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을너머 Dec 23. 2022

요양을 겸한 스페인 겨울 여행기 2

사그라다 파밀리아 찬가

100% 개인적인 취향인데, 유럽의 성당 안에 들어가면 불편하다. 성당에 열심히 나가던 어린 시절의 나였다면 넋이 나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경우, 10대 중반부터 부활의 의미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부활은 믿지 않았고, 10대 후반부터는 성당에 나가지 않았다. 가톨릭 신자들은 나를 오래된 냉담자라고 지칭하고, 나는 스스로가 무교라고 생각한다. 종교에 대한 개개인의 선택을 충분히 존중한다. 다만 내가 논리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것을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싫다. 영국에 왔던 초기에 다시 성당에 나가볼까 하고 성공회 미사에 참석했던 적이 있다. 관광이었다면 인상적으로 즐겼을 스테인드 글라스로 쏟아지는 빛, 익숙하지만 과하게 엄숙한 의식, 건물을 구성하고 있는 무거운 돌들, 이런 요소들이 종교 그 자체를 강요하는 느낌이 들어 그 뒤로 가보지 않았다. 사실 강론은 담백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사시간에는 공간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유럽 성당이 불편한 것은 그런 맥락이다. 훌륭한 문화유산이고 거기 녹아있는 이야기도 어느 정도 이해하니까 해석하는 재미도 없지 않은데, 사람들을 최대한 종교로 끌어들이고 종교에 집중하도록 디자인된 그 공간이 '냉담자여 돌아오라'라고 강변하는 것 같아 숨이 막히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사에서의 가톨릭과 유럽사에서의 가톨릭은 맥락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고딕 첨탑, 화려한 금박, 정밀한 조각을 누구 주머니를 쥐어짜서 만들었는지를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는 순전히 개인적인 성향이다. 유럽 역사와 문화는 종교를 빼고 설명할 수 없다는 것도, 순수한 의미에서 신앙을 가지고 삶에서 그 의미를 실천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에 대하여 평가절하할 생각도 없다.


아무튼 그래서 사그라다 파밀리아 또한 가우디의 '작품' 중 하나로 생각하고 찾아갔다. 다 뛰어넘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압도당했다. 요즘 가우디의 작품에 대한 해설은 넘쳐나니, 여기에서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왜 감동을 받았는지에 대하여 개인적 감상을 남기고자 한다. (미리 온라인 가이드로 공부를 하고 갔고 오디오 가이드를 듣긴 했지만, 건축 전공도 아니고 현지 투어를 했던 것도 아니라서 지식이 부족하니 틀린 부분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거나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간결해서 숭고하다


감성이 메마른 것일까. 소위 10명 중 7명은 눈물을 흘리게 다는 마크 로스코의 작품 앞에서도 나는 '의도가 그런 것이구나'를 머리로 생각하고 지나갔을 뿐이었다. 그런데 사그라다 파밀리아 내부에 들어와서 비로소 숭고함에 대한 마크 로스코의 감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외부 사진 위주, 특히 가우디가 제작한 탄생의 파사드 중심으로 접하며 생각했던 나의 선입견은 완벽히 틀린 것이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내부는 생각과 달리 간결하고 순수했다. 장식에 군더더기가 없고, 선은 담백하며, 스테인드 글라스는 다채롭지만 요란하지 않다. 고딕의 계승자 답게 엄청난 높이가 장엄함과 절대자의 권위를 나타내지만, 의외로 사람을 짓누른다기보다는 묵상을 이끄는 느낌에 가까웠다. 내부 디자인이 숲을 모티브로 한 것이라는데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의외로 장식적이지 않은 기둥을 따라 시선을 옮기거나, 기둥으로 들어찬 공간을 응시하다보면 이대로 한 시간 정도 조용히 앉아있다 가고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흔히들 가우디를 아르누보 건축가라고 하던데,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내부를 보니 다소 의문스럽게 느껴졌다. 가우디는 분명히 아르누보의 연장선에 있지만 결이 다르다고 해야하지 않을까? 마치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이 각자의 화풍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마침 아르누보의 극치라고 할 수 있을 카탈루냐 음악당을 전날 방문하였기에 그 내부와 비교하면, 엄숙한 성당과 화려한 음악당이라는 건물의 성격 차이만이 아니라 건축에 대한 철학 자체가 다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사 바트요와 카사 아마트예르가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보더라도 품이 들어간 부분이 전혀 다른 곳에서 나타나듯이.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숭고함은 거대한 공간을 상징 중심으로 간결하게 표현해냄으로써, 그래서 세속화된 종교의 가치 대신 종교 본연의 묵상의 가치를 그대로 구현하였기에 받을 수 있는 느낌이 아닌가 한다. 거대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목재 십자가 하나만 있는 조그만 마을 교회와 같은, 하지만 그 크기 때문에 묵상이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커진 듯한 그런 곳이었다. 산업화되고 있는 바르셀로나에서 가톨릭 정신을 복원하고자 했던 건축주 보카베야에게는 미안하게도 속죄의 마음은 생기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처럼 신앙심이 없는 사람도 종교적 감동을 받을 수 있었으니 가우디가 그의 의도를 완벽하게 구현한 셈이 아닐까.


