닙니까. 타임머신이 없는 한 우린 과거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과거 상처 때문에 현재를 망치게 놔둘 수 없습니다. 과거를 과거 일로 남겨둬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완전히 잊으면 될까요. 아닙니다. 러스킨은 오히려 과거를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과거 자신에게 상처가 됐던 행위를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그게 자신에게 어떤 느낌을 주었는지 기억하며, 그런 것들을 2~3명의 믿을 만한 지인들과 공유하라고 권고합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해 과소평가하고 그 느낌을 무시하려는 본능이 있다는군요.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본능적 방어기제라고 합니다. 그런데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문제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노력해야 하지만 지인이 그런 과정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게 도와주고 해결책까지 같이 고민해주는 거지요. 그리고 그렇게 문제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과 그 단계마다 느끼는 성취감을 기억해야만 비슷한 경우에 대처할 수 있고, 자신의 주위에서 생기는 일에도 조언할 수 있다는 게 러스킨의 주장입니다. 매우 공감이 가는 얘기입니다.


러스킨은 상처 극복을 위해 매우 큰 보상을 상상해보라고 조언합니다. 예컨대 앞에서 예로 든 현금 1억 원 같은 것입니다. 당장 1억 원 받는다면 대부분 사람들은 과거로부터의 분노나 울화와 단절하겠다고 단언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습니다. 과거를 극복했을 때 우리에게 주어질 새로운 삶은 현금 1억 원보다 훨씬 더 가치 있다는 것을. 돈은 있다가도 없고 다시 벌 수도 있지만 우리 인생은 단 한 번 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중요한 삶을 과거의 상처 때문에 망쳐지도록 방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의 상처에 얽매여 분노하고 화를 내느라 현재를 허비하는 것이지요. 과거의 상처를 극복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 그게 현금보다 훨씬 값지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에서부터 상처 극복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 후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과거를 극복해야겠다고 의지를 불태우면 될까요. 우선 몇 가지 정리해야 합니다. 우선 과거의 기준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러스킨은 과거 자신이 상대방에게 상처 받고 분노했던 진짜 이유가 가해자에게 있기도 하지만, 본인 자신의 잘못된 사고방식이나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 때문일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남편의 바람으로 이혼한 여성은 그후 3년 넘게 만나는 사람들을 붙잡고 전 남편을 욕하기에 바쁩니다.

‘부부라면 당연히 서로에게 성실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런데 이 나쁜 놈이 나를 배신했어’


그녀의 인생은 온통 그 못된 전 남편때문에 엉망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했다면 어땠을까요.

‘남편들은 원래 바람피우기 쉬운 종자들이야. 그래도 우리 남편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간단하지만 하늘과 땅 같은 차이입니다. 전자는 이상적인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는 경우고, 후자는 현실적인 낮은 기준을 적용하는 케이스입니다.

생각이 후자라면 남편이 바람 폈다고 하더라도 '분노 게이지'가 낮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지 않길 바랬지만 또 그렇게 돼 버렸네. 어쩔 수 없지." 이런 식으로 말이죠.


다른 예도 있습니다. 의욕에 불타는 초임 경찰관은 모든 과속 차량을 잡아내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과속차량이 너무 많고, 자신의 고장 난 차량 때문에 과속 차량들을 잡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또 다시 분노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했다면 어떨까요.

"원래 차들은 과속하기 마련이고, 그 중 몇만 잡아도 나로서는 큰 일을 하는 것이지."


이런 생각이면 과속차량에 대한 분노도, 자신의 움직이지 않는 차량에 대한 울화통도 그렇게 심각한 상황까지 가지 않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러스킨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사람 관계가 대부분 이렇습니다. 사람에 대한 기대가 크고 바라는 게 많으면 실망도 큰 법이죠. 또 상대에게는 너무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면서, 자신에게는 한없이 자애로운 잣대를 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는 게 러스킨의 결론입니다. 따라서 과거 상처 받은 관계를 되짚어보고 자신의 판단 기준을 전부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과거의 상처와 분노로부터 완전히 자유스러워질 수는 없습니다. 러스킨은 또 하나의 솔루션을 제공합니다. 상처 극복을 위한 훈련 공식입니다. 그는 자신의 ‘용서 클래스’에서 이 공식이 기막힌 효험을 보였다고 자랑도 합니다. 이런 공식입니다.


1. 채널 바꾸기

2. 감사 호흡법(매일 1~2회 반복. 1회 약 10분 정도 소요)

3. 마음 집중 훈련(일주일에 1회. 약 15분 소요)

4. PERT(긍정적 감정 재집중 기술. 부정기적으로. 회당 약 40초 소요)


복잡해 보이지만 아주 간단합니다. 저도 따라서 해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마음의 평화를 얻는데 상당한 효과도 있습니다. 그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정리해 보겠습니다.


러스킨의 상처 극복 공식을 연습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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