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큰 실수를 저질렀다.
문책이냐 징계냐, 아니면 또다른 수습방법
평소 꼼꼼하게 일한다고 자부하는 편이었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는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래도 굳이 작은 변명을 하자면, 인사이동이 있을때마다 자꾸 업무가 바뀌어 적응할만하면 새로운 일을 떠안아야 했고, 심지어 전임자가 제대로 된 인수인계를 해주지 않은 채 휴직을 해버렸다.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을 여기저기 물어물어 해야했고 주관부서에서는 기한이 임박해서 산더미같은 서류를 넘겨줬다. 심지어 1/4분기 실적에 넣어야 한다고 빨리 처리하라는 압박까지 주어지자, 다급해진 마음에 정신없이 일을 처리하다 이 사단이 나고 말았다.
실수를 알아차렸을 때 정말 아찔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해결을 했다. 다행히 주변의 협조로 반나절 만에 사고를 수습하고 관련되는 문제가 없게 해결을 해놨다. 그래서 연관된 몇몇 사람 말고는 아무도 모르게 지나갈 수도 있었을 일이었다. 하지만 그 몇몇 중 한명이 나의 실수를 콕 집어서 팀장에게 조목조목 보고를 했다.(그의 업무처리 과정 상 꼭 짚어야 하는 절차였을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니면 나를 정말 싫어한다는 걸로 밖에 설명되지 않으므로.)
아니나 다를까, 팀장은 나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나를 고자질한 그와 나란히 앉혀놓고 말을 시작했다.
"ㅇㅇ씨. 이 일은 ㅇㅇ씨의 실수로 시작됐지만 나는 그건 전혀 문제삼지 않을거야. 오히려 ㅇㅇ씨에게 업무가 몰린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 뿐이야. 사과할게."
심한 질책과 탄식, 그리고 앞으로의 불신에 대한 일장 연설을 들을거라고 각오했던 차에 이게 무슨 말인가. 너무 의아했지만 저렇게 말을 해주니 애초부터 구질구질한 변명 따위는 할 생각도 없었지만 더더욱 그럴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팀장은 말을 이어갔다.
"ㅇㅇ씨가 실수를 할 수 있어. 다만 그 다음, 그 다음 절차가 있음에도 걸러내지 못한 A씨(나를 고자질한 그)와 나의 불찰이야. 앞으로 이런 실수가 잘 걸러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대답했다.
"전적으로 제 실수입니다. 죄송합니다. 시스템을 만들면 좋겠지만 우선 제가 정신차리고 실수없게 일을 해야죠."
"아냐아냐. 죄송하다고 하지마. 내가 더 미안해. 이번 건을 타산지석 삼아 앞으로 더 주의해서 일하는 것 말고는 ㅇㅇ씨는 걱정할 거 없어. 다만 시스템을 만들어서 서로 보완할 수 있도록 하자."
그렇게 우리는 실수를 교차점검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에 대해 상의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장은 끝까지 고생시켜 미안하다, 업무를 많이 줘서 미안하다, 코로나 끝나면 밥한번 먹자 하며 다정하게 말했다.
솔직히 너무 감동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동안 회사란 항상 누군가의 구멍->핑계->비난과 비아냥->발끈->뒷담화 로 이어지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어떤 것에도 연쇄반응을 미치지 못하는 깔끔한 해결이었다. 실수를 문책하지도 않고 책임을 전가하지도 않고 오히려 실수를 보듬고 회사 차원의 시스템적 대안을 마련하는 방법에 몰두한다니 이 얼마나 선진화된 대응이란 말인가. 큰 실수를 했음에도 본보기 삼아 발전할 수 있도록 독려할 뿐 문책하지 않는다는건 드라마에서도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진심으로 팀장에게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앞으로 더 주의해서 일을 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관리자로서 평직원의 아찔한 실수를 질책하지 않고 넘어간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 자리에 있어보지 않아 다 가늠할 수는 없지만 어느정도는 알 수 있다. 나도 내 밑의 후배가 일을 실수하면 우선 다시는 그러지 않도록 따끔하게 말을 해야 알아들을거라는 생각에 분명하고 단호하게 주의를 준다. 선배인 내가 체크해주거나 보완해 줄 만한게 있는지 따위는 고민해보지도 않고 앞으로 니가 정신차릴것을 강조할 뿐이다. 후배 입장에서는 정신은 차리겠지만 자기도 그러고 싶어서 그런게 아니고 일이 어찌저찌 하다보면 이렇게 되고 그런걸텐데 잘못을 지적당하니 부아가 치밀고 그럴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점점 실수는 자기책임이라기보단 그렇게 된 환경을 탓하거나 핑계를 찾게 마련이다. 일을 못해서 질책받는다기보다, 질책을 받을 것 같으니 핑계감부터 찾게 되는 역순환 구조다.
우리 회사의 고질적인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다. 욕먹기 전에 핑계찾기. 그러다보니 일이 진행이 잘 안되거나 문제가 생기면 해결방법을 찾기에 앞서 왜 그렇게 됐는지 핑계를 찾느라 과거만 뒤적인다. 'ㅇㅇ사태에 대한 대책 마련 및 후속 조치 계획(안)' 같은 류의 문서를 열어보면, 일이 이렇게 된 연유를 줄줄이 읊는 내용부터 시작한다. 과거 몇년동안의 일이 줄줄 기술되어 있고, 심한건 회사 설립당시 부터 그랬다는 식으로 줄줄 써져있다. 그 과정에서 열심히 막아보려 노력해왔다고 또 시간순으로 나열되어있으나, 진짜 노력했다면 지금 이렇게 'ㅇㅇ사태 해결방안' 이라는 문서가 존재하지 않겠지. 그렇게 과거에 그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고 일이 이렇게 되려고 그랬나보다 하는 의미없는 기술이 8할은 차지하고,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가 1할, 그러려면 돈이 들어서 내년 예산에 반영하던가 하겠다는 행정사항 1할로 문서는 끝난다.
실수에 대해 우리 팀장처럼 대응하면 어떻게 될까. 변명을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므로 그냥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다. 조직에 대한 고마움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앞으로 훨씬 더 주의를 기울여 일할것이다. 문책이나 징계에 연연하지 않고 시스템을 만들어나가 조직은 더이상의 실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다.
이렇게 이상적인 회사, 만들 수 있다. 이렇게 행동하는 팀장이 하나 둘씩 늘어나면 곧 이런 문화가 형성될 것이고, 그렇다면 분명 바뀔 것이다. 지겹도록 고리타분했던 우리 회사가 점점 변할 것이라는 희망이 보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