(좌) 사그라다파밀리아 내부, (우) 카탈루냐 음악당 내부

                    

카사 바트요(우)와 카사 아마트예르(좌)


2. 예수의 일생에 이야기가 집중되어 있다.


성인들이 가톨릭 역사의 중요한 부분인 것은 맞다. 하지만 유럽 성당의 코너마다 성인들의 그림과 조각이 거창하게 장식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 종교를 강요받기 싫어하는 나는 또 삐딱한 생각이 든다. 신약의 교리가 순교자들에게 왜 절박하게 받아들여졌을지에 대한 맥락은 쏙 빼고, 투철한 신앙심과 숭고한 희생에 초점을 맞추면서 온갖 허구와 범벅해서(끔찍한 고문에도 다치지 않았다는 둥) 성인을 롤모델로 제시하며, 종교에의 헌신을 강요하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종교적으로 성인들의 희생의 숭고함을 강조할 수는 있겠으나, 상당한 예산을 들여 조각과 장식을 제작하는 것은 분명히 의도가 있다고 해야하지 않을까?


다행히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는 성인들이 스테인드 글라스에 새겨진 이름 정도로 등장하고, 나머지는 예수의 일생과 성가족에 집중되어 있어서 그런 불편함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카탈루냐의 수호성인인 산 조르디  조각은 있지만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범위이다). 예수의 일생은 성당 밖 파사드에 담겨있고 성당 내부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마리아, 요셉, 산 조르디 조각만 있는 구성도 좋았다. 가우디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성서 이야기는 성당 밖에서 보고 안에서는 생각을 갈무리할 수 있는 구조로 느껴졌다.


현재까지 조성된 두 개의 파사드 중에서는 비록 가우디 사후에 제작되었지만 의미를 되새길 만한 수난의 파사드가 마음에 들었다. 가우디 생전에 조성된 탄생의 파사드의 예술적 가치가 워낙에 높긴 하겠지만, 신약의 정수는 예수의 정통성이 아니라 예수가 설파한 평등과 박애의 정신이라고 생각하기에 수난 쪽에 마음이 갔다. 간결한 선으로 표현된 수비라치의 조각도 수난의 파사드에 담긴 이야기와 잘 어울렸다. 수난의 파사드 조성 당시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수비라치 조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는데, 개인적으로는 수비라치의 조각보다 수난의 이야기를 더 잘 표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오히려 수학적으로 불완전한 마방진이 살짝 깨는 부분이었다).


수난의 파사드 일부

3. 건축가 가우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고딕 성당의 범주에 포함시킬 때, 건축 측면에서 다른 고딕성당과 가장 다른 점은 플라잉 버트리스가 없다는 점이다 (건축가 이병기님 강의 참조). 플라잉 버트리스가 없기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외벽에 세 개의 파사드를 위한 공간이 생길 수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지하 박물관에 가보면 초기 가우디의 전임자 비야르가 설계했을 당시 플라잉 버트리스가 있는 형태로부터 최종 설계로 진화해나가는 모습을 모형으로 볼 수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드높은 첨탑이 플라잉 버트리스 없이도 굳건할 수 있는 것은 가우디의 구조역학적 고민의 산물이다. 카탈루냐 지방에서 일부 사용하던 스트링 모델을 건축물 전체에까지 확장하여 적용하였고, 기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였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지하 박물관 끝까지 들어가보면 구엘 성당 건축을 위하여 제작한 스트링 모델의 재현품이 전시되어 있다. 구엘공원의 기울어진 다리의 경우 획기적이지만 필연적인지 의문이 남긴 했지만 (심지어 일부는 수직 지지대(?)와 이중으로 되어있기에), 그 역시 이런 구조역학적 고민의 연속선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돌이라는 재료의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기존 방식을 따르지 않고 공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낸 가우디의 고민과 노력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지하 박물관에 있는 스트링 모델 모형, 구엘공원의 기울어진 기둥


아마 내 인생에 바르셀로나를 다시 여행할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긴 여운으로 남을 것 같다. 명상이 필요할 때는 가끔 그 공간을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요양을 겸한 겨울 스페인 여행기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