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 없는 죽음’ 용서할 수 있을까요

전문가 제안 자가 상처치유법에 대해

by 이리천


전두환 씨의 ‘사죄 없는 죽음’은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12·12 군사 쿠데타와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진압의 진실은 어떻게 밝힐 수 있을지, 1000억 원 가까운 추징금은 받아낼 수 있을지, 그는 한순간이라도, 죽는 순간에라도 참회하는 마음이 있었는지 등등. 이런 게 모두 답없는 질문으로 남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그로 인해 핍박받고 상처 받은 수많은 시민들입니다. 166명의 광주 민주화 항쟁 사망자 유족들뿐 아니라 간첩단 조작 사건 피해자, 해직 언론인, 삼청교육대 피해자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전두환은 갔지만 이들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엄히 처벌하거나, 아니면 용서해야 할 대상이 아무 말없이 죽어버린 상황. 이제 이들은 누구를 향해 돌을 던지고, 분노를 해야 하며, 어디서 사과를 받을 수 있을까요. 과연 이들의 가슴속에 응어리진 상처는 치유될 수 있을까요. 한겨레신문이 11월 25일 자에 A1면부터 A5면까지 5개 페이지를 털어 이들의 얘기를 실었습니다.

전두환은 죽었고, 이제 남은 사람들은 정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추징금 환수도, 법적 사실관계 확인도, 역사적 평가는 그대로 진행해야 하지만 남은 이들은 이제 분노와 허탈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복귀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습니다. 사과를 못받고, 복수를 하지 못했는데 이제 잊어야 한다니...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제 스스로 상처를 치유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마침 '용서'라는 이름으로 '자가 치유방법'에 관한 글을 쓰고 있던 중이어서 몇가지 내용을 보태볼까 합니다. 읽던 책과 자료들을 정리해 봅니다. 물론 큰 도움이 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허탈함에 하늘에 빈 주먹이라도 휘두르고 싶고, 소주병이라도 기울여야 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⓵러스킨 교수의 PERT, HEAL 훈련법


미 스탠퍼드대학의 프레드 러스킨 교수는 세계적인 '용서 전문가'(용서라기보다는 상처극복으로 해석하는게 더 맞을 것 같습니다)로 알려져 있습니다. 종교에서 취급하는 용서 개념을 학문과 과학의 영역으로 끌고들어와 실험과 분석을 통해 그 효용성을 증명하고, 효과적인 심리치료 방법을 만들어낸 사람입니다. 지금도 스탠퍼드에서 교편을 잡고 있습니다. 그의 상처 극복 훈련법이 상당히 효능을 인정받아 세계로 퍼지고 있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그런 연구를 통해 알게 된 상처 극복 방법, 즉 자신이 원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화를 찾는 공식을 만들었습니다. 일명 PERT와 HEAL 연습법입니다. PERT는 과거 일이 떠오를 때 욱하고 올라오는 심정을 다스리는 훈련법이고, HEAL은 과거 상처를 시간을 두고 천천히 치유해가는 자가 심리 치료법입니다. (PERT와 HEAL연습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그의 저서 <나를 위한 선택, 용서>(RHK, 2014년)에 나와 있습니다)


두 가지 훈련을 하기 전 준비해야 할 게 있습니다. 우선 어떤 일로 어떤 상처와 느낌을 받았는지 정확히 기억해내고, 그에 대해 객관적으로 얘기할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5.18의 경우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을 정도로 기억이 또렷하겠으나 배우자의 외도나 친구의 배신, 상사의 부당한 처신 등으로 상처를 받았다면 객관적으로 문제를 보면서 자신의 감정을 축소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정리할 단계가 필요합니다.


또 가급적 과거 상처를 들춰 보기보다 긍정적인 생각을 더 해보겠다는 다짐과 함께, 자신이 과거에 세상을 너무 편협한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았는 지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스스로 너무 엄격한 잣대나 왜곡된 기준으로 세상을 재단해서 상처를 자초했을 가능성을 체크해보는 것입니다. 만약 문제가 거기에 있다면 이 다음에 소개할 훈련법은 필요하지도 않겠죠.


어쨌거나 아픈 상처들은 불쑥불쑥 튀어나와 일상을 망치기 마련입니다. 그 때 필요한 것이 PERT(Positive Emotion Refocusing Technique· 긍정적 감정 재집중 기술)입니다. 일종의 ‘요가’라고 보면 됩니다. 과거 아픈 기억이 갑자기 떠오르거나, 그와 연관된 사람을 만났을 때 흥분되는 감정을 복식 호흡과 상상을 통해 다스리는 연습입니다. 참고로 저도 책을 보고 연습해보니 의외로 마음을 다스리는데 효과가 있습니다. 이제는 훈련을 시작한다는 마음만으로도 긴장이나 흥분이 가라앉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PERT는 40초 정도 진행합니다. 순서는 이렇습니다.

1. 복식 호흡을 2차례 합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천천히 두 번 반복하면서 신경을 배 쪽으로 집중합니다. 숨을 들이쉴 때는 공기가 배를 부드럽게 부풀리게 하고 내쉴 때는 조심스럽게 공기를 뺌으로써 배가 부드럽게 이완되도록 합니다.

