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말이야" 가 너무 쉽게 나오는 이유

이렇게 점점 젊은 꼰대가 되어간다

by wisdom

며칠전 후배직원들이 승진을 했다. 입사 후 4년만에 이뤄진 두번째 승진이자 조직에서 제일 일을 많이하는 허리로 진입하는 길목에 있는 승진이라 나름 조직에게도, 본인들에게도 의미가 있는 승진이었다.


'90년대생이 온다'를 간부들에게 직접 추천하는 등 젊은 직원들과 소통하기를 좋아하시는 사장님께서 임명장을 주시며 특별히 간담회를 진행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털어놓은 고충은 딱 내가 그즈음에 가졌던 불만들과 정확히 일치했다


가장 주요 불만은 '왜 허드렛일만 주는가' 와 '선배들은 노는데 왜 나만 바쁜가' 였다. 사실 그즈음이 '이 회사 계속 다녀 말아?' 하는 갈등의 끝판왕 시기다. 이직하고자 하는 놈은 벌써 이직에 성공했고, 나는 이직을 하고싶기는 하나 준비가 덜되서, 어영부영 하다 보니 시간이 흘러서 아직까지 이직도 못하고 여기 남아있는데 일은 계속 하찮고 가짓수가 많아 바쁘고, 이러니 이직할 시간이 없고 등등 악순환 속에서 자괴감이 가장 많이 들 때다. 나도 그맘때쯤 불만이 잔뜩 생겨 노조에다가도 막 시비를 걸고 선배들한테도 더이상 고분고분하지 않고 이제 이직은 어려우니 자격증을 따겠다고 회사 생활을 소홀히 하고 그랬었다.


우선 하찮은 일이 몰리는건 아직 직급이 낮아서이다. 물론 직급따라 업무의 하찮음을 줄세워서 뿌리는건 나쁜 적폐지만, 나도 그 직급에서 그런 일을 감내하며 얼마전에 벗어났는데, 후배들이 못하겠으니 선배들도 좀 하찮은 일을 하라고 하면 "나때는 군말없이 했어!" 라는 말 먼저 튀어나올 것 같다. 다들 지나온 시간들인데 왜 너희만 유난이냐, 라는 발상. 내가 지금 이 위치에서 뭔가를 건의하면 내 윗 선배들도 "나때는 다 했어!" 라고 하겠지. 아마도 어떤 특정 시기에 하는 고민들은 사람이라면 다 비슷비슷할텐데 그걸 표현하고 바로잡아보려는 노력을 하는가 안하는가의 차이인 것 같다. 너때는 참고 견뎠겠지. 하지만 나는 말하고 바꾸고 바로잡고 싶어. 라는게 틀린 발상은 아니지 않은가. 말도 못하고 참고 견뎠던 내가 순종적이고 둔했던거지, 말 하는 후배들한테 버릇없다고 할 일은 아니었던 거다. 후배들이 할 말은 할 때 "라떼는 말이야~" 하고 튀어나갈게 아니라, 그런 고충이 있구나 나도 다 그랬단다, 하면서 시작을 해야 대화가 시작된다. 그래야 갈등을 최소화하며 변화를 가져올테고.


선배들은 노는데 우리만 일한다 라는 표현은...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다. 물론 노는 선배들이 있다. 하지만 후배들도 그만큼 노는 후배들이 있다. 연차가 좀 되서 뺀질대면서 노느냐, 아직은 눈치가 보여서 일하는척 하면서 노느냐의 차이다. 그리고 난이도 1의 일을 10개 하는것과 난이도 5의 일을 2개 하는것과 노력 투입의 양은 같다. 물론 10가지 일을 동시에 하려면 정신이 없으므로 더 바쁘겠지만, 그렇다고 난이도 5를 2개 하는 것 가지고 '논다' 라고 표현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나도 또 한번 울컥 했지만, 이 이면에는 '나에게 1만 10개 주지말고 1 다섯개, 2 두개, 4 한개 정도 주세요' 라는 의미가 있는것 아닐까 싶다. 허드렛일에 대한 불만, 나만 바쁜것에 대한 불만과 더불어 '모처럼 중요한 일을 받았는데 팀장이 다 지시해서 시키는대로만 해야한다' 도 주요 불만으로 나온것을 보면 말이다. 난이도를 적절히 배분하고 그 일에 대한 권한을 주는것, 그런게 조직이 구성원에게 해줘야 할 기본적인 직무배치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그땐 그랬지" 하고 생각할거다. 나도 그땐 그랬지만 중간관리자쯤 된 지금은 밑에서 싹싹하게 난이도 1,2의 일을 해치워 주는 후배들 덕분에 5,6의 일을 무리없이 추진할 수 있고, 내가 5,6을 해내주는 덕분에 내 윗 선배들이 7,8에 집중할 수 있다. 조직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업무를 계층화 하고 수직적으로 움직이는 경향을 보인다. 좀 더 유연한 조직이 되어야 하는건 틀림없지만 안정적인 톱니바퀴가 굴러가려면 큰 부품 작은 부품이 제자리에서 우선 제 역할을 해줘야 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나도 참 어쩔 수 없는 꼰대가 되었나보다. 그 치기어린 시절 다 어디갔을까. 너희들도 5,6년 뒤에는 나같은 생각을 하면서 "내가 그땐 그랬지" 하면서 웃을 수 있을까. 그때 다시 후배들에게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지 않고 좋은 조언과 개선된 환경을 만들어주는 좋은 선배가 되어주길 바란다.



얼마 전 명절에 친정집에서 가족들이 다같이 모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조카 여자아이 둘과 4살 아들이 오랜만에 만나 신났다. 조카들은 얌전했지만 내 아들은 기분이 업되서 도도도 뛰어다녔다. 아니나 다를까, 아랫집 딸래미가 5분도 안되서 올라와 벨을 눌렀다. 공부중인 대학생인데 너무 시끄럽다고. 층간소음을 유발해서 정말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지만 그날은 명절당일이었고 가족들이 으레 모여서 시끌시끌한 날이며 그 때 시각은 오후 6시 40분이었다. 아무날도 아닌 평일이고 조용한 일상이고 밤 9시가 넘은 시간에 층간소음을 유발했다면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이런날은 어느정도 양해가 가능한 날이고 시간대가 아닌가. 연세 드신 아빠가 미안하다고 조심하겠다고 거듭 사과했지만 4번을 더 짜증을 낸 뒤에 내려갔다. 다음날에는 아예 문앞에 쪽지를 붙여놓기도 했고.

속으로 '니가 아기를 낳아봐라. 애를 묶어놓을 수도 없고, 혼을 내도 안통하는데, 일상소음이 허용가능한 시간대에는 조금 참아주는 아량은 1도 없이 꼭 명절에 저렇게 얼굴 붉혀야 하나'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의외로 언니는 평온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나도 예전에 처녀때 윗집에서 애들 뛰는 소리 나면 바로 쫓아올라갔어. 아저씨가 나와서 '가족모임이라 조금 시끄러웠다, 미안하다' 라고 사과하는데 '대체 언제까지 뛰실거에요?' 라고 따졌지.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웃겨. 애들이 언제까지 뛰는게 어딨어? 아무것도 몰랐을 때지."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고 돌이켜 봐야 아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아직 가지 않은 길을 "너가 몰라서 그러는데~" "나때는 말이야~" 라고 설명해 준다 한들 갈등만 유발할 뿐이다. 너무 쉽게 꼰대발언을 내세우기 전에, 나도 저 시기에 저렇지 않았던가 하고 먼저 돌이켜 보는 연습 먼저 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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