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인간의 과부하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은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원래는 그저 마음대로 쓰던 일기였다.
하루를 정리했다가, 다시 흐트러뜨리고,
도미노를 쌓았다가 일부러 무너뜨리는 것처럼
고장 난 기계 같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걸 써도 되는지, 저걸 써도 되는지.
고민은 늘 많았고, 그 끝은 언제나 같았다.
결국 전부 지워버리는 것.
소크라테스가 그랬던가.
인간은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존재가 과잉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는 순간마다
이곳에 ‘너무 또렷하게’ 존재해버리는 사람.
가끔은 이 존재 자체가 낯설게 느껴진다.
타인의 시선이 유난히 무거운 날들이 있다.
오랜만에 사람을 만날 때면
그 사람의 눈동자, 시선 처리, 손동작, 말의 속도를 유심히 살핀다.
지금 내가 짓고 있는 표정은 사회적으로 적절한지,
목소리 톤은 과하지 않은지,
말투는 너무 솔직하지 않은지.
상대의 반응이 무난하게 돌아오면
그제야 안심하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오늘 내가 실수한 건 없었는지 되감기를 반복한다.
거울 앞에 서서 외형을 점검하고,
대화 하나하나를 다시 떠올린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끝난다.
몸은 멀쩡한데, 정신은 녹초가 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
그럴 때면 나는 상상의 나라로 도망친다.
로맨스 판타지에 들어가거나,
게임 세계에 빙의하거나,
한 번 죽었다가 회귀하는 인생을 상상한다.
쓸모없는 잡생각들과
존재하지 않는 액션 장면들로
영화 한 편을 머릿속에서 완성하고 나면
묘하게 허탈해진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하루.
그 사실이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생각을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도망친 흔적이라도 남겨두기 위해.
내 일기를, 내 생각을, 문장으로 붙잡아 두기 위해.
그런데도 오늘도 여전히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생각은 무궁무진하고
담고 싶은 감각은 너무 많은데
막상 키보드 앞에 앉으면
완벽한 주제 하나,
그걸 뒷받침할 단정한 근거들만이
글의 자격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또 멈춘다.
생각은 넘치는데,
문장은 자꾸 미뤄진다.
이 글은 아마도
그렇게 생각 과잉으로 하루를 버텨내는
한 인간의 생존 기록일 것이다.
대단한 해답은 없고,
지금도 여전히 쓰는 법을 배우는 중이지만
적어도 오늘은
생각을 지우지 않고 남겨두기로 한다.
그게, 지금 내가 선택한
가장 현실적인 생존 방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