2. 숨을 깊이 충분히 들이 내쉬면서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이나 당신에게 경외감과 경탄을 자아내게 한 경치를 마음속으로 그려봅니다. 심장 부근에 긍정적인 느낌이 모여 있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밝아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3. 긴장이 풀어지면 평화로워진 마음에게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담담하게 물어봅니다.


러스킨 교수는 복식호흡을 응용한 감사 호흡법과 마음 집중 호흡도 권고하지만, 제가 보기엔 PERT와 방법이 대동소이 합니다. PERT 정도만 시간 날 때마다 틈틈히 해줘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상사로부터 엄청난 꾸지람을 들을 때나 듣기 싫은 얘기를 참고 들어야 할 때 눈을 감고 PERT를 연습하면 좋다는군요.(아직 저는 그 경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되면 눈을 뜨고도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PERT가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과거 기억을 통제하기 위한 훈련이라면, HEAL은 과거 상처를 끄집어내서 인위적으로 치료하는 심리치료에 가깝습니다. 일종의 '자기 세뇌'라고 생각합니다. 러스킨 교수는 HEAL훈련을 약을 먹는 것과 같다고 표현합니다. HEAL의 핵심은 문제를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대한 긍정적 목표와 실행 계획을 짜는 것입니다. 단, HEAL 훈련에 들어가기 전에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PERT에 어느정도 익숙해져 합니다. 과거를 소환하고 이를 복기할때 마음의 안정이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HEAL은 하루 1~2회 반복하며 순서는 이렇습니다.

1. 자신을 주어로 긍정의 희망문(Hope)을 써봅니다.
“나는 우리 가족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했다”
“나는 평생 지속되는 탄탄한 결혼 생활을 희망했다”

2. 받아들여야 할 교육내용(Education)을 마음속으로 복창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내가 생각했던 만큼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런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결혼생활이 상대의 배신으로 망쳐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이를 받아들인다”

3. 긍정(Affirmation)의 목표를 만들어봅니다.
“우리 후세를 위해서 더 정의롭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겠다”
“앞으로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지금까지 경험을 좀 더 강인한 인간이 되는데 써보고 싶다”

4. 장기 훈련(Long-term commitment)을 다짐합니다.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 HEAL훈련을 하루 두 번씩 연습하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00 단체에도 가입해 활동하겠다”
“최소 1년간 PERT와 HEAL을 지속적으로 훈련하겠다”

러스킨 교수는 이같은 자기 세뇌를 계속 반복함으로써 작은 상처부터 큰 상처까지 치유하고, 나아가 그 경험으로 다가올 위험에 대비할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도울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자신이 운영하는 스탠퍼드대학 ‘용서 클래스’에서도 치유에 성공한 사례가 많다고 하는군요.



⓶엔라이트 교수의 '상상 치유 훈련법'


위스콘신대학 심리학과의 로버트 엔라이트 교수나 버지니아대학의 에버레트 워딩턴 교수는 용서하는 ‘상상 치유 훈련법’을 권유합니다. 오마이뉴스에 보도된 내용입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54186


상상 치유 훈련법의 내용은 러스킨 교수의 PERT·HEAL 훈련법과 대동소이합니다. 핵심은 상처의 기억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떠올리고, 입장을 바꿔 상대의 관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부부나 연인, 친구, 직장 관계에서는 가능하겠지만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이나 아들 유괴 살해범을 상대해야 하는 경우(영화 밀양의 신애)에도 이런 접근이 가능할지 사실 자신이 없습니다. 만약 이런 식의 접근이 가능하려면 초인적인 인류애와 종교적 믿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상상 치유 훈련법의 순서는 이렇습니다.

1. 조용한 장소에서 편안한 자세로 눈을 감습니다.
2. 천천히 숨을 내쉬면서 자신의 호흡에 집중합니다.
3. 마음의 눈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내려오면서 온 몸의 긴장이 완전히 풀린다고 상상합니다.
4. 온몸이 편안하고 따뜻하고 기분 좋게 축 늘어지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속으로 '편안하다'라고 말합니다.
5. 당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떠올립니다.
6. 그 사람이 어떤 식의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주었는지 잠시 상상합니다.
7. 그 상황에서 당신은 어떻게 했는지를 생각해봅니다.
8. 입장을 바꿔 상대방의 관점에서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돌아봅니다.
9. 나 역시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미움을 산 적이 없는지 돌아봅니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10. 당시의 감정과 그 사람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 이렇게 말합니다.
11.'우리는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 나도 그 사람도 다르지 않다.'
12. 상상 속에서 당신을 분노하게 만든 사람과 만납니다.
13. 당신처럼 불완전하고 마음의 상처가 있을 그 사람의 손을 따뜻하게 잡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을 용서합니다. 당신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14. 미소를 지으며 서로 연민과 사랑의 마음을 나눈다고 상상합니다. 그 사랑의 감정을 생생히 느껴봅니다.
15.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충만한 사랑에 감사합니다.'
16. 사랑의 감정을 잠시 더 느낀 후, 천천히 눈을 뜨고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과거의 크고 작은 상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께, 또 과거의 지워지지 않는 상흔을 않고 힘들어 하시는 분들께 스스로의 선택으로 남은 삶의 희망을 찾을수 있는 작은 팁이라도 됐으면 합니다.


진정한 사과와 용서,화해, 극복의 중요성을 다시 절